예언의 성취
49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50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51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믿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이 성장했습니다. 형 에서와 함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았기 때문에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냥을 좋아해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형과는 달리 야곱은 늘 집에서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로 인한 복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날마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장자에게 주시는 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반면, 형 에서는 장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자가 받는 복을 자기가 받을 줄 알았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야곱은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그토록 원하던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물론 에서는 야곱이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한 것으로 보아 농담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장자의 축복은 절대로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므로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죽기 전에 장자를 축복하기 위해서, 에서에게 나를 위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면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고 하는 말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평소 야곱을 사랑하던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사이, 염소새끼의 가죽으로 야곱의 손과 목을 털이 많은 에서처럼 꾸며 주었습니다. 야곱은 눈이 나빠서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버지 이삭에게 별미와 떡을 만들어 가지고 들어가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 대신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형처럼 꾸미자고 했을 때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지만, 장자의 복을 받을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받고 싶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빼앗은 자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싶어서 노력하는 야곱을 축복하신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는 간절히 원하는 자가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아버지를 속일 생각을 하느냐고 야곱을 책망할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가 야곱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야곱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은 물론 장자의 권위까지 거저 받을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조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과 아버지가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얼마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기도했을지, 하나님께서 에서를 대신하여 야곱에게 하늘의 복을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내지 않는다면 받은 것조차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억울한 마음에 야곱을 죽이려고 하자,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간곡한 부탁대로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삼촌의 집에서 20년 동안 양을 치며 4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을 얻었지만, 형이 두려워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가던 중에 돌을 취해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말씀하시길,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야곱에게 다시 하고 계신 것입니다.
잠이 깬 야곱은 두려운 마음에 베개로 사용했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셔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시면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이때까지도 장자가 받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 왕 바로에게 내 나그네의 길이 130년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고난의 세월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어쩌면 장자의 명분을 받으면 평생 부를 누리고 권세를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받은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의 계획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져야 했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에서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께서 왜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주셨는지 알 수 있고, 그를 라반의 집에서 특별히 훈련하신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에서보다 그래도 하나님 안에서 살려고 노력한 야곱을 장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면서 4명의 아내를 얻었고, 그 여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아들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의 계획이고 성취인 것 같지만, 그 세월을 이용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야곱의 인생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길고 험난했던 인생의 마지막을 아들 요셉이 애굽에 마련한 안식처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열두 명의 아들을 불러 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지혜로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야곱은 아들들에게 안수하면서, 과거에 하나님과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형을 속이고 도망가야 했던 일과 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난을 겪으며 억울했던 일과 형 에서에게 용서를 받았을 때 미안했던 마음 등 많은 생각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13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원했기 때문에 형을 속였고, 삼촌 집으로 도망가서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타향에서 살아야 하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기에 아들들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을 토대로 앞으로 그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야곱은 자세하게 아들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 예언은 가나안에 들어온 열두 지파에 의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창세기 49장 5~7절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야곱은 창세기 49장 5~7절에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첫 번째 아내 레아가 낳은 아들들입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를 향해 이토록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하는 것은, 여동생 디나를 성폭행했던 추장 세겜은 물론 세겜에 사는 모든 남자를 속여서 죽였기 때문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동생 디나의 복수를 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혈기를 참지 못해서 살인한 죄를 지은 것이므로 그때 맺었던 진노의 열매를 그들의 후손들이 받게 된 것입니다.
시므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흩어질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처럼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 중에서 분깃을 나누어 받았지만, 그 땅을 지키지 못하고 유다 지파에게 흡수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레위는 야곱 중에 나누어질 것이라는 예언처럼 자기의 땅을 받지 못한 채 각 지파가 내어준 48개의 성읍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시므온과 레위가 자기의 죄로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것 같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는 유다 지파와 함께 살게 된 시므온과 각 지파의 죄를 위해서 제사장의 직분을 받게 된 레위 지파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끝까지 용서하시기 위해서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의 죄는 이것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왔을 때,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그들 중에 시므온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그때 형들은 요셉이 자기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애굽 사람인 줄 알고, 요셉을 팔았을 때의 상황을 말하며 서로 다투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셉을 해하지 말라고 말렸던 큰 형 르우벤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더러 요셉을 죽이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너희가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핏값이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동생들을 책망하였습니다. 동생들이 큰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요셉이 굳이 시므온을 지목해서 인질로 선택한 것을 보면, 시므온이 요셉에게 큰 잘못을 한 것 아닌가 추측해 보았습니다. 큰 형의 말을 거역할 힘을 가진 사람은 결국, 둘째 시므온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물이 없는 구덩이에 잔인하게 밀어 넣은 사람 역시 시므온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창세기 37장 27절~28에 보면, 유다가 형제들에게 우리가 동생을 죽인다고 해서 유익이 있겠느냐며, 요셉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고 했을 때 다른 형제들은 청종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결정할 권한이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죽이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는 그때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은 이십을 받고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 후에 돌아온 르우벤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슬퍼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넷째인 유다는 요셉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노예로 팔자고 했으므로 은 이십에 요셉을 판 사람 역시 둘째인 시므온과 셋째인 레위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첫째 부인 레아가 낳은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방해한 그들에게 축복보다는 책망을 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이 다른 가족들보다 먼저 애굽으로 가서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인 시므온과 레위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악을 행했으므로, 그들은 자신은 물론 후손들도 복을 받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이 예언한 대로 자기 땅도 없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시므온은 어머니 레아가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때 낳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기뻐하며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시므온은 애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동생 요셉을 팔았고,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동생 디나와 결혼시켜주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그 말을 믿고 할례를 행한 세겜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이 개인의 복수를 위해서 망설임도 없이 생명을 해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판단하는 것이 영적인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큰 그림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족을 고센으로 부르시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는 것이 계획이셨지만, 굳이 시므온이 그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악한 죄로 동참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스스로 성취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가룟 유다나 시므온처럼 하나님의 일에 사용된다고 하여도 악한 자는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 시므온은 형제들이 받는 축복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은 진심으로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악한 마음으로 애굽에 팔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밭을 매어도 그들의 믿음에 따라 선과 악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요셉이 애굽에 가는 것은 시므온이 팔지 않아도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그가 악의 도구가 될 필요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혈기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당연한 축복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시므온의 죄는 그의 자손들도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온화하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좀 더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과 은혜를 은혜로 갚을 줄 아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축복받는 성도를 보면, 모두 온화하고 겸손하며 감사할 줄 아는 심령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9장 20절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셀은 본처에게서 태어난 시므온과는 달리 야곱의 첩 실바의 아들입니다. 시므온보다 처한 상황이 훨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지므로 왕을 공궤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셀 지파는 출애굽 할 때 그의 자손이 41,500명이었는데,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53,400명으로 번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셀이 받은 땅은 기름진 옥토였기 때문에 소산이 풍부하여 솔로몬 왕은 아셀 지파가 생산하는 곡식을 두로 왕 히람에게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아셀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주진 않지만, 야곱이 야셀에게 한 축복을 보면 그가 온유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먹는 식물을 그가 맡을 것이라고 야곱이 축복한 것을 보면, 아셀이 얼마나 정직하고 온유한 사람인지 그리고 야곱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그들의 인격과 믿음을 보면서 그들에게 합당한 축복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왔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왔는지에 따라서 받는 축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가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그려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땅을 나누어 받았을 때, 유다 지파는 자기들이 받은 분깃이 넉넉했기 때문에 시므온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금 시므온 지파가 땅을 분배받지 못한 것은 모세가 각 지파를 축복할 때, 시므온 지파가 제외되었던 그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오늘 아니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므온의 자손들이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성도들은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9장 8절, 10절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찬양’이라는 뜻을 가진 유다는 형들이 받은 책망과는 달리 야곱에게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도 최선을 다해 막았고, 요셉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 때도, 베냐민이 죽을까 봐 야곱이 두려워하자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유다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시므온과 영혼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유다가 취했던 행동이 달랐던 것처럼 그들의 자손들 역시 받는 복의 크기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화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므로 지금 여러분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말씀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 19장 49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의 분배를 모두 마쳤습니다. 야곱의 예언이 이루어진 동시에 모세의 축복 역시 성취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이 모두 분깃을 받은 후에 자기가 거할 성읍을 정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받은 성읍도 온전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읍을 중건한 후에 그곳에 거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먼저 분깃을 받도록 최선을 다했던 여호수아는 지도자의 본이 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기업이 될 땅을 모두 받았으므로,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어떤 약속이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믿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고, 성령과 진리로 거듭난 신앙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받은 약속 역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젠가 여러분의 눈으로 보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로 살아야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축복은 준비한 만큼 받기 때문에 성도들도 서로 축복의 분량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는지, 삶의 시간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았는지,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했는지, 모든 것을 보시고 은혜를 부어주시므로 늘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복은 시야를 가리는 안개와 같고, 세상을 하얗게 덮은 함박눈처럼 보기에는 많은 것을 받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하나님께서 강한 햇빛을 비추시면 안개도 함박눈도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처럼 그 축복의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갈증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받고 싶었던 장자의 복이 세상에서는 비록 고난일지라도, 그의 자손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모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여러분은 언제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수록 더 밝게 빛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은 성도의 삶은 언제나 응답이고, 축복이며, 평안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멋지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