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개척하라
14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6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맡은 바 책임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고 있을 때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책임이 중요하지만, 태어나는 순간 온 가족이 역할을 분담해서 감당해주지 않으면 아기를 잘 보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고, 먹고, 기고, 말하고 걷습니다. 모든 아기의 성장 과정이 신기할 정도로 똑같기 때문에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서로 자기의 경험을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아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씩 성장합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으면 반응하고, 엄마의 젖 냄새를 맡으면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점차 아는 얼굴을 보면 웃고 모르는 사람은 밀어내며 울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기저귀가 젖으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엄마에게 울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면 누가 자기를 돕는 사람인지 알고 태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부모를 의지하는 아기를 보호하는 것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도 모두 부모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에게 해가 되는 일이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기에게 해가 된다면, 결국 사랑으로 낳은 한 인생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아기를 자주 안아주면서 사랑을 가르쳐야 하고, 선한 말을 수없이 반복해 주면서 말의 뜻과 다양한 감정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주입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아기가 성장하면서 단계 마다 꼭 배워야 할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기들의 성장 과정은 똑같지만, 성장하면서 드러나는 능력과 재능은 똑같이 발달하지 않습니다. 아이에 따라 음악이나 미술이나 말이나 운동 등 재능이 모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이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잘 살펴야 합니다. 재능을 잘 살려서 멋진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올바른 인성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선한 인품을 갖도록 키워야 할 것입니다. 이때 형성된 인격은 잘 변하지 않아 그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책임은 더욱 큰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서 부모로부터 서서히 독립시켜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그들의 삶의 중심에 서 있으면,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는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아기 때는 부모의 보호가 절대적이지만, 성장한 자녀들이 자기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고난을 해결하며 인생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부모가 가진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면 그 자녀는 아무 일도 처리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이 선을 분명하게 지켜줘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도와주고, 성경을 가르치고, 말씀을 깨닫게 하여, 스스로 세상을 개척하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며 사명입니다. 부모가 이끌어줘야 할 부분과 자녀가 독립적으로 살아야 할 부분을 선을 그어가면서 자녀를 사랑한다면 대를 이어 믿음의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면서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믿음을 가르쳐야 하고, 건강한 사고를 갖게 해 줘야 하며 감성이 선하고 풍부한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버지로서 여러분이 성숙한 신앙을 가진 자녀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인생의 선한 방향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만나게도 하시고, 고난을 벗어날 수 있는 지혜도 주시며,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능력도 길러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환경을 통해 배우게 하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고, 자신 있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어버린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거만하며, 처음부터 재물이 많았던 것처럼 교만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뛰어난 지식을 가진 것처럼 형제를 무시하고 조롱하며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많은 지혜와 재물을 주고 싶어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잊게 되면 교만하게 행동하며 감사를 잊은 악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를 잊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악한 심령을 그대로 두시며 구원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과 고난과 연단 그리고 채찍과 징계를 통해서 그가 선한 길로 돌아서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들에게 나도 처음부터 딱딱한 것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려주시며 딱딱한 것을 먹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 때 옳은 길을 반복해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겸손한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겸손함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낌없이 무엇이든 맡겨주실 것입니다. 누구나 그런 시간을 통해 깨어지고 부서지며 성장합니다. 연약한 성도가 잘못할 때는 책망도 하면서 옳은 길도 알려주고, 잘했을 때는 크게 칭찬해주는 성도가 바로 믿음으로 잘 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기적,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것은 대를 이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삶이 편안해지자 지금까지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버렸고, 그토록 말씀을 가르치며 바르게 살라고 간곡하게 말해준 모세와 여호수아도 버렸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삶으로 살아내면서 갚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잃어가므로 성도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7장 15절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요셉 자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였지만,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그들에게는 한 분깃만 주었습니다. 요셉의 자손은 넓은 땅을 분배받지 못하자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우리는 두 지파인데 땅을 조금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자, 여호수아는 땅이 좁으면 삼림에 올라가 전쟁을 통해 스스로 땅을 정복하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지금 여호수아에게 불평하는 이들의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행한 2차 인구조사에 따르면, 므낫세 지파는 52,700명이고, 에브라임은 32,500명이었습니다.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요단을 건넌 므낫세 반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합해도 다른 지파보다 적은 인원이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76,500명이고, 단 지파는 64,600명이며, 잇사갈은 64,300명, 스불론 지파는 60,500명이므로 요셉 자손들이 받은 땅이 결코 좁은 땅이 아닙니다. 더구나 요셉 자손이 분배받은 땅은 요단 서편에 가장 비옥한 양질의 땅이기 때문에 지금 이들이 여호수아에게 불평하고 있는 것은 억지였던 것입니다.
스스로 개척하려는 마음이 없이 더 많은 땅을 분배 받아서 편하게 살려는 이들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지금 요셉 자손이 하는 말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상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분배받은 땅이 적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려는 믿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그 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자손이 더 이상 가나안 족속과 싸우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가나안에서 땅을 정복하는 것을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빼앗아 주셔야 하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내하시고 역사하셔서 이스라엘을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여기까지 따라오느라 고생했고, 자기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자기들이 평안한 세월을 만날 때까지 참고 기다렸기 때문에 모든 공로는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작은 그릇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어떤 큰 틀 안에서 역사하셨는지, 어떤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자신들을 도와주셨는지 깨닫지 못하고 교만한 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성도들과 상담을 하면서 성도의 인생의 큰 틀을 짜 줄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선하게 전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만족하면서, 거기까지 인도해 준 목회자에게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작은 것을 성취하였기에 더 큰 틀 안에서 더 성장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멈추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받은 축복의 자리가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자신의 지혜로 얻은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교만한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뿐 아니라 스승과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응답을 받고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면, 변함없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악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큰 틀 안에서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매달린 그 사람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권면한 목회자, 스승, 부모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정도로 성장했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지만, 영적인 성장은 그 누군가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17장 16절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요셉 자손은 상대가 철 병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산지를 정복할 수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어떤 전쟁이든 이기게 하셨고, 자신들의 칼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긴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불평하면서 당신이 조금 더 빨리 건져주었다면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저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이지만, 이렇게 악한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그냥 애굽에서 종으로 영원토록 살게 하셨더라면, 홍해를 가르지 않고 쫓아오는 애굽 군대에게 고난을 겪게 하셨더라면, 광야에서 만나와 바위를 쳐 물을 주시지 않고 스스로 구하게 하셨더라면, 불뱀이 나타났을 때 놋뱀을 세워주시지 않았더라면, 요단강을 가르지 않으셨더라면, 여리고를 무너뜨리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불평을 듣지 않아도 되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철 병거와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신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 많은 땅을 정복해서 나에게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가나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당면한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큰 틀 안에서 도와주신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가나안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억지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으므로 따라온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어려움만 있어도 불평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깨야 하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인생이며 구원의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심령을 깨서 감사할 수 있는 심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연단하신 것입니다.
성도들도 예수님의 희생으로 영적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시며 그 은혜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굳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아도 되는데도 사망에 빠진 영혼들이 불쌍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거저 받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편하게 살아갈 땅을 더 많이 달라고 불평하며 세상의 죄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도와주신 이유는 얻은 경험으로 세상을 이겨보라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 자손처럼 지금까지 도와주었으니까 우리 대신 철 병거와 싸워서 더 넓은 땅을 달라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성도들을 도와주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역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서 더 큰 상급을 받으라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을 편하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문제를 만날 때마다 불평하며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입니다. 부모들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와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그들을 위해서 평생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가 낳았으니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부모는 평생 희생하며 최선을 다했던 그 시간이 보람이 없기에 좌절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자기들은 힘이 없으므로 세상과 싸울 수 없다는 불신앙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나안 족속이 가진 철 병거는 두려운 무기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가지고 있는 철 병거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철 병거는 더 크고 두렵게 보일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가는 곳마다 사람, 물질, 환경인 철 병거를 만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철 병거 때문에 세상에서 살기 힘들고, 철 병거를 가진 그들을 이길 힘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생명을 지켜주셨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남은 인생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철 병거를 여러분의 능력이나 지식 소유를 통해서 바라보면 절대로 이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봐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가진 철 병거를 상대할 수 있을까? 이런 의심과 두려움을 가지면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처럼 철 병거를 장난감으로 본다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철 병거를 모두 피해 갈 수는 없으므로 세상의 왕인 바로의 철 병거를 순식간에 홍해로 덮어버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셉 자손처럼 철 병거가 무서워서 싸워보지도 않고, 충성하지도 않고, 가나안 땅을 거저 달라는 것은 아주 염치없는 행동입니다. 요셉 자손처럼 철 병거를 보고 뒷걸음질 치는 나약한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많은 철 병거를 만난다고 해도 믿음으로 물리치고,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져야만 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의 땅을 마련하는 성숙함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온 여러분을 세상의 어떤 척박한 땅이라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성숙한 자로 보고 계십니다. 밥을 먹여줘야 하는 아기가 아니라, 사랑과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성숙한 자로 보고 계신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한 여호수아처럼, 여러분의 믿음이라면 능히 쫓아낼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믿음이면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 거룩한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스스로 믿음의 땅을 넓혀 나가기를 바랍니다. 부지런한 자만이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세상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믿음과 능력을 보여주셔서, 그들도 철 병거를 쫓아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니 철 병거가 아무리 많아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세상의 철 병거는 장난감처럼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철 병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니 여러분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겨놓으신 전쟁이라고 말씀하시니 여러분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전쟁은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자리 잡은 철 병거를 단호하게 쫓아낸다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 애쓴 그 마음을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직접 누려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얼마나 평안한지 경험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무리 세상이 공격한다고 해도 여러분의 인생은 평안할 것이며, 여러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큰 승리를 거두며 살아가시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