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와 남은 땅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세월이 흘러가면 원하지 않아도 사람은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젊다고 자랑하지도 말고, 늙었다고 서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세월에 몸을 싣고 세월을 따라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보너스처럼 좋은 것을 얻기도 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세월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으므로 웬만큼 좋은 일에도 동요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고난이 와도 냉정할 수 있는 성숙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세월은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성큼성큼 달려가는 거인처럼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저만큼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무 살만 넘으면 내 마음대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빨리 어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대가 지나고 30대가 지나가면서 자신이 계획한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30~40대에는 다른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고 칭찬하며 인정해주어도 본인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도 있으며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자신도 없습니다. 이 나이는 자신을 스스로 낮게 평가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0~60대가 되면 열심히 산 결과로 많은 것을 이루어 놓고 조금은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려왔기에 스스로 인정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보면, 밀물에 떠밀려서 백사장에 나뒹구는 초라한 병과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꿈과 희망과 정열이 그 안에 녹아 있는 것이 크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욕심만으로 살아온 그 세월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고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올바로 택하지 못했다는 마음 때문에 거대한 바다 앞에 있는 작은 병처럼 자신이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60~70대가 되면 자신이 그리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이름이 적혀 있는 한 폭의 그림을 발견하는 것처럼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색들이 서로 덧칠해져 있어서 수정할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그림이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젊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렸던 부분들이 너무나 미숙해서 다시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실패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멋지게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소리치면서 살아온 인생이라 할지라도 결국 육신의 연약함과 세월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길을 함께 걷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혼자 남은 외로움 앞에서 눈물도 흘릴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도 20대로 돌아간 여러분은 그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 여러분이 자신을 낮추며 지혜와 인내를 더 한다면 세월을 보내고 마지막 언덕에 섰을 때 조화로운 인생의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부터라도 좀 더 밝고 환하게 산다면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살았는지 그림을 보면서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인생의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 것이 좋은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자녀들은 여러분의 바람대로 후회 없는 그림을 남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노력해도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이 정해진 것이라면,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돌아가느냐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할 것입니다. 늙은 사람들은 조급한 마음에 젊은 사람들이 인생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싶어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늙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세월로 만들어진 보석과 같은 경험을 알려주고 싶지만, 젊은 눈으로 볼 때 늙은 사람들이 그린 그림은 이미 빛이 바랬기 때문에 듣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누구나 늙을 것이고 때가 되면 생명줄을 놓고 육을 벗을 것입니다. 어떤 인생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므로, 남은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떠날 때 지금까지의 흔적을 부끄러움 없이 남길 수 있으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성숙한 부모는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알려주면서 믿음으로 밝고 아름다운 인생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간다면 부모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축복받은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갈렙은 85세에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나이가 많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얼마든지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마리아와 다니엘은 10대에 하나님의 뜻대로 목숨을 다해 충성하였고, 예수님께서는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그때가 가장 젊을 때이며, 어떤 나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믿음만 있으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기 때문에 충성하는 자의 나이가 많든 아니면 젊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보다 인간의 생각이 먼저 늙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안고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이삭을 바치던 아브라함처럼 충만하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젊게 살 것인지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13장 1절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배운 사람입니다. 모세가 120세에 느보 산에 올라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가데스바네아를 정탐했을 때 갈렙의 나이가 40세였고, 헤브론을 정복했을 때 85세인 것을 고려하면, 여호수아의 나이도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110세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을 보면, 그는 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자기가 누릴 부귀영화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께 드렸던 헌신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드리며 목숨을 다해 충성했던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백성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의 마음은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아직도 자녀를 위해서 할 일이 많은데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이제는 그들을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으므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늙어서 전쟁터에 나갈 수도 없고 백성들을 지휘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하므로 자녀를 도울 수 없는 부모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열심히 싸우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는 순간을 맞이하면, 아무리 잘 살아온 인생이라 할지라도 후회가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백성을 맡기는 것뿐이고,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시겠다고 하시며, 정복하지 못한 땅은 그냥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을 건너기 전에 이미 땅을 분배받았고,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아 있는 땅을 모두 분배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족속을 몰아내고 남은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평안한 마음으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은 땅을 정복하는 것은 이제 백성들의 몫입니다. 모세도 가나안에 직접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천국으로 오라고 하셨을 때 꼭 내가 가서 정복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여호수아가 정복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정복할 수 있다는 이런 믿음이 바로 성도들을 선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계획한 대로,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실패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쉽게 무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이나 지식과 인격이 모두 다르므로 가르치기가 쉽지 않지만, 자기가 떠난 후에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믿고 세워줘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윗사람이 가르쳐주는 것을 반박만 한다면 공동체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도 성도들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불화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하는 일과 인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절대로 자기주장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선 자의 믿음을 본받고,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의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키우지 않지만, 모세가 여호수아를 키운 것처럼 모두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세워줘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일을 누구든지 감당할 수 있도록 일을 맡기며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성장할 것이며 성도들은 평안한 가운데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나 자녀가 자기의 생각만 옳은 것처럼, 고집을 꺾지 않으면 가족 간의 불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내 판단이 옳은 것 같아도 상대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면, 자기가 주장하는 의견이 말씀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가장이 믿음으로 바로 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장이 영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한다면 가정은 더욱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건들은 모두 제자들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복음을 전할 제자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보여주실 때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곧 사람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자들이 올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늘 그들의 의견을 물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수아도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백성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죽음을 앞에 둔 시점에서 생각하니 정복하지 못한 땅이 너무나 많기에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을 올바로 가르쳐서 믿음으로 살아갈 힘과 능력을 길러주었으므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고기를 잡아서 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사랑이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북한에서 몰래 기도하는 성도의 음성이 녹음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이끌어 줄 목회자도 없고, 큰 소리로 찬양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책 하나만 가지고 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불을 쓰고 녹음을 했는지, 속삭이듯 하나님께 마음을 전하는 그 기도가 정말 북한에 있는 성도가 한 기도라면, 놀라울 정도로 성경적이고 올바른 기도였습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 같았는데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원하는 신앙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예시와 세상적인 이야기로 하나님의 말씀이 희석된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예화가 없이 말씀만 전하면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성도들의 수준은 진리를 진리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하나로 신앙을 단단히 세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가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고난에 처할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따르는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는 오직 말씀만 가르치고 전해야 하며, 성도들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 23장 6~7절
6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믿는 귀한 신앙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살라고 부탁했고, 말씀을 떠나 너희들 마음대로 살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이 잘사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다면 결국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신을 믿게 되면 우상에 절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모두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게 되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가르치지 않을 것이므로 이스라엘은 더욱 타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자손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희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르쳐야 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자녀를 세상 한가운데 세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진실된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당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보호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지금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즉 만물뿐 아니라 사건들까지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드러난 현상입니다. 만물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말씀을 통해 보이는 것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은 한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살아온 시간과 판단과 결정으로 만들어진 열매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판단과 결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에 의해 드러난 행동은 보이므로 그 행동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고,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심판을 전했기 때문에 그 신앙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그대로 천국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믿게 하며, 믿음으로 살아온 성도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보여주었던 모든 믿음의 행위는 보이지 않는 믿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여러분이 세월과 함께 만든 작품입니다. 그 인생길이 곧게 흐르지 못했다면 그것 역시 여러분이 결정하고 판단했기 때문에 좌우로 굽어 있는 것이며, 곧게 뻗어 있다면 매 순간 회개하고 돌이키며 살아왔다는 증거입니다.
모세의 인생은 여호수아를 통해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모세의 헌신과 충성은 여호수아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 평가를 받게 됩니다. 성도의 삶에 따라 어떤 말씀을 가르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인간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반드시 열매를 맺기 때문에 올바로 알고 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자기가 모세의 명령대로 살아낸 것처럼 백성들이 명령대로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그들이 정복해야 하는 땅을 모두 분배해 주었습니다. 땅을 분배받은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제 여호수아가 없는 상황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남은 모든 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네가 사는 동안 원하는 땅을 다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것을 믿고 네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다면 너는 평안히 내게 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해야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후손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영원하므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그 누군가를 세워주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헌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어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