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여호수아 · 조춘숙
나가기
8장

길갈에서 할례를 행한 백성들

여호수아 5장 1~12절

1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5. 두 팔을 벌린 주님께 안긴 스데반

모든 인간은 사탄의 종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므로, 그의 자손들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그 형상을 훼손하자 본능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가는 죄인들의 종말은 영원한 사망이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속량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바치셨고,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구원을 막기 위해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인간의 정욕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육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육에 매이면 욕심도 함께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향한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면 사탄은 일하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 성도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육이 없으므로 사탄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길로만 갈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된 성도들은 예수님 없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영원한 세계를 모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면, 자신의 의와 세상의 소유를 자랑하며 살아왔던 그 시간이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생각은 믿음이 성장할수록 더 크게 느껴질 것이고,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그 죄 된 시간을 버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했던 것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여호수아 5장 2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할례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이 어떤 곳인지, 지금 자신들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자신들을 보호해주실 것을 알기에 순종한 것입니다.

지금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공격할 것인지 방법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적을 앞에 두고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가나안에 들어오자마자 할례를 명하신 것일까요? 할례를 하면 군사들이 사흘 동안 전혀 움직이지 못하므로, 만약 가나안 족속의 공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꼼짝없이 죽어야 함에도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수치가 물러가는 방법이 할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가졌던 인간의 의를 끊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땅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확신 없이는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할 수 없고, 그들의 땅을 빼앗을 수도 없으므로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성도보다 능력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에게 그들과 맞서기 전에 먼저 인간의 의를 버리고, 욕심과 정욕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래야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도들을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있는 아낙 자손들과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상대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닙니다. 사탄이 그들을 능력과 힘으로 무장시켰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먼저 무장해제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제 무장해제 된 백성들은 성령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혈기와 정욕과 욕심을 무기로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이 흉기가 되어 성도들을 해칠 것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품에 보호하신 다음, 직접 사탄을 상대하시고 백성에게는 승리의 기쁨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품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물론 전쟁은 아낙 자손을 상대로 백성들이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기신 전쟁이라는 것을 믿고, 전쟁에 임한다면 크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놀라운 은혜를 알고 있었으므로 불평하는 백성들을 담대하게 책망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여 육신의 할례를 받은 것처럼, 성도들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 자신의 목숨과 인생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할례를 해야 했습니다. 이제 할례를 행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적이 와도 싸울 능력이 없는 이스라엘의 처지에서 보면 세상을 향해서는 죽은 자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산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죽어야만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자가 되어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연약함이 바로, 믿음의 충만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함으로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창세기의 말씀을 기록한 시기는 B.C 1450년경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할례를 명하셨는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193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비타민K가 하는 역할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비타민K가 결핍되면, 혈액 응고에 필요한 프로트롬빈이 부족하게 되어 결국 혈액이 응고되지 못해서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혈액 응고에 필수 요소인 프로트롬빈의 양은 생후 3일이 되면 성인의 30%에 달하고, 그 이후 계속 증가하여 생후 8일째에는 성인의 110%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생후 8일이 될 때 최고의 농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만일 고통이 덜할 것으로 생각해서 아기를 낳자마자 할례를 행한다면, 혈액 응고가 어려워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과학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 창조과학회가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진화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성경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들이 노력할수록 결국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명하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길갈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령대로 할례를 행하자, 하나님께서 ‘오늘날 애굽의 수치가 너희에게서 굴러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민족을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서 사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 가나안에서 할례를 행했기에 지난날의 수치가 모두 물러간 것입니다. 그들이 노예로 살아온 수치가 굴러간 것이고, 눈물과 한숨으로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고 부르짖던 암울했던 세월이 굴러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사십 년을 돌아야 했던 수치 역시 굴러갔습니다.

여러분은 지나온 시간 중에 어떤 수치가 굴러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멀리하며 불평했던 시간과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 살아온 시간이 부끄럽다면, 그 수치가 굴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야만 자신이 잘 보이기 때문에 지난날 하나님을 멀리했던 시간이 바로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5장 11~12절

11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었더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재앙을 만났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넘어갈 유일한 방법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킨 첫 번째 유월절입니다. 두 번째 유월절은 시내 광야에서 시내 산을 떠나기 직전에 지켰습니다. 그 후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 사건이 있었고, 불신앙을 보인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그들을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길갈에서 사십 년 만에 세 번째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생명이고 구원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야곱을 통해 열두 아들을 허락하셨으며, 요셉이 애굽에서 옥살이를 하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모세를 연단하셔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지혜자로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의 장자가 죽는 마지막 재앙을 끝으로 이스라엘을 어린 양의 피로 살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유월절을 평생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들은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물론 지금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유월절의 의미는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명기 1장 2절

호렙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하루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사십 년 만에 도착한 것입니다. 믿음만 보여드리면 며칠 만에 갈 수 있는 길을,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연단을 받았던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향했다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마다 회개하고 순종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한다면 더 많은 시간을 은혜 안에서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처럼 사십 년 동안 연단을 받는다면, 헌신할 기회가 적어질뿐더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할 수 있기에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계속 의심하며 한걸음 전진했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한다면, 이들처럼 평생 진리의 길을 두고 돌기만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든 아니면 의심하면서 하나님을 배척하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천국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이스라엘인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과 성도들에게 가나안이라는 땅을 주셨고, 그 땅에서 살게 하려고 유월절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기적을 보았으며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신앙을 지키며 죽도록 충성해야 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부터 교회 다니셨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딱딱한 음식을 먹을 정도로 성장했습니까?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서 삶이 변화되었습니까?

제 질문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며, 여러분에게 있는 보혈이 두려워서 사탄이 도망가는 믿음으로 성장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야의 생활을 청산해야 하고, 죄의 물이 흐르는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고 옛것을 단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내가 서 있는 현주소가 애굽인지, 광야인지, 가나안인지를 분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유월절 이튿날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 땅의 곡식을 먹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었던 만나가 그쳤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는 만나를 볼 수 없을 것이며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 주신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영적인 만나를 먹여주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육을 벗고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순간, 만나는 끊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만나가 끊어졌다는 것은 아직 땅을 차지하지 못한 그들에게는 어쩌면 위기입니다. 백성들과 짐승에게 양식을 매일 공급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에 만나를 주셨을 때는 다른 음식도 달라고 불평했지만, 만나가 그치자 귀한 양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물이나 공기 그리고 늘 편하게 대해 주던 사람과 물질을 잃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항상 쓸 돈이 있고,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며, 행복한 가정과 건강이 있다면, 그것이 언제까지나 여러분의 소유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하므로 늘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받았을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아끼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자족할 줄 아는 믿음과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행복한 것입니다.

만나는 언젠가는 끊어져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물러 있는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더는 만나가 필요 없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바로 만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도록 날마다 만나를 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다른 음식을 달라고, 더 풍요롭게 살게 해 달라고 불평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불평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마음으로 메추라기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메추라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만나가 아닌 메추라기를 받았다고 좋아하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책망이 임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내가 지금 무엇을 받았고, 또 무엇에 감사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작은 감사를 놓칠 때 가나안에서 심고 자란 그 땅의 양식을 먹을 수 없으며, 축복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9~10, 12절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가 부분적으로 깨닫고 알던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알려주셔야만 깨닫기 때문에 부분적이지만,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습니다. 재림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알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와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과 성취가 한꺼번에 믿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볼 때 그 감동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나를 내려 주셨을 때 기뻐하며 감격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자 만나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게 되자,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을 배신하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만나를 내려주고 계십니다. 유월절에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는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자족하는 믿음과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거두셨을 것입니다. 하늘의 만나를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마음의 할례를 하는 것이 두렵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할례를 행한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세상을 향한 욕심과 정욕을 잘라버리기 바랍니다. 세상의 소유는 가질수록 더 큰 욕심을 부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많이 가질수록 평안해지며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서 나는 곡식과 열매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자리에서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길갈에서 할례를 행한 백성들
24% · 8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