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여호수아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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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길갈에 기념할 돌을 세우라

여호수아 4장 15~24절

15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18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19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5. 두 팔을 벌린 주님께 안긴 스데반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증거입니다. 인생이란 사람의 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사람을 알고 싶을 때 그가 살아가는 하루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그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자녀와 재물과 소유를 하루에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면서 모았던 재물과 사랑하는 자녀를 하루에 모두 잃고 나자, 그가 맞는 다음날은 비참하고 불행했습니다. 사람에게 하루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루가 모여 나이가 되며 그 사람의 나이가 만든 흔적을 보면서, 그를 평가하며 존경하기도 하고 신뢰와 불신을 갖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의 실수나 실패를 비웃기보다는 용서해주고 보듬어 주면서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옳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인생을 통해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작은 실수로도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으면 많은 만큼 수많은 것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어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면 후회가 많습니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선택을 잘했더라면, 그 말보다는 이런 말을 했더라면 등등 후회를 하지만 새로운 길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거짓으로 인생을 꾸미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남겨 놓은 흔적을 보고 그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이 남긴 흔적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루를 잘 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흔적을 남기십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흔적으로 십자가를 남겨 놓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기적을 이루셨는지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도들이 어떻게 순종을 했는지 모두 기록으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후손들이 하나님의 흔적을 보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간 기적과 같은 사실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뽑으라고 하셨고, 요단강 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 있던 곳에서 열두 개의 돌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가나안으로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돌들은 요단강이 끊어진 것을 기념하는 돌로써,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되게 하시기 위해서 가져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갈에 열두 개의 돌을 기념비로 세웠습니다. 후일에 자손들이 이 돌이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냐고 묻는다면,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이루셨는지 부모들은 가르쳐줘야 합니다. 조상들이 어떤 믿음으로 순종했는지 돌을 보면서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갈에 가져간 열두 개의 돌처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 있던 요단 가운데 자리에도 열두 개의 돌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사장들이 가나안 땅에 올라간 동시에 요단강물이 다시 흘렀기 때문에 이 돌들은 물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스물네 개의 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물이 갈라진 사건을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남겨진 흔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크신 은혜를 전할 때 그 사건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 돌들이 입증해 줄 것입니다. 자신들이 이 돌을 세울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그리고 가나안에 발을 딛는 순간 다시 강물이 흐르게 하신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으므로 사실대로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는 표징으로 사람 대신 돌을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사처럼 사람을 계속 세우신다면 그들이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돌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여호수아와 제사장들과 앞장서 요단을 건넜던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건넜기 때문에 그들이 자손들에게 이 사실을 능히 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굳이 돌로 기념비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열두 개를 완전수로 보고 돌을 예수님으로 본다면, 완벽하게 역사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예수님의 승리를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변하는 인간의 심성과 변하지 않는 돌로 비교하고자 합니다.

모세는 죽기 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의 법과 역사하심을 다시 전했는데, 그 기록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변질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이 말씀을 준행하기만 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택하신 백성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몰아내라고 하셨고, 그들과 아무런 언약도 맺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 되고 그들과 혼인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하게 되면 그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고, 결국 하나님을 배신할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백성들을 모두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솔로몬이 천 명의 아내들이 섬긴 우상을 모두 받아들여서 결국 하나님을 떠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왜 섞이지 말라고 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적을 직접 보고도 불평했던 이스라엘의 신앙을 알기에 너희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성결한 마음으로 단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며 모든 우상을 불태우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습니다. 모세의 간곡한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이 갈라지는 것도 보았으므로, 증표로 돌을 세우면서도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본 자신들이 가나안 여인들과 혼인할까 봐 염려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신앙이 충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나안이 살기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다고 해도 자신들이 그 여인들과 혼인하고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보여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그 놀라운 은혜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충만할 때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성도들이 이해가 안 되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불평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것을 왜 믿지 못하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왜 살지 못하는지 답답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자신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믿음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고, 혼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며, 가나안 사람들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시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 주면 되는데 왜 굳이 돌로 기념비를 세우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서가 끝나고 「사사기」로 넘어가면, 사사기 2장 2절에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곧바로 듣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그토록 당부했지만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만 먹고 살던 그들은, 두 사람이 어깨에 메어야만 들 수 있는 열매와 풍성한 곡식들을 보자 결심했던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기름진 땅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보자, 그들과 함께 산다면 부러울 것 없이 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나안 여인들과 혼인을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 말을 거역하고, 그들과 타협하며 혼인했고 자녀를 낳아 키우게 되자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나약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늘 자신의 편리 때문에 행동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돌로 기념비까지 세워주시며 기억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잘 사는 것을 보게 되면, 변질할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신앙을 아시기에 사람이 아니라 돌로 기념비로 세우신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백성들이 그 땅 여인들과 혼인을 하고, 단에 절하며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구원은 사람들의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켜내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는 우리를 책망하시고 칭찬하시며 인도하셨기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성령님께서 보호하시며, 빛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성도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받은 구원의 축복은 인간의 노력이나 하나님의 한순간 결정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영원에서 영원까지 역사하심으로 받는 하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절대로 인간은 만들 수 없는 기적이며 아무나 주고받을 수 없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이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크신 하늘의 복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선악과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들은 안타깝게도 영원한 축복을 버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4장 14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인격적인 분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이 모세를 섬겼던 것처럼 너를 섬기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을 보면, 성도들도 약속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영원토록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요단이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하는 성도를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헌신하는 성도가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사람들이 그 성도를 높여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것처럼 성도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의를 믿으려고 하므로 인간의 결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실 때, 수제자인 베드로는 주님께 어디로 가시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지만, 후에는 따라올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 있게 주를 위하여 내 목숨도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너는 지금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것처럼 자신 있게 말하지만 절대로 목숨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나를 위해서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순교할 것처럼 자신 있게 대답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신감을 믿지 않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악한 인간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탄이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채찍을 맞으며 피를 흘리고 계신 예수님의 눈과 마주쳤지만, 그는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믿고 있는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내 생각에는,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옳고, 내가 확신하는데, 내가 맹세하는데, 나는… 등등 내가 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이스라엘을 믿지 못하시고 변치 않는 열두 개의 돌을 세워주셨지만, 사람들은 돌을 보고도 배신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요단강 바닥에는 열두 개의 돌이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볼 때마다 그 속에 세워 놓은 열두 개의 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강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맨땅을 걷도록 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에게 더 큰 약속을 주시며 그 약속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을 지키고 계신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거세게 흐르는 죄 한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흐르는 요단강 밑바닥에 세워져 있는 돌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지 못하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으로 죄를 끊어버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며, 그들 마음에는 흰 돌이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역사를 성취해 주신 아름다운 대속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며, 많은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녀들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보고 믿음이 무너졌지만, 성도들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망설임 없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열두 돌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시기 위함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돕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십자가는 성도들이 온 인류를 향해 담대하게 회개를 선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남겨두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들이 홀로 싸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신 흔적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서 요단을 건넌 언약궤처럼, 여러분이 홀로 세상을 건너지 않도록 성령께서는 앞길을 예비하시며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누렸지만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아낙 자손과 같이 거대한 적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의 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세상은 엄청나게 큰 아낙 자손처럼 보일 것입니다. 절대로 이길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거대한 골리앗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여러분의 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넌 이스라엘처럼 죄로 충만한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을 믿고 인생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경외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며,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아버지라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백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들릴 것이며,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영혼 구원이 여러분이 선포하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길갈에 세워진 열두 개의 돌이 하나님의 역사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이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전하기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여러분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계신 예수님의 눈과 마주쳤을 때, 변하지 않는 열두 개의 돌처럼 제가 여기에 있다고 변함없는 고백을 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며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요단을 가르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이 많은 기적을 보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아가며 거룩한 신앙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어둠 가운데 높이 든 여러분의 등불을 보고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열두 개의 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길갈에 기념할 돌을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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