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여호수아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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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발람(2)

여호수아 13장 22절

22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민수기 22장 28~35절

28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1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32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34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35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발람에 관한 두 번째 설교입니다. 잠언 9장을 보면, 거만한 자는 책망을 받으면 책망하는 자를 도리어 미워하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자는 책망하는 사람을 도리어 사랑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에게 교훈하면 그 사람은 교훈을 받아들여서 더 지혜로워지고,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면 의에 지식이 더해져서 더욱 지혜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둡고 거만한 사람은 교훈을 주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분을 내며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권면하는 것은 성도가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잘 살아가도록 돕는 것뿐인데, 자기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을 듣지 않는 것은 자기에게 크게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사람은 실수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형제들의 권면을 통해서 지혜와 명철을 얻어 바른길로 갈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유익은 없을 것입니다. 듣기 힘들더라도 지혜롭게 권면을 받아들이고, 그 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폭넓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영적으로 권면하는 말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릇이 작고 어리석어서 성장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권면을 받았을 때 마음과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권면대로 해 봐야만 자기의 생각이 옳은지 아니면 틀렸는지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나 권면하는 사람은 상대가 잘못 받아들여서 실족할까 염려하는 마음과 잘 받아들여서 복을 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권면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만약 권면을 받아들여서 영적으로 성숙한다면 하나님께 받는 복은 모두 권면을 잘 받아들인 사람의 것입니다. 물질의 복도, 자녀들이 받는 축복도, 건강의 복도, 미래의 복도 모두 권면을 받아들인 사람이 누리는 것이지 권면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자가 심방을 할 때 그냥 여러분의 집에 왔다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떤 말씀을 전해야 성도가 마음을 열고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온 마음을 다해 기도로 준비합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복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가정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칭찬보다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기 위한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결국, 권면의 말씀을 감사로 듣고 돌이키는 심령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옳지 않은 선택을 막으셨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돌이키도록 권면하셨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만약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복을 그에게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발람은 후세에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단한 사람으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권면을 받았을 때 어떤 결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리에 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아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거절하셨는데도 기도를 거듭하는 발람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허락이 아니라 발람을 보호하셨던 울타리를 걷어내신 책망입니다. 처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다면 발람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똑같은 기도를 하는 발람에게 가라고 하신 것은 응답이 아니라 그의 악한 본성을 그대로 두신 것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준비했는데 가치 없는 것을 갖겠다고 떼를 쓴다면, 어쩔 수 없이 원하는 것을 주지만 준비했던 좋은 것을 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불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면서도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죄를 지으면서도, 언제나 자기들을 보호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면 물을 주시고, 양식이 없다고 불평하면 만나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실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가나안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평하는 그들을 버리지 않고 모압 평지까지 데리고 오신 이유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끝까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불평으로 일관하자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정작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을 본 그들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20세 이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은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날마다 인생이 힘들다고 불평하고, 왜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고난을 겪어야 하느냐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헌신하도록 늘 축복을 주시고 계셨습니다. 그는 자기만 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불평하며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면서도 응답하시는 것은 그 응답을 받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가 헌신했던 열매는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하지만, 그 성도는 받을 열매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헌신이 믿음인지 아니면 세상의 욕심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더 충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발람이 하는 말과 행동은 사람이 보기에는 선하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 왕에게 가면서도 자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 전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발락 왕에게 가도 되겠느냐고 다시 묻는 발람에게 가라고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너는 발락이 주는 재물을 뿌리치지 못해서 가지만 나는 그런 너의 마음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인지, 또 그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만방에 선포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한 마음과 욕심 그리고 어리석음까지 사용하시며 일하시는 분이므로 발람이 자신이 지혜롭게 처신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민수기 22장 23절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발람은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귀가 놀란 것처럼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당황한 발람은 나귀를 채찍으로 때리며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나귀는 좌우에 담이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발람에게는 칼을 들고 서 있는 여호와의 사자가 보이지 않았지만, 나귀의 눈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보였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있는 앞으로 갈 수 없어서 나귀가 밭으로 들어간 것도 모르고, 발람이 계속 채찍질하자 아픔을 참지 못한 나귀는 발람의 발을 담에 비벼서 상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발람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자신 있게 발락 왕에게 가고 있는데, 지체하는 나귀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좁은 길에 갇혀 오갈 데 없는 나귀의 입을 여호와께서 열었습니다. 나귀는 발람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라고 물으며, ‘평생 너를 태웠지만 내가 언제 이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있느냐’라고 사람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발람은 나귀에게 ‘네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에 만약 내 손에 칼이 있다면 곧 너를 죽였을 것’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지금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귀가 발람에게 말을 했다면 발람은 놀라서 기절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 발람은 나귀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것입니다. 나귀가 입을 열어서 발람을 조롱해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성도들이 세상의 길로 가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을 해도 들을 귀가 없으므로 그것이 조롱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발락 왕이 발람을 찾았다는 것을 보면 그의 지혜는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귀가 말을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돌이킬 기회로 삼지 못하고 나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짐승의 입을 열어 발람이 회개하도록 또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 계시는데, 발람은 욕심 때문에 그 은혜조차 알지 못하는 화인 맞은 심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을 막고 계시는 것을 짐승인 나귀도 보고 있는데, 자칭 선지자라는 발람은 영적 소경인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못 가게 말리는 나귀를 도리어 채찍으로 때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앞에서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나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발람을 등에 태웠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성도들 때문에 그리스도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올바른 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고 영적 소경이 되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성도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죄의 자리에 있는 성도에게, 너는 그렇게 혈기를 내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맞느냐고, 너는 교회를 다니면서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나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면 되느냐고 조롱을 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나와 이런 자리에 있어도 되느냐고 하면서 판단을 받는 대상이 도리어 판단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진리를 거역해서도 안 되지만 양심에 걸리는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심에 찔렸다면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첫 번째 기회이고, 세상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다면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떨어질 수 없는 육신을 가졌으므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발람처럼 짐승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내 믿음대로 짐승을 이끌고 다닐 것인지, 그것은 성도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을 다스려야 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면, 세상은 가차 없이 성도들을 향해 입을 열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다스리라고 주신 짐승에게 조롱하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15~16절

15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베드로가 말하길, 탐심이 가득한 눈으로 범죄하며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여 탐욕에 물들게 한 거짓 교사들은 모두 저주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거짓 교사들과 동일한 죄를 지은 사람이 발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음탕한 생각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는 거짓 교사들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고,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방탕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악한 발람이 지금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다면서 자신 있게 길을 떠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발락 왕에게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세상의 복을 강조하는 목회자 역시 발람입니다. 신학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자신 있게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세상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발람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부귀영화를 꿈꾸며 오직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발람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발람이 겪는 동일한 사건이 「여호수아」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가는 발람과 여리고를 정복하기 위해서 길을 가는 여호수아 앞에 동일하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선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두 사람 앞에 나타나신 것은 그들을 돕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선이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심판이 될 수도 있고 힘과 능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길을 떠나는 두 사람처럼 보이지만,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를 직접 눈으로 보았고, 발람은 나귀가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리고를 정복하는 여호수아를 앞장서서 도와주었고, 발람은 나귀의 조롱을 들은 후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도 화인 맞은 심령처럼 자기의 의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성도들도 충만할 때는 여호와의 사자를 눈으로 보는 여호수아가 되기도 하고, 강퍅하면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하는 발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복과 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2장 34절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발람은 순간순간 돌이키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자기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그는 만약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돌이키는 척해도 발락 왕이 더 많은 재물을 보내면,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처럼 하다가 모압으로 떠날 것입니다.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이킬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제로 막아 주시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고, 회개하면 막아 주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우리가 그의 종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전혀 돌이킬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의 행보를 막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버리면 인간의 힘으로는 사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늘 조심해야 합니다.

발람이 발락을 만나게 되면 이제 그는 돌이킬 기회가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받는 순간 기회를 잃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가 발락 앞에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보호하시는 차원이지 발람의 신앙과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은 삼십을 대제사장에게 돌려줬지만, 모든 기회가 지났으므로 구원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듣거나 고난과 연단을 당하고 있다면 기회로 생각하고 돌이키기 바랍니다. 믿음의 형제들의 권면을 듣고 마음을 열고 돌이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기회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발람과 같은 자리에 절대로 앉지 않기를 바랍니다. 발람은 훗날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핑계 댈 수 없습니다. 나귀의 눈과 입을 열면서까지 그의 가는 길을 막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이든 사랑하는 여러분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막고 계실 것입니다. 왜 나만 연단을 받아야 하느냐고, 왜 나만 건강하지 못하냐고, 왜 나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불평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보여 드릴 수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여호와의 사자를 눈으로 보고 그의 도움을 받는 여호수아처럼 영적으로 늘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발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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