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택한 이스라엘
8장에는 아버지를 버린 두 번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사무엘을 버린 그의 아들들이고, 또 한 번은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입니다. 육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를 버리는 것은 본인에게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엘리의 아들이 타락한 것은 사무엘의 아들이 타락한 것과는 다릅니다. 엘리는 아비로서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했고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엘리를 책망하시며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을 보였지만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입니다. 사무엘은 장자 이름을 요엘, 즉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으로 지었고, 차자 아비야는, ‘여호와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사무엘의 신앙이 아들들의 이름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들들이 여호와를 섬기며 잘 성장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엘과 아비야는 아버지 사무엘의 뜻과는 반대로 세상의 이익을 따라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며 백성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아들들의 악행을 사무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보면, 세상은 자녀의 행실로 부모의 인격을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도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 이름대로 살지 못하면 세상은 성도들을 불신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죽는 것을 직접 본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은 올바로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영혼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 사무엘의 마음을 아시기에 요엘과 아비야의 타락에 대해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옛말에 아들을 가진 부모는 도둑놈을 욕하지 말고, 딸 가진 부모는 창녀를 욕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녀를 올바로 키우는 것이 힘이 든다는 말일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신앙으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낙심하여 자기 신앙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한 것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기뻐하고 낙심하기 보다는 더 멀리 보면서 인내하며 사는 것이 성도들에게 필요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 때문에 분노한 백성들은 당신의 아들들이 바르지 못해서 우리에게 희망이 없으니까 이방나라처럼 사람으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는 그들을 보면서 사무엘의 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밀어내고, 왕의 자리에 인간을 세우는 빌미를 제공한 것 같아서 하나님께 죄송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세상을 향한 욕망 때문에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모든 족속이 너 때문에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복의 주체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고,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며, 영육간의 복을 주셔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고 그의 후손들이 축복을 받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다른 나라와 구별시키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출애굽 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많은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철저하게 보호를 받으며 그들은 생명을 얻었고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하나님의 위대함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다고 사무엘의 아들들을 핑계로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내려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은 문제도 해결해 주셨고, 여기저기 죽음이 널려 있는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성령의 울타리로 생명을 지켜 주고 계십니다. 아쉬울 때는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위대하다고 찬양했다가, 자신의 욕심대로 되지 않으면 당신은 무능하다고 당신은 나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쉽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그 감사를 영원히 간직해야만 올바른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길 거절하고 있습니다. 본질을 잊고 자신들의 감정에 따라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왕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혹시 하나님을 한 번도 왕의 자리에 모시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늘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거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만 마지막 날에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의지하던 사무엘이 아들들을 잘 키워내지 못한 것을 보고 하나님까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돌아선 백성을 보면서 사무엘이 고통스러워하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네 탓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나를 버린 것이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백성의 본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을 찾고 버렸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고난을 만난 것을 자신의 죄로 돌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해 준 사무엘과 같은 지도자를 원망하는 것이 옳지 않기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위로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사일 뿐입니다. 사사가 전하는 말씀을 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그 진리의 말씀대로 누가 살아내느냐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이든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앞선 까닭이며 이방인들처럼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을 원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바로 죄이며 불신앙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9절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왕을 온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의 힘을 갖지 않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놓아주고 싶었지만 빌라도에게는 사람들의 분노를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빌라도와 백성들을 향해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시인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어린 양처럼 유월절에 죽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것을 시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의 왕이신 것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절에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이 되셨기 때문에 이제는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한 할례가 할례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한 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왕을 알아보지 못해서 세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인생이 끝나면 죽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보좌에 계시므로 성도의 축복 역시 영원한 것입니다.
사백 년이 넘는 동안 종살이를 하던 자신들을 구해주시고 홍해와 반석을 가르며 가나안을 정복하도록 도와주셔도 그들의 눈에는 호화롭게 사는 이방인들만 보였습니다. 문제에 응답하시고 평안의 길로 인도해 주시지만, 당장 힘들면 왜 저들처럼 편안한 길을 주지 않느냐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인간을 왕으로 세워 달라고 소리치는 저들입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왕을 달라고 소리치는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당신들이 하나님을 버릴 수 있느냐고 책망하는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곧 사망이라고 책망하면 어쩌면 그들은 여러분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막을 것입니다. 생명을 전하던 사도 바울에게 돌을 던진 것처럼,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에게 세상은 핍박과 불이익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외쳐야만 그들도 여러분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계시록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빨리 달려가고 있습니다.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을 세우기 위해서 모든 종교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고 있습니다. 세상은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지폐를 쓰고, 같은 법을 만들고, 한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 점점 세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이 하나로 묶이게 되면 종교탄압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믿음을 지켜야만 합니다. 요한이 계시를 받은 대로 세상은 실제로 움직이고 있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날들로 이어질 텐데 그때는 어떤 믿음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지금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고, 성경을 볼 수 있고, 마음껏 큰 소리로 찬양하며 예배드릴 수 있는데도 성도들은 그날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은 성경에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는 날이 아닙니다. 심판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그날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한 것처럼 세상의 바벨론이 무너지는 엄청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믿음의 성도들은 그날을 위해서 말씀의 반석 위에 서야 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웃을 믿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금식했을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모두 잊고 이스라엘이 다시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창조주이며 절대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거울삼아 세상이 사람을 왕으로 선포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2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출교하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종교가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모여들고 있지만, 그 사랑이 누구를 위한 사랑인지 정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이름만 하나님, 교회, 목회자이지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저 내가 아는 말씀, 내 교회, 내 성도, 내 것, 나만을 섬기며 세상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교회들이 빠르게 하나님을 버리고 있는 것을 과연 우리 성도들이 알고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지금도 고난이 오면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출교를 당하고 핍박을 받게 되었을 때 세상을 뛰어넘는 신앙을 갖지 못하면 결국 둘째 사망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도들은 알까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로서의 두려움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핍박하면서도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대로 오신 초림예수님과 재림예수님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올바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진리를 붙들고 세상에서 살아봐야만 그 언약을 믿을 수 있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므로, 더욱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상 8장 9절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맹목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보호 아래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인간의 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좁은 판단으로 전능의 왕을 버린 것입니다. 전적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로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왕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고 계신지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백성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람 중에 왕을 택하여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은혜로 다스리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왕은 백성의 뜻과 상관없이 강제로 다스릴 것입니다. 왕은 권력을 위해서 백성들의 아들과 딸을 강제로 징집할 것이며, 왕을 위해서 백성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면 언제든지 응답하시던 하나님과는 달리 왕은 백성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채찍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두 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람을 택한 것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만든 천부장과 오십부장의 제도는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통솔하고 보호하던 제도였습니다. 또한 모세를 보호하고 백성들의 편안함을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왕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제도를 사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 받고 영화롭게 살던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들의 손으로 모든 평화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는 그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놓아 버리신 것입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너희가 택한 왕에게 고통을 당하더라도 나는 너희에게 응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택한 왕’이라고 말씀하시며 마음 아파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바른 길로 인도하는 부모를 버린 자녀에게 지금 집을 나가면 절대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별된 민족으로 세우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왕에게 고통을 당해도 응답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심판입니다. 잘못했을 때마다 책망하고 채찍을 드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책망보다 더 두려운 것이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의 고통에 무관심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즉시 책망을 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증거이므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버려도 책망이 없다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이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왕으로 다시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삶의 기준으로 세워 놓은 그 말씀이 여러분을 영원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9장 15절-24절
15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18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21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22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23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