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관심을 갖는 자
여러분은 자녀가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얼마나 넓은 아파트에 사는지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십니까? 아니면 그 친구의 심성을 보시기 위해서 대화를 시도 하십니까? 어쩌면 잘 살고 못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자라는 말을 듣고 가깝게 지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세상적인 마음을 잘못 오해해서, 내 자녀에게 좋은 친구를 만나도록 돕는 부모의 사랑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사랑으로 포장한 인간의 악한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올바른 친구를 만나고 있는지 늘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친구를 사귀도록 권유하는 것은 자녀에게 독을 먹이는 행위이고 하나님께서 자녀를 돕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마음 깊이 깔려 있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동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삶이 영적인 신앙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욕심과 정욕을 날마다 버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잘 판단하여 신앙에 방해가 되는 환경이나 사람은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지만, 그 영혼도 성도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잠깐의 잘못된 판단이 여러분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친구 때문에 원치 않는 불순종의 길을 갈 수도 있으므로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말씀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마음이 악한 사람도 조심해야 하지만, 심성은 착한데 그리스도를 절대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도 조심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거리를 두지 못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다투라는 말이 아니라 좋은 관계는 유지하되 그들이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을 흔들지 못하도록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은 외모보다는 그 심령을 봐야 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봐야만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 기름 부을 자를 세웠으니 가서 찾으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의 일을 오랫동안 감당해 온 사무엘조차도 결국 사람의 외모로 왕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의 외모를 보며, ‘이 사람이 왕이 아닐까?’ 고민하는 모습은 인간이 거듭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훈련 없이 왕으로 세워진 사울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결국 인간의 욕심과 정욕에 무너지는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16장 한 장에 이 두 사건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무엘의 잘못된 판단이나 사울의 교만한 행동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날마다 슬퍼하는 사무엘에게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렸는데 언제까지 그를 위해 낙심하고 있겠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이해관계보다는 정으로 맺어집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 기도해주고 보살펴주었던 사람이 하나님과 여러분을 떠났을 때 사랑했던 시간 때문에 쉽게 마음에서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사랑했던 성도가 매몰차게 돌아서면 같이 마음을 닫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서 버리기 쉽지 않고 상처도 아주 큽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죄를 알면서도 그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 것처럼, 마음에서 버리지 못하고 기도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신앙과 세상을 반복해서 오고 가는 사람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 그에게 축복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냉정하게 버리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지금 사무엘이 사울의 영혼을 붙들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바로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 멀리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그만 슬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네가 사울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도 나는 듣지 않을 것이고, 사울 또한 네가 권면해도 돌이키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울이 세상으로 마음을 돌리자, 이새의 아들 중에 믿음으로 살고 있는 다윗에게 관심을 가지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봐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사백 년간의 어둠이 이스라엘을 덮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어둠의 끝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사울이 왕의 자리를 믿음으로 지키지 못하고 타락했을 때 이스라엘을 일으킬 다윗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분명히 왕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셨다고 말씀하셨고, 당장 왕으로 세울 순 없지만 이미 다른 곳에 왕을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섭리는 아무리 영성이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부 알 수는 없으므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가 타락했을 때 그가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무엘 자신을 세우셨던 것처럼, 사울이 타락했을 때 또 누군가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면 사무엘은 다윗을 바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이 타락했을 때 다른 사사를 바로 준비하셔서 그로 하여금 나라를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목회자인 제가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거짓진리를 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물줄기교회와 성도의 영혼을 위해서 저를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목회를 그만두지 않는 한, 여전히 물줄기교회 목사로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이 없는 목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인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왕의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누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우기 위해서 이새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이새가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는데 그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이곳에서 모압 여인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의 아들로 이새가 태어났으며 그는 아들 여덟 명을 낳았습니다. 여덟 명의 아들 중에 막내 아들이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지만 사무엘에게 이름을 말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은 아들들을 모두 만나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계획 가운데 있지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가야하고, 봐야 하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실 때는 지도자라고 하셨지만,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는 왕, 즉 ‘멜렉’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사울과 다윗을 대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달랐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삶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하시는 것은 이렇게 다릅니다. 사람이 볼 때는 똑같은 왕이지만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버림받은 왕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6절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자 사울처럼 용모가 준수하고 출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하나님 일을 감당한 사무엘이지만 그 역시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할 때는 호산나 찬양했다가 십자가를 지시자 버리는 죄인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초라한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안식일의 주인이며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여 사망을 이기시고 승천하신 것을 보고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메시아라고 하기에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너무 가난했고 배움도 없었으며 보잘 것 없이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을 때,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이 엘리압의 용모와 키를 보고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택한 왕일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 생각을 읽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외모를 보지 말라고 하시며 나는 중심을 보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더라도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을 칭찬을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세리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대할 때 외모와 중심 중에 어떤 것에 더 관심을 두십니까? 사람을 학벌과 재산과 외모로만 판단한다면, 하나님께서 외모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으니까 너도 나처럼 중심을 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새의 아들 일곱 명이 모두 사무엘의 앞을 지나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 사무엘은 직감적으로 왕으로 택함 받은 사람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새에게 당신의 아들들이 모두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이새는 막내아들이 있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 아버지가 막내인 다윗을 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새가 판단하기에 다윗이 왕이 되기에는 너무 어리고 연약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6장에 사무엘과 이새의 실수를 모두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의 실수를 통하여 우리의 실수를 막아주시려는 것입니다. 네가 보기에 어리고, 네가 보기에 능력이 없고, 네가 보기에 절대로 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배제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잘 살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조차 다윗이 어리기 때문에 절대로 왕이 될 수 없다고 제외시켜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 다윗을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상태만 보시므로, 훈련을 받은 후에 변화 받을 다윗을 아시기에 그를 통일왕국을 이룰 위대한 왕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세상적인 판단으로 인해 기회조차 주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까? 당장 지금의 모습보다는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을 시킨 후에 거듭날 그의 영혼을 보신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13절 사무엘이 뿔병을 가져다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날 이후로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을 받아 능력과 지혜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그 나무가 모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양을 치고 형들의 심부름만 하던 다윗에게 성령께서 임하시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지혜와 충만함이 넘쳤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는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람은 처음부터 악령의 지배를 받았지만 여호와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악령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죄로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자 악령이 다시 그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나 악령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울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다윗의 만남이 시작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세상의 왕인 사울과 목동인 다윗의 만남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을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 얼굴이 아름답다고 하였고, 사울의 신하가 소개할 때 수금을 잘 타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고 말한 것으로 보면 다윗이 뛰어난 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사울은 악령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을 불러 수금을 타게 하였습니다. 이런 날을 기대하고 다윗이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성실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그 노력이 준비된 자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늘 성실한 삶으로 준비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치기는 절대로 왕을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직접 사울 왕에게 보내시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윗을 높여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준비됨을 보시고 계획하신 대로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람과 환경을 사용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도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탔다고 해서 사울에게 고통을 주는 악령이 떠나는 것이 아니지만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도와주시자 악령이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세상을 상대로 영적 전쟁을 할 때 승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다윗이 능력을 받아 사탄을 물리친 것처럼 성도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때 영혼을 괴롭히는 사탄이 불쌍한 영혼을 놓고 물러갈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성도를 성령께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상대가 세상의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성도는 두려워할 것 없으며, 사탄의 영 또한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중심에 세우고 영육간의 높은 인격을 갖춘 귀한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귀한 인생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17장 37절-49절
37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41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