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아비가일
25장을 시작하면서 1절에 사무엘의 죽음을 알립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고, 게으르고 나태했던 엘리를 대신하여 백성들을 하나님께 인도했던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버지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순종했던 위대한 선지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사무엘처럼 모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로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 하는 것이 다른 것이지 인간은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육을 벗는 순간 바로 인생이 끝난 것입니다.
요즘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쳇바퀴가 아무리 많이 돌아도 사는 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를 애곡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든,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서 살든 모두 죽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사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관심을 가진 사람만이 이생에서 사후를 준비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후에 어떤 곳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 성도들은 그래서 더욱 믿음으로 인내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세상이 믿지 않아도, 그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만 사무엘처럼 그 죽음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사무엘의 죽음을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헌신한 사무엘이 하나님의 품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두 팔 벌려 안아주셨을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는 사무엘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했기에 세상에 대한 미련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환한 얼굴을 보고 있기에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처럼 헌신하기 보다는 핑계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 일이 바빠서 헌신할 시간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충성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헌신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말씀을 알고 교회에 다니고 있으면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그 벽을 허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해 놓은 선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시간도 더 드리지 않고, 물질도 더 드리지 못하며 힘에 지나도록 충성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행동은 어떻게 보면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아들을 죽이셨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에 놓고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실력과 기술로 잘 만든 배와 실력도 기술도 없이 대충 만든 배의 성능은 바다가 평온할 때는 그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큰 폭풍을 만나면 잘 만든 배는 그때 진가를 드러냅니다. 세상의 폭풍이 심하게 몰아칠 때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잘 성장한 성도는 반드시 보석과 같이 빛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신 것처럼, 우리는 믿음의 배에 많은 영혼들을 태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석청을 바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혜는 세상의 지식으로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명철은 세상 지식으로 드러낼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삶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빛을 내는 것입니다. 지혜를 받아도 명철하지 못한 사람은 지혜가 없는 자와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혜를 명철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여러분의 삶도 편안할 것입니다.
남편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가정이 몰락하게 되었을 때, 폭풍을 이겨낸 잘 만들어진 배처럼 지혜롭고 명철하게 가정을 구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훗날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입니다.
14절에 보면 소년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급하게 왔습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의 남편인 나발에게 사자를 보내서 문안했는데 나발이 그들을 모욕하고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나발은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치는 당대의 대부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양의 털을 깎는 날을 축제의 날로 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과 고기와 떡을 나누며 즐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나발도 양털을 깎는 날 많은 떡과 고기를 준비하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당시에 양을 치는 사람들은 악한 자들에게 양과 염소를 빼앗기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고 곡식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나날 속에서 양 한 마리의 손실도 없이 계속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이 잔칫날 다윗이 보낸 사람들이 나발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나발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 달라고 청하자, 나발은 크게 진노하면서 다윗이 누구인데 나에게 떡과 고기를 달라고 하느냐고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이 나발의 곁에서 진을 치고 있었기에 블레셋이 나발을 공격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분명 나발은 다윗이 곁에서 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나발이 생각하길 다윗이 곁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사울에게 쫓겨 도망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자신이 얻은 이익은 다윗이 일부러 도움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발의 이런 판단이 그가 얼마나 지혜가 없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나발과 같이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은혜를 몰라서 감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하게 되면 내 것을 나누어줘야 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면 자신이 받을 복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당장 나눠주어야 하는 그 작은 것만 보기 때문에 모두 잃고 마는 것입니다. 흉악한 블레셋으로부터 평안한 삶을 보장받았다면 당연히 다윗에게 보답을 해야 하지만, 나발은 다윗이 블레셋을 막아준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의 소유는 자신만의 것이기에 단호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이런 나발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물과 피를 다 쏟기까지 희생하시고 흉악한 사탄에게서 보호하시며 성령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나발과 같이 감사하지 않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블레셋이 나발을 공격하는 것처럼 사탄은 당장 우리를 공격했을 것입니다.
나발이 다윗을 향하여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을 절대로 줄 수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내 능력과 내 시간과 내 물질을 드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덕분에 자기의 소유가 많아졌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주님께서 나를 축복하셨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평안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노력했고 내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잘 살고 있는 것이라며 헌신하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나지 못한 신앙이 바로 나발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 줄 때는 다윗이 곁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도움을 요청하니까 갑자기 다윗이 부담스러워지면서 그를 도망 다니는 종으로 비하하며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자녀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하신 후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도록 복을 주겠다는 말씀에는 아주 감격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과 헌신과 물질을 달라고 하시면, 단호하게 언제 주님께서 저를 도우셨느냐고 말하며 절대로 주님께 나누어 드릴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성도들이 헌신했을 때, 그의 인생 전체는 물론 사후의 삶까지도 축복하고 계신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3장 5-10절에,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인간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면 어두운 세상길에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믿음을 가지면 여러분을 윤택하게 하실 것입니다.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넘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약속을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으면 그것을 다 갖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문제가 있을 때는 이것만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께 잘하겠다고 서원하다가 막상 응답을 받으면 자기 스스로 약속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자만이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만약 나발이 다윗의 보호 때문에 블레셋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 다윗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면,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더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앞에 있는 것만 보기 때문에 더 큰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도망 다니는 종이라고 조롱하고 멸시했던 다윗이 훗날 위대한 왕이 될 것을 알았다면 아마 나발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발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는 비굴한 시므이처럼 왕궁으로 향하는 다윗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나발이 자신을 조롱하며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분노했습니다. 분노한 그는 인색한 나발을 공격하기 위해서 부하 사백 명을 칼로 무장시키고 출발하였습니다. 이제 다윗이 도착하기만 하면 나발의 가정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죽을 것입니다. 나발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다윗은 그 작은 감사를 더 큰 감사로 보답했을 것이며, 그의 재산은 물론 온 가족을 지켜주었을 것입니다. 나발처럼 강퍅한 사람은 작은 것을 나누지 못해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은혜가 여러분의 인생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늘 감사의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나발이 저지른 실수를 아비가일은 영적 지혜로 가정을 구했습니다. 그 여인은 집안에 닥친 어려움을 지혜롭게 막아 위기를 모면했고, 훗날 다윗 왕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비가일이 하는 말을 통해 진정한 감사를 아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얼마나 큰 축복으로 채우는지 배우게 됩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종에게 다윗이 진노하여 나발을 죽이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 남편 몰래 양식을 마련해 즉시 나귀에 실어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그녀는 다윗이 이방인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돼 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분을 품고 달려오는 다윗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남편의 잘못과 자신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며 다윗에게 은혜를 구했습니다.
사무엘상 25장 28절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다윗이 보낸 사람을 만나지 못한 죄가 자신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반박할 수 없는 신앙적인 논리를 가지고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다윗을 잘 조명하여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게 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온 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을 잘 대처하는 기지를 발휘했고, 그녀의 지혜가 온 가족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28-30절에 아주 중요한 말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든든히 세우시리니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명싸개에 싸서 보호하시므로 원수들이 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먼 훗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영적인 능력으로 보고 말함으로써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것은 분명 아비가일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며, 늘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어려움이 닥칠 때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비가일처럼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인 눈으로 살핀다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지혜로 생명을 구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다 듣고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도록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비가일처럼 지혜롭게 살아갈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높이며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발의 아내로 살아온 그녀는 영적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남편이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세상의 이익만 쫓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비가일은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나발의 가정에 보내신 것은 바로 이런 날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아비가일이 없었다면 나발의 가정은 몰살당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기도하면서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위급한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아비가일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는 한 사람만 있다면, 그 가정과 교회와 나라는 얼마든지 축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염려된다면 여러분이 먼저 믿음으로 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여러분의 기도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런 막중한 사명을 받은 성도가 기도하지 않고 걱정과 불평을 하며 영적으로 게으르다면 그 가정과 교회와 나라는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모세 한 사람이 바로 섰을 때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온 인류가 구원의 길에 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 분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여러분이 염려하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비가일과 같은 문제를 여러분에게 맡기셨을 때, 그 여인처럼 영적으로 지혜롭게 해결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마음을 진정시킨 후 나발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나발은 왕처럼 잔치를 크게 배설하고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취해 있는 남편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침까지 기다렸습니다. 독주를 마시고 취해 있던 나발은 아침에서야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왕처럼 살 줄 알았겠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시자 그의 모든 소유는 남의 것이 된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의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발이 죽고 나자 다윗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아비가일을 불러서 자기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이제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나발의 아내가 아니라, 어엿한 다윗 왕의 아내로 왕비가 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온 백성으로부터 존경받게 되었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남편과 함께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도 남편 노릇을 했던 사탄이 마음에서 죽고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섬기면서 아비가일이 왕비가 된 것처럼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모든 영혼들에게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청혼한 것처럼 신부가 되어달라고 청혼하고 계십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주고받으며 천국에서 함께 살자고 말입니다. 왕의 혼인 잔치가 얼마나 성대하겠습니까?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님과 천군천사가 수종을 드는 가운데 혼인 잔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는 것은, 24장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기록돼 있고, 26장에 또 사울이 다윗을 쫓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인 25장에 갑자기 왜 아비가일을 기록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처럼 성도를 쫓고 죽이려는 험한 세상에도 아비가일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의 자녀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무시하고 멸시했던 나발과 같은 자들이 가득한 세상에, 귀한 믿음을 가지고 돕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성하는 성도 곁에 아비가일과 같은 믿음의 형제를 두셔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므로 여러분의 충성이 상급으로 이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인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마음을 다 드릴 때까지 청혼하실 것이며, 영원한 축복과 처소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언제나 신실한 믿음으로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