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 나은 순종 — 사무엘상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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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겸손한 사무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세상의 왕이 앞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도 전에 이런 말씀을 먼저 해주시는 것은 이 세상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통치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함부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장소와 사건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안에서 백성을 다스리며,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세상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인지 아니면 언약 밖에서 언약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민족이지만 그들 스스로 언약 밖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고 이제 사람이 왕이 되어 자신들을 다스려야 한다고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이방인들처럼 힘 있는 세상의 왕을 원하자 그들의 손을 놓아 버리신 것입니다. 선택하신 자녀들이 믿음으로 감사의 삶을 살기만 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고 누리도록 영원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사랑을 받고도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손을 놓아버리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믿음과 사랑을 부어주시고 붙들고 계셨기 때문에 험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놓는 순간 세상의 급한 물살에 휩쓸려가기 때문에 내 뜻과 상관없이 정처 없이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급류에 휘말리면 스스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더러운 물을 먹어야 하고 힘없이 돌에 부딪히게 되어 꿈도 희망도 모두 잃고 결국 사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왕이 되면 백성이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시기에 끝까지 말리셨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무엘상 9장 1-2절에 보면,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들의 이름이 사울이고, 그는 준수한 소년이며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크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왕이 되는 조건은 유력한 사람, 즉 다른 사람보다 부유하거나 용사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세상이 원하는 조건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이고, 외모도 출중하여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풍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장 2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세상을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창조하셨고,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흠모할 만한 것이 없고, 풍채도 아름답지 못하였으며 연한 순 같아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왕으로서 부족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서 먼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 치중합니다. 거짓 공약일지라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감당하지 못할 계획을 발표하고, 자기가 왕이 되고 나면 금방 무엇인가 다 가질 수 있을 것처럼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왕이 되고 나면 공약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당장 듣기에 좋으면 그를 선택해서 왕으로 세워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만유의 상속자는 세상의 부유함보다는 오직 어두운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보다 세상에서 잘 살게 해 줄 것 같은 사울과 같은 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좋은 조건을 가진 결혼상대를 찾을 때 물질이 많거나 최고의 학벌을 갖추고 있거나 외모가 출중한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의 인격이 어떠하든 외적인 조건이 좋으면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실망하여 스스로 생명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을 소개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지도자의 외모나 권세, 혹은 재산에 대해서 논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도리어 사도 바울과 열두 제자는 좋은 가문과 학벌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좁은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는 세상의 화려함과 부요함이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나 강함과 부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지 않으십니다. 조금 지혜가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가난하고 평범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드시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게 되고 하늘의 영권을 갖게 되며 물질적으로 부할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온전한 믿음을 가지면 세상의 왕이 부럽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진실한 믿음을 갖기만 한다면 그저 유리창 밖에 펼쳐져 있는 풍경처럼 세상을 담담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꼭 붙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생명과 축복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며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기 위한 시작은 사울의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어버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암나귀를 아들에게 찾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사환을 데리고 나귀를 찾기 위해서 베냐민 땅인 자기의 집 기브아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찾아 다녔습니다. 그는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암나귀를 찾아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자 아버지가 걱정하실 것을 염려했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효심으로 봐서 사울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맡겨진 일에 성실했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3일이 지나도록 암나귀를 찾지 못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사환이 말하길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자고 건의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사울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삶 속에 일어나는 사건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환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을 데리고 가면 틀림없이 나귀를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사울을 사무엘에게 보내는 방법으로 나귀를 잃어버린 사건과 사무엘을 알고 있는 사환을 이용하고 계신 하나님이 보이실 것입니다.

이제 선지자인 사무엘을 만나러 갈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염려돼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바로 사무엘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통해 그를 움직이셨고, 시간을 들여 사울이 사무엘에게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싶으면 사무엘을 사울에게 직접 보내면 될 것 아닌가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인생을 일방적으로 이끌어가지 않으십니다. 모든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이제 사울에게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순간순간 만나는 모든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읽고 자녀를 믿음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신앙 그리고 판단의 능력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고 그의 인생이 달라지듯이, 우리 역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매사에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준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적지로 안내해 주는 네비게이션을 아실 것입니다. 최종 목적지를 천국으로 입력하고 출발했을 때, 네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길로 갈 것인지 선택은 여러분이 합니다. 가는 도중 조금이라도 아는 길이 나오면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지 않다가 길을 잃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네비게이션은 길을 잃은 그 자리에서부터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찾아 줍니다. 최종 목적지가 변경되지 않는 한 여러분을 그곳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이 네비게이션을 종료하지만 않는다면, 최선을 다해 알려주면서 목적지까지 인도할 것입니다.

성도들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옳은 진리의 길을 알려줘도 온전히 믿지 않거나 세상을 마음에 채우고 있으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인생을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갈 본향이 천국이라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고난을 만나긴 하겠지만 결국 천국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보기에 좁고 협착한 길일지라도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넓은 길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빠르게 해야 하는 이유는 헛된 시간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늘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며 충만해야만 하나님께서 두 갈래의 길을 보여주셨을 때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16절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사울의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며, 사울을 내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왕으로 허락하셨지만, 이 결정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아픔을 드리는 죄인지 말씀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도록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지만 창세기 49장 27절에 야곱이 한 축복을 보면 베냐민 지파가 전쟁에 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말하길,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눌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사나운 이리처럼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용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베냐민 지파에서 나라를 지킬 왕이 나왔고, 사울은 왕이 돼 실제로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먼저 만나기로 결정하고 가는 도중에 물을 길러 나오는 소녀에게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사무엘이 하는 일과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있다 없다 혹은 어디에 있다고 말을 해 주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소녀는 그가 제사를 드리러 산당에 올라갈 것과 백성들이 사무엘이 오기 전에는 절대로 먹지 않으며, 사무엘이 축사를 한 다음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을 것이라는 말까지 상세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자세하게 말해 주도록 하신 것은 소녀를 통해 사무엘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감당하는 사역에 대해서 먼저 듣고 그를 만나게 된다면, 사무엘이 어떤 말을 해도 사울 스스로 쉽게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까지 신경을 쓰는 하나님의 세심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기도 전에 그를 선견자로 인정하게 되었고 그의 말에 순종할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올 것을 사무엘에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사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사무엘을 찾아왔지만,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께 듣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사무엘이 사명을 더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고 계신 것입니다.

19-20절을 보면, 사무엘은 내가 선견자인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산당에 올라가서 먹을 것이고 아침에 내가 모든 말을 자세하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사흘 전에 잃은 암나귀는 찾았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라고 전해주면서 사울이 왕으로 택함 받은 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울이 찾고 있는 암나귀를 찾았다고 하자 사울은 사무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처럼, 여러분도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할 때 작은 부분까지 관심을 가져야만 놓치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가진 만큼 보이는 것이고, 보이는 만큼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먼저 사람의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그의 삶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 인격적이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의 삶이 본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전도를 해도 절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을 향한 사무엘의 희생적인 순종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사사로서 왕의 자리에서 백성들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지목하시자 그는 자기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사울이 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습니다. 시기나 질투하는 마음 없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이런 모습은 세상의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며, 사울을 상석에 앉게 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사울이 택함을 받은 왕이라는 것을 알리는 겸손한 행동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세는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과 이 사명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감당하고 있다는 인격을 갖추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진정한 선지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무엘처럼 겸손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비록 세상에는 많은 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사무엘처럼 영적으로 바로 서서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무엘처럼 순종하는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사무엘처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성도를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높이신 것처럼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시거나 낮추시거나 모두 영혼구원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언제나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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