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 나은 순종 — 사무엘상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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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네 길을 여호화께 맡기라

누구든지 세상을 살아갈 때 늘 두 갈래의 길을 만날 것이고, 반드시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한번 선택하고 나면 돌이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언제나 신중을 기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다윗은 시편 37편 4-9절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며, 둘째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믿음과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나타내 주실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셋째는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며 참고 기다리면서, 악한 자가 꾀를 내어 혹시 여러분보다 더 잘 사는 것을 보더라도 하박국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는 것이며, 사탄을 도와 악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성도들이 바로 서 있어야만 악을 행하는 자들이 끊어지는 것을 볼 것이며 영원한 기업을 축복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는 축복의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낸 블레셋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재앙을 만난 것인지 알고 싶어서 암소를 이용했습니다. 암소가 벧세메스로 가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신 것이고, 젖을 먹는 송아지에게로 가면 우연한 재앙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다윗의 고백과 너무나 다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다는 것은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지만, 새 생명을 받은 성도라면 하나님께 온전히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땅만 바라보는 블레셋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벌어진 재앙만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짐승인 암소에게 맡겼습니다.

암소가 어미를 찾는 송아지를 떼어 놓고 울면서 벧세메스로 곧장 가자 그들은 그제야 하나님께서 주신 재앙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마음은 거기까지입니다. 골칫거리였던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보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고난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고난이 지나고 나면 다시 교만해지는 우리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고 나면 점수에 상관없이 즐거워합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때부터 감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은데도 웃고 떠드는 아이들처럼, 블레셋 사람들은 골치 아팠던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보내자 기쁜 마음으로 다곤 신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재앙을 블레셋에 내리신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난과 재앙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블레셋에 계셨던 언약궤는 죄로 가득한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 버려졌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인간들 때문에 간고와 질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결코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고, 그들이 짓고 있는 죄가 지금도 우리가 짓고 있는 죄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죄를 봐야만 동일한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이고, 우리의 죄를 진리의 말씀 안에서 회개할 때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칭해 주실 것입니다.

민수기 10장 35-36절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한다면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언약궤와 함께 행진할 때 늘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이 말은 단순히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만났을 때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대적과 싸워달라는 기도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여호와께 전적으로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의 부귀영화를 보고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이 백성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주를 미워하는 자를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능력 뒤에 내가 숨을 것이니 보호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하나가 되었을 때 모세처럼 기도할 수 있는 것이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여러분이 만약 세상에서 패한다면 여러분의 실패를 두고 세상은 기뻐하겠지만, 그것은 곧 하나님의 패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들을 대적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같은 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을 여호와께 맡기고 자족할 줄 알아야 하며, 불평하지 말고 노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도와달라고 떼를 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적으로 간주하시고 대신 싸워주실 것입니다. 블레셋처럼 언약궤를 보낼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이스라엘에게 돌아와 함께해 달라고 기도해야만 보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오신 것처럼 이사야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은 예수그리스도이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그토록 돌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해 달라고 기도했던 여호와는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간절히 원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오신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블레셋처럼 짐승에 태워서 멀리 보내게 될 것입니다.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 주님의 뜻을 깨닫는 성도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신명기 28장 13-14절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암소는 사랑하는 송아지를 떼어놓고 울면서 벧세메스로 향했습니다. 짐승은 새끼를 낳으면 태를 모두 먹어 버리는데, 그것은 피 냄새를 맡고 다른 짐승들이 올까 봐 새끼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산고도 잊은 채 새끼를 보호하는 데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새끼를 사랑하는 어미를 송아지와 강제로 떼어 놓았습니다. 보통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아기를 생각만 해도 젖이 돌면서 젖이 그냥 흐르는데 이것이 모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를 키우도록 무조건적인 사랑을 어미에게 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런 사랑이 없다면 많은 아기들과 새끼들은 버림을 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암소는 젖이 불었을 때 새끼에게 가고파서 마음이 급했을 것이고, 송아지는 어미를 애타게 찾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붙들려서 벧세메스로 가고 있는 어미소를 성도로 보고, 가지 말라고 우는 송아지를 세상으로 보기 바랍니다. 암소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송아지를 떠나는 것이 힘들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곧장 갔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난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가는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세상을 쉽게 버리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했던 재물과 권세와 내 의와 자존심과 자녀들까지 모두 두고 떠나는 것이 힘겨워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소리 내어 울기도 하며, 기도로 부르짖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들린 암소처럼 갈 수밖에 없는 길이고, 세상의 유혹이 강해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곧장 가야 하는 것이 믿음으로 결단한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붙들려 믿음으로 걸음을 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미가 송아지를 떼어 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대로 곧장 걸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곧장 가야만 합니다.

순종한 암소는 벧세메스에 도착해서 번제와 화목제의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번제의 제물이 된 암소는 완전히 불태워졌습니다. 그 피는 제단 위에 뿌려졌으며 가죽은 제사장의 옷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암소는 자신을 모두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암소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계십니까? 새끼를 떼어놓고 걸음을 떼던 암소처럼 여러분의 생명까지 모두 하나님께 드리려고 노력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꺼이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물과 피까지 모두 죄인을 위해서 주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암소가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언약궤를 싣고 간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기꺼이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 아직도 내가 세상을 놓고 하나님을 믿어드리고 있으니까 대신 복으로 채워달라고 거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줄기교회 성도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암소처럼 말씀을 놓지 말고 앞만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좌로나 우로나 잠깐 세상으로 치우치는 순간 사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낚아챌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사탄을 이길 수 없으며, 사탄이 우는 송아지처럼 유혹할 때 그 송아지를 보는 순간 영원한 사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열매를 놓는 것이 아파서 소리 내어 울지라도 앞으로 가야 하며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무엘상 6장 19절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5장 22절에, 언약궤에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룹들은 속죄소와 함께 언약궤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속죄소는 언약궤를 덮는 덮개이고, 그룹들은 금으로 만들어져서 두 날개로 속죄소를 덮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고 용서하시며 감싸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통해 역사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언약궤 그 자체가 신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만드신 언약궤를 백성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처럼 생각하고 전쟁터로 가지고 갔지만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율법은 다만 죄를 드러낼 뿐 죄를 대속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성도들이 율법을 행위로 지키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며, 그 행위를 자랑하고 자신의 의로 삼기 때문에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도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언약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언약궤를 들여다보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이 사건은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언약궤를 암소가 새 수레에 싣고 오는 것이 보이자 벧세메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암소들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이 금으로 형상을 만들어 담은 보물 상자를 큰 돌 위에 같이 두었습니다. 레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세운 제사장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언약궤와 블레셋이 보낸 금 보물이 담긴 상자를 같은 자리에 함께 놓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언약궤는 지성소에 모시고 대제사장도 일 년에 몇 번 밖에 볼 수 없는 거룩한 궤입니다. 지금 성막이 없어서 지성소에 모시지 못한다고 해도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상자를 언약궤 곁에 두었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 제사장이라면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금 독종 다섯 개와 금 쥐들은 멀리 버렸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들이 금이 아니라 돌이나 나무로 깎은 형상이었다면 언약궤 곁에 두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금을 보는 순간 그 가치를 생각한 것입니다.

블레셋이 재앙이 두려워 금으로 만든 형상을 언약궤 곁에 놓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신앙이 언약궤를 빼앗길 때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신앙이 이 정도라면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은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행동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본 수많은 백성들은 언약궤를 들여다보다가 그 자리에서 죽은 것입니다. 이 재앙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6장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왜냐하면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경고 없이 일방적으로 죽이거나 징계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말씀해 주시고 기다려주시며 인도하신 후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징계하시거나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면 죽는다고 하셨는데도 그들은 말씀을 무시했고, 언약궤가 돌아와서 기쁜 마음에 들여다 본 것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하는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들여다 본 것입니다.

성경은 그 앞에 휘장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휘장이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찢어지지 않았으므로 절대로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다 죽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내 재물과 내 자존심과 내 자녀와 권세를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내 모든 소유를 지켜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응답을 받으면 그것을 축복과 형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기 때문에 금덩이가 나에게 있는 것이고, 자녀들이 성공한 것이라고 자랑하며 그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어떻게 품어 주시겠습니까?

언약궤를 들여다 본 사람들은 제사장으로부터 법을 배우지 않았거나, 말씀을 배웠더라도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들여다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알든 모르든 하나님께서 이미 법을 선포하셨고, 그 법은 생과 사를 결정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올바로 알고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법을 지키면 축복이고 지키지 않으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생명을 비추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주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고 생명이며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든 말씀을 들었는데도 세상을 놓지 못해서 블레셋에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말씀을 무시하다가 성령을 범하는 죄를 짓겠습니까?

사무엘상 7장 1절에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블레셋처럼 멀리 버리지 않고, 아비나답의 집에 모시고 그의 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궤를 거룩하게 섬긴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십 년 동안 궤를 잘 모셨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렸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들판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산과 같은 믿음을 가진 아비나답은 자신의 아들 엘리아살을 세상과 구별하고, 말씀으로 거룩하게 한 다음 궤를 모시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궤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며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은 아비나답과 같은 신앙으로 엘리아살처럼 구별된 성도로 살아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 블레셋의 신앙과 언약궤를 들여다보던 이스라엘의 신앙과,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했던 아비나답의 신앙을 놓고 마치고자 합니다. 어떤 신앙을 선택할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의 몫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비나답과 엘리아살의 신앙은 재앙을 내렸던 언약궤가 이십 년 동안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평안한 영적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아비나답과 엘리아살처럼 살 것인지 그것은 이제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선택은 여러분이 하셔야 합니다. 부디 올바른 선택을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받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7장 5-14절

5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제사보다 나은 순종 · 네 길을 여호화께 맡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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