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 나은 순종 — 사무엘상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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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판단이 빠른 다윗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진리로 밝혀주시고 고난을 통해 채찍질 하시며 죄를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허락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계속 알려주시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영적으로 조금만 민감하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 사건을 나에게 허락하셨는지, 왜 저 말을 듣게 하셨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도 많이 했지만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살아갈 때는 아기스 왕에게 이스라엘을 함께 공격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지우고 싶은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보시는 다윗은, 죄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갔을 때 멈추는 것도 빨랐고, 돌이켜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오는 것도 빨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는 다윗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이 결정하고 판단한 일이라도 잘못이라고 깨닫는 즉시 돌이키는 다윗을 보면서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인간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좋은 인격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한 다윗은 여호와께 “내가 아말렉을 쫓아가면 그들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기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그들에게 미치고 정녕 도로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길로 가던 다윗이 다시 성도의 자리로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하자 아주 기뻐하시며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말렉 군사들이 백성을 끌고 간 이 시점은 다윗에게 있어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가장 큰 기로입니다. 그 기로에 서서 다윗은 가족을 잃고 분노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들을 마음에서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이 자리까지 온 것은 백성들 때문인데,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자 감사를 잊었습니다. 만약 이들의 분노가 두려워서 또다시 이 사람들에게 굴복한다면, 다시는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위기라는 것을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용서하시며 아말렉을 쫓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은, 이제부터 다윗이 아말렉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아말렉을 상대하시겠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았던 그 기쁨의 시간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했던 성도가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그 허탈감과 상실감은 아주 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두려움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다윗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다행스럽게도 아말렉 사람들은 성읍에 불은 질렀지만 여인들과 아이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아말렉을 사용하셨지만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과 백성들이 있던 시글락이 불타고, 여인들이 아말렉으로 끌려갔다는 것은 다윗의 인간적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블레셋에 간 것인데, 정작 시글락은 불타고 여인들과 아이들이 모두 끌려갔기 때문에 그가 세상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이처럼 안개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문패를 달고 아이들에게 자기의 성을 물려주었기 때문에 내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손을 놓아버리면 아말렉에게 빼앗기듯 다 잃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소유를 내것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재산은 물론 자녀들과 생명까지 보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끌려가고 없자 군사들은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제야 다윗은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인데,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자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모든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자 성숙한 믿음과 훌륭한 인격을 보이는 지도자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아말렉을 향해 가는 도중에 이백 명의 사람이 너무 지치고 피곤하여 같이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다윗은 그들을 쉬게 하고는 사백 명의 군사만 데리고 아말렉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결정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삼백 명을 데리고 전쟁한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사백 명도 결코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기스가 두려워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던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자 담대해진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잘 알고 있는 길잡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만난 이 애굽 소년은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이 들자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병든 아이를 데려다가 먹을 것도 주고 치료도 해주었습니다. 아말렉을 찾고 있던 다윗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잡이였습니다. 아말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년의 도움을 받아 다윗은 쉽게 그들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았고 그의 두 아내를 구했으며 전리품으로 그들의 양 떼와 소 떼까지 다 빼앗았습니다.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이 모든 것은 다윗의 전리품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사백 명의 적은 인원으로 올린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세상의 전쟁은 이렇게 쉬운 것입니다. 믿지 못해서 받지 못하는 것이지, 믿고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길잡이를 준비하시듯 다 준비해 놓고 여러분이 결정하기만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그들을 영접하러 나온 이백 명의 군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함께 전쟁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가족을 빼앗겼기 때문에 무척이나 애가 탔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30장 22절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다윗과 함께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말하길,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백 명에게 전리품은 나누어 주지 말고 그들의 처자는 우리가 구해주었으니까 가족만 데리고 가게 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간 사람만 전리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의견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악한 자와 불량배라고 기록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이 나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불량배나 악한 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안에서 모두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지체는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전쟁에는 참여하지 못했을지라도 전쟁터에 나간 사람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며 시글락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몸이 건강한 사람은 몸으로 헌신하고 몸이 약한 사람은 기도로 돕는다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모두 협력하여 일한 것입니다.

악한 자들의 말을 들은 다윗은 지금까지 자신이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적을 우리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므로 너희 말대로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전장에 나갔던 자나 남아서 기도로 돕고 남은 소유물을 지킨 자나 모두가 일한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날부터 이 법을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로 삼았습니다. 바로 이런 선한 판단과 결정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소유물을 지키는 작은 일을 했을지라도 그것 역시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인정하며, 모두 똑같이 나누도록 한 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이런 문제는 교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시간과 물질로 헌신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일하다 보면, 분명히 성숙한 성도들이 다른 성도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으므로 내가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건강과 물질이 연약한 사람들을 보면서 불평한다면, 그것은 나누지 않겠다는 군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많이 받은 사람이 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은혜를 받는다면 일한 사람들이 조금은 억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헌신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불평보다는 자신의 헌신을 통해 누군가 은혜를 받고 있음에 감사할 것입니다.

지금 사백 명의 군사들은 자신들이 고생했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내가 내 생명을 바쳐 아말렉과 전쟁을 했고, 내 가족을 구해내는 와중에 그들의 가족까지 구해주었기 때문에 자기가 더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든지, 일을 했을 때 칭찬받지 못하면 실망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작은 헌신을 크게 인정받아야 일한 것 같고, 교회의 성장을 자신의 노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목회자나 성도에게 겸손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교만한 모습은 일을 하고도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다윗은 불평하는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만큼 그 어떤 것도 공평하게 나누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여기까지 성숙해야 합니다. 내가 물질로 헌신했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는 교회에 내가 일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했다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지을 때 보면 큰 못도 필요하지만 작은 못도 필요합니다. 기둥을 세울 큰 나무도 필요하지만 창문을 만들 작은 나무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집이라는 칭찬을 받게 되는 것처럼, 교회는 성도들의 달란트와 사명과 헌신으로 그 누가 봐도 칭찬하고 인정할 만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26절에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서 전리품을 선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도와준 유다 장로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면 그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귀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장로들을 모두 잊지 않고 다윗은 그들에게 선물을 보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사를 아는 인격을 갖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도 잊지 않습니다.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할 것이며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혜롭기에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돌이키는 것 역시 빨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에게도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이냐고 묻고 계실 것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다윗처럼 돌이켜야 하는 길이라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돌이키기 바랍니다. 다윗은 비록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지만 죽도록 회개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돌이키기 위해서 사람의 말에 귀를 닫았습니다. 삼천 명이 두려워 여기까지 왔지만 다시 하나님께 의지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만 돌이킬 수 있기에, 늘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윗처럼 실수할 수 있고 세상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넓은 길이고 어두운 길이며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죽도록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키는 사람을 절대로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그 죄도 모두 깨끗하게 씻어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도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인생이 힘들지 않도록 길잡이 소년도 보내주시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아말렉이 모래성처럼 무너진 것처럼 세상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덧입은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사랑으로 덮어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헌신으로 하늘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31장 1-6절

1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날에 함께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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