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 나은 순종 — 사무엘상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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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아히멜렉의 죽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세상에 참 생명을 주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빛으로 나오면 어둠 속에서 행한 자신의 더럽고 추한 행위가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예수님께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쫓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끄럽지 않은 선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은 분명하게 갈라져 있기 때문에 빛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는 어둠인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육체가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세상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곧 죽음과 같은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또 어떤 인생을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고 싶습니까? 한번이라도 자신의 종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빛과 어둠 그리고 영과 육, 그리스도와 사탄의 관계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 타락한 천사에게 아담이 미혹을 당해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탄은 공중권세를 잡고 세상과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어둠의 주인인 사탄의 자녀로 태어나 생명이 없는 자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참 생명을 받지 못하고 사망에 빠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영혼들에게 어둠에 있지 말고 빛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사고나 습관, 개념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나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사탄 중 누구를 믿느냐에 따라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 수도 있고, 영적으로 성화하여 몸의 행실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영으로 세상적인 행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 거듭났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것이 확실하게 중심에 세워져야만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보다 영적인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만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영혼을 구원 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5절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육체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인생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라는 말씀은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하여 순교하는 사람을 다시 살리겠다는 말씀은 육의 생명은 잃었지만, 육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축복된 또 다른 생명이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의 죽음이 있는데, 몸과 영혼의 죽음입니다. 사탄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으며, 하나님은 몸과 영혼까지 죽이는 창조주이기 때문에 성도는 몸이 죽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죽음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 드리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히멜렉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동일한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몸과 영이 죽는 것이 다르다는 것과, 육적인 생명을 빼앗는 사탄과,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지옥불에 던지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아히멜렉의 죽음을 봐야만 그 죽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히멜렉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을 도와주었고, 사울 왕에게 다윗은 충실한 자라고 자신 있게 변호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왕의 사위이며 왕의 호위대장이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인데, 내가 다윗을 도운 것이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어쩌면 자기의 죽음은 예감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거짓말을 했고, 왕의 사위이기 때문에 그를 도와준 것뿐인데, 사울 왕은 제사장 팔십오 명과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모두 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비록 생명일지라도 이익이 없으면 바로 버리는 게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육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사탄의 대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아히멜렉처럼 생명을 빼앗기는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빛 가운데서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어둠은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사울에게 아히멜렉의 선행을 고자질한 도엑은 세상의 권세를 갖기 위해 스스로 깊은 어둠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입니다. 사울의 인정을 받는 지금은 그가 승리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생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끝나면, 도엑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을 능히 죽이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뜨거운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상 22장 5절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은신처를 이스라엘 밖에서 찾지 말고 유다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다윗은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는 유다로 들어갔습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애굽 땅으로 내려갔을 때 그를 다시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셨던 것처럼, 다윗에게 유다 즉 언약의 땅과 그의 백성에게 돌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이 성도들에게는 안식처입니다. 유다를 벗어나면 살아남기 위해서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을 해야 하고, 가족을 위해 모압 왕에게 땅을 구걸해야 합니다. 다윗이 생각할 때 사울 때문에 유다 땅이 위험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유다 땅에 있어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갓 선지자의 명령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고난 속에 오래 두지 않으실 것을 믿고 다윗은 유다로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기의 땅과 백성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이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훗날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도록 자신을 고난의 땅 유다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순종했습니다.

다윗이 유다 땅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마음이 급해졌고, 도엑에게 아히멜렉은 물론 팔십오 명의 제사장과 그들의 가족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선을 베푼 아히멜렉과 그의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모두 몰살을 당하고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랑만 주시는 분이며 선을 사랑하고 악을 싫어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과 같은 자는 당장 죽어야 하고, 아히멜렉처럼 착한 사람은 다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히멜렉처럼 평생 제사장으로 살면서 충성하고, 악한 사울에게 당당하게 다윗을 변호했던 그가 처참하게 죽는데도 돕지 않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악인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왜 돕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몸은 죽더라도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십만 명의 적들이 하루아침에 죽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수십만 명의 생명을 한 순간에 죽이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안다면, 아히멜렉의 육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히멜렉의 몸은 비록 죽었을지라도 말씀대로 산 상급은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육이 죽는 것을 죽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숨을 거두었을 때,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는 표현과 영원히 잠들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장사하러 가겠다는 제자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하도록 맡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상 22장 23절

두려워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23절에 아히멜렉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죽는 가운데,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도망쳐 왔습니다. 이제 아비아달과 다윗의 생명은 하나로 묶여진 것입니다. 다윗의 품에 안긴 아비아달은 사울로부터 벗어났고 안전해졌습니다. 주님을 대적하던 사탄은 이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하지만 다윗과 아비아달이 하나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와 성도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성도들이 안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인이기 때문에 사탄이 아무리 공격해도 주님 안에 있는 성도를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고난도 기쁨도 맞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은 성도를 성숙시키는 도구일 뿐입니다. 초라한 다윗에게 도망친 아비아달은 다윗이 통일왕국을 이루었을 때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볼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큰 호령 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오실 때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보다 개인의 종말이 먼저 올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의 믿음은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축복으로 받게 하는 증표입니다.

언제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합니다.

사무엘상 23장 19-29절

19그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21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24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25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7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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