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하는 바위(셀라하마느곳)
사람들은 복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자녀가 복이 많게 생겼다고 말해주면 부모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 복이 육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으려고 돌과 나무와 물에 복을 빌고, 하늘에 떠 있는 달과 해를 향해 복을 빌기도 합니다. 돼지머리를 놓고 복을 달라고 비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을 신의 자리에 놓고 섬기는 것도 종종 보고는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영적으로 성숙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풍족하게 누리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것이 적다는 생각이 들면 복이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는 합니다. 복에는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이 있는데, 육적인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복은 인간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아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복은 재물이기 때문에 쌓이는 재물을 보면 스스로 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없으면 인생의 복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인생길을 잘못 선택했을 때 방향을 틀어주시고,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만났을 때 악함을 막아주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까지 모두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사탄은 영이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도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종이므로,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막아주시며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험하고 위험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의 필요에 따라 채워주시고 인도하시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안전한 것입니다.
28절에 나오는 ‘셀라하마느곳’은 ‘분리하는 바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잡힐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급한 일을 만들어 그를 다윗으로부터 분리시키셨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고난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사울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힘이 다윗에게는 있지만, 살인죄를 짓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때가 될 때까지 도망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살면서 왕의 권세를 가진 사울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그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세상을 분리시켜 주실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사탄에게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도우실 것이고, 죽음으로부터 분리시켜 주실 것이며, 가난과 병으로부터 분리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사탄의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것처럼 지혜를 가지고 살아야만, 사탄이 주는 고난과 사망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중에 블레셋이 헤브론 북서쪽에 위치한 그일라 성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일라는 유대의 중요한 성읍이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와 함께 있는 군사 육백 명을 데리고 가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그 당시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일라 성을 구해 준 대가로 그 성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안한 삶도 잠시, 누군가 다윗이 지금 그일라 성에서 지내고 있다고 사울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다윗을 잡는 것이 소원인 사울에게는 희소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머무는 세상에는 도엑과 같은 자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에 편히 머물 곳이 없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사탄은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찾아다니기 때문에 언제나 문제는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안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만 하나님을 더 의지할 것이며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울이 그일라 성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정말 사울이 그일라로 오느냐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가 온다면 다윗은 전쟁을 하든지 아니면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은 그일라로 올 것이고, 그일라 사람들은 두려워서 너를 사울에게 내어줄 것이라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지자 다윗은 미련 없이 그일라 성을 떠났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배신한 그일라 사람들과 그들의 악행을 아시면서도 징계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일라 사람들의 마음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응답이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윗은 조용히 그일라를 떠난 것입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다윗은 사울을 만났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자를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을 때, 응답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과 결정은 모두 다윗의 몫입니다. 다윗이 그일라를 떠나는 바른 결정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하시겠지만, 하나님의 역사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성도들의 순종입니다. 물론 다윗의 입장에서는 그일라 사람들이 괘씸할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블레셋을 물리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하는 그들에게 화가 나겠지만,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대로 분명 사울이 올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성도들이 선행을 베풀면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때는 감사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감사가 흐려지면 배신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서운하고 분한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일어날 일을 대비해야 고난을 막을 수 있고, 배신한 그 사람도 도울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감정을 억누르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왕위에 앉히실 때 그일라 사람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다윗처럼 당장은 억울하더라도 순간의 혈기만 참으면 더 큰 권세와 힘으로 그들을 책망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면 용서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원망하지 않으면 용서할 필요도 없고 미운 마음을 정리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원수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승리하는 지혜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생명을 해하지 않고 조용히 성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다윗이 믿음으로 인내하고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다윗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던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오는 것을 멈추고 자기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이 없는 그일라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만날 수 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한다면 다윗처럼 사울과 마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에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울이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응답과 다르게 사울은 그일라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도 악도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말씀대로 현실에서 일어나야 하지만, 성도들이 어떤 판단과 결정을 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깊은 뜻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일라 사람들이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다윗이 그냥 성에 남아 있었다면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말로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말씀을 실제로 본 것처럼 믿을 때 은혜를 모르는 그일라를 향한 분노까지 다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믿음이 생겼고, 사울은 다윗이 없는 그일라에 올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블레셋을 이긴다는 듣기 좋은 말은 순종하고, 사울이 올 것이라는 말은 순종하지 않는다면 다윗은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블레셋을 이긴다는 듣기 좋은 말씀이 성취되었다면, 사울이 올 것이라는 듣기 힘든 말씀도 성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기준이기 때문에 자기가 듣기 좋은 말씀은 순종하고, 듣기 싫은 말씀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 중에 사울을 만나는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일라에 있으면 사울을 만날 것이라고 하셨다면, 자리를 옮기는 순종을 해야만 사탄이 볼 때 죄의 자리에 여러분이 없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듣기 좋은 말씀이든 책망과 진노의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든 믿고 순종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얻은 성이기 때문에 떠나기 싫고,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한 사람들이 괘씸해도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생각할 것도 없이 순종하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서 불행을 몰고 오기도 하고 악한 계획을 포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6-17절에 요나단이 일어나 십 황무지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을 만나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위로하며 힘을 주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 나온 다윗을 요나단이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사울의 손이 미치지 못할 것이며,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알고 있다고 위로하였습니다.
세상의 왕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을 찾아와서, 네가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요나단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처럼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사랑과 믿음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는 희생 안에서 재림하실 만왕의 왕을 보는 성도만이 왕과 같은 복을 누릴 것입니다. 요나단과 같은 행동은 거듭나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려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고,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후로 이들의 만남은 없었지만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사는 귀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19절에 십 사람들은 다윗이 자신들이 있는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어 있다고 사울에게 전하면서, 다윗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가 잡으러 갈 때까지 다윗의 동태를 더 자세히 살펴서 보고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은신처를 알려준 것처럼, 다윗에게도 사울이 온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불시에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알게 하십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결정까지 모두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다윗처럼 믿음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사울과 반대되는 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는 다윗이 이렇게 끊임없이 도망하는 처지에 놓였는데도 왜 편안한 왕의 자리에 빨리 세워주시지 않을까요? 그것은 고난을 통과할 때 인간의 진심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또 자신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으며, 사건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악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깰 수 있으므로 고난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왕의 자리에 바로 올랐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세심한 부분까지 역사하시는 사랑과 지혜를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기 위해서 순간순간 그가 알 수 없는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고 계신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순조롭게 왕이 되었다면 다윗은 자기가 지혜로워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며, 하나님과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만의 자리에 앉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고난이 없이 편안한 삶이 지속된다면 굳이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믿음을 갖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사탄의 꾐에 빠져 그들의 종이 되기 쉽습니다. 다윗도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교만한 생각에 사울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안개와 같은 인생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상과 분리되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다윗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을 돌려보내기 위해 블레셋을 이용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블레셋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급하게 돌아간 그 자리가 바로, ‘셀라하마느곳’, 즉 ‘분리하는 바위’입니다.
다윗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셨기 때문에 다윗은 훗날 통일 왕국을 이루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이루어주시는 그날까지 인내하고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세상을 분리하시고, 고난을 통과할 때도 사탄의 일방적인 공격을 막아주시며,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깨닫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받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여러분은 이미 받으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삶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순종하는 성도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그 성도가 사울과 같은 자를 만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24장 8-15절
8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11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