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
사람들은 상대를 존경할 때 먼저 태도가 달라집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대할 때면 상대의 성별과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공손한 말씨와 겸손한 태도를 자연스럽게 취하게 됩니다. 말로는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그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의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말과 행동입니다. 믿음은 결국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성도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의 믿음의 단계가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예배를 드리는 태도부터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까지 모든 행동이 잘 정돈돼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어서 노력하며,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이 곧 그의 믿음을 나타내는 척도가 됩니다. 성도는 세상의 잣대를 버리고 질서의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선한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남을 비하하거나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악한 죄를 짓도록 조정하는 사탄은 무질서하고 난폭하며 혈기로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기 때문에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있는 곳은 언제나 그 주변이 요란합니다. 사탄은 문제를 만들고 모든 관계를 해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을 충동하며 거짓말로 속이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영혼들이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탄에게 속아 판단력을 잃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막고 있으므로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전한다고 해도 전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온전치 못하다면 그 말씀까지도 거짓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일을 감당하지만, 심령의 그릇이 더러우면 그 속에 담긴 거룩한 생명을 온전히 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을 살릴 말씀을 준비하기에 앞서 귀한 말씀을 담을 심령의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도 성숙한 인격과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몰라도 인내하며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존경을 받고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바른 인격은 매우 중요하지만, 세상에만 국한된 삶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더욱 전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도 좋은 인품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성도의 말과 행동이 바르지 않다면 그 자체로 복음을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조심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사랑하시거든 하나님의 자녀답게 올바른 말과 행동을 통해 믿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알고 깨닫고 있는 말씀은 귀한 진리입니다. 진리를 가진 성도이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밝히는 등불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등불을 들고 있는 자들이 길을 잃고, 절벽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면 모두 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사명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어둠의 노예인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사랑하며 품어주실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높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언제나 거룩하신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에 악한 말과 행동을 한 것이고, 사무엘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늘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과 인격에 따라 그들이 드러낸 행동은 아주 달랐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레위기 10장 9-10절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성도들은 반드시 영으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며 온전한 진리의 길을 걷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영적인 분별력을 갖도록 세상의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세상의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았던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정욕의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하고, 사탄이 쑥물로 만든 거짓복음의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이 열려 부정하고 정한 것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마시고 있는 것이 생명의 포도주인지 아니면 쑥물로 만든 세상의 포도주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포도주와 독주와 같은 거짓복음에 속게 되면 절대로 영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눈과 귀가 가려져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지 못하면 거짓 영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섬기지 못하고 사람을 믿고 높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믿음이 매우 충만해 보이지만, 믿고 있는 대상이 모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포도주와 사탄이 주는 독주를 마시고 있는데도 자신이 그것을 마셨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므로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자는 진리의 길로 영혼을 인도할 수 없기에 자신을 높이고 물질을 착취하며 사람들의 구원을 막고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의 직분을 이용하여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착취했던 것처럼 이단들은 목사라는 직분을 이용하여 신도들의 재산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때 신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절대로 속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과 귀가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람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을 잘못 전한 목회자만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받고도 영적 소경이 된 사람들의 무지가 잘못된 신앙의 길을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며 그들을 향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아버리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악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 섬김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깨닫지 못한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을 이용해 세상에서 날마다 잔치하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탄도 광명한 천사의 흉내를 낸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에는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으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신 것을 시인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그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악한 사탄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자신을 예수라 자처하고 그들에게 속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을 전한다 해도 그 영은 종국에 영혼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가는 적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영을 분별하는 방법으로는 첫째, 그가 선한 믿음 안에서 말과 행동을 하는지 봐야 합니다. 둘째, 거듭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진정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있는지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으로 거듭났다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므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사무엘처럼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것을 볼 때 지금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에도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간교한 사탄은 여전히 성도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을 비슷하게 흉내 내며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중심에 두고 있으면 그것이 실상인지 아니면 그럴싸하게 흉내만 내고 있는 허상인지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상을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 절대로 허상에 속지 않습니다.
사탄도 하늘에서 불을 내릴 능력이 있고, 광명한 천사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의 육적인 판단으로는 절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좇고, 그 기적을 행한 자를 높이고 있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새롭게 변한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누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사탄은 매우 지혜롭게 악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환경을 조금씩 바꾸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상황을 변화시켜 갑니다. 동성연애, 노래의 가사와 영상,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 등 처음 시작은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수위를 높여가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 안에서 사탄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절대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일한 결과 사탄을 숭배하는 행위가 예술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져 많은 영혼들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신 생각과 행동양식들이 이미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경각심 없이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영화, 옷이나 소품, 장난감, 애니메이션 등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성도들조차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경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홉니와 비느하스가 타락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 자리에 얼마든지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2장 22절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엘리의 아들들은 그 행위가 너무 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드리는 예물을 취했을 뿐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까지 지었습니다. 이런 죄악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서 기인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믿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과 회막 문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의 동침은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입으로는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마음으로는 세상의 욕심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처럼 성적으로 문란하고 재물을 탐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제사장과 수종 드는 여인들의 동침은 이방 민족들의 음란한 제의풍습이었습니다. 그 풍습이 지금 철저히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제사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성적으로 타락했을 때 어둠의 세력은 가장 강하게 역사합니다. 제사장의 타락이 이 정도였다면 백성들의 타락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단했을 것입니다. 제단에 올라 하나님께 분향을 드리고 에봇을 입는 특별한 은총을 받은 그들이 감사를 잊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예물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택함 받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높은 산 위에서와 푸른 나무 아래에서 몸을 굽혀 행음하는 너희들은 하나님께 참 종자인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어떻게 이방 포도나무처럼 악한 가지가 되었느냐’고 한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 편안한 삶을 살게 되자 그 은혜를 잊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른 길을 걷지 않고 자신들보다 재물이 많고, 성적으로 타락한 이방인들의 길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버지로서 뿐만 아니라 제사장으로서 자식의 죄를 책망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식들을 책망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아비의 어리석은 판단은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녀의 죄를 묵인했던 엘리 제사장과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못했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했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말과 행동 역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여러분도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특별히 부름 받아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막중한 사명을 받은 목회자는 무엇보다 먼저 거룩한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세상에서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직업쯤으로 목회자라는 사명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을 했던 것처럼 더러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과 계산하는 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위해 자신을 버린 놀라운 사랑을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십자가의 도를 가치 없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화인 맞은 심령이 되어 제사를 드리는 직분을 행했습니다. 이처럼 거짓된 신앙을 속이고 거룩한 것처럼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 선다면 사탄과 행음하는 것이고, 그 마지막은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영원한 죽음일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범죄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엘리처럼 하나님께 짓는 죄는 바로 회개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매이게 되므로 용서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본문 32절에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은 그 집에 속한 사람들이 장수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이 저주의 말씀대로 엘리의 자녀들은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죽고, 며느리는 아기를 낳다가 죽는 등 엄청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응답이 엘리의 두 아들과 그 후손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입에서 나온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엘리가 저주의 말씀을 받기까지 돌이키지 않은 것처럼 지금 세상은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 모르고 타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무섭게 타락하고 있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진노의 채찍을 드시는 순간까지도 돌이키지 못했던 엘리 곁에 있다면 함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죽는 것이 곧 응답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시는 이유는 책망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한번 더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말씀이 그대로 임하기 전에 돌이켜 용서를 구해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며,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기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겨주시고 높여주시는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같은 날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움직이고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저주가 임했듯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에게는 약속대로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높이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2장 35절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한 자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시겠다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무엘을 끝까지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무엘은 옥토에 뿌리를 내린 참포도나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안도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리시고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엘리를 비롯한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갈밭에 뿌리를 내린 들포도나무처럼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붙드셨기 때문에 그가 충실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그의 어머니인 한나의 기도와 신앙의 훈련 덕분에 사무엘의 심령이 옥토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마음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시고 택하셔서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옥토가 된 심령 안에 말씀이 뿌리가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의 땅을 고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심게 되면,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인간의 생각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제사와 예배와 예물을 멸시하는 악행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세운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영원한 왕인 예수그리스도를 영구히 섬기는 자가 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받은 이 놀라운 축복은 본래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의 죄와 그들의 악행을 책망하지 않은 엘리의 죄로 인해 그의 집안은 모두 단명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모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는 부모를 둔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부모가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자녀를 믿음으로 훈련시킨다는 것은 그 가정에서 태어날 후손들이 받을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는 말씀을 마음에 담도록 지혜롭게 키워야 하고 세상에서 그 지혜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명철하게 키워야 합니다. 엘리와 같이 자녀를 책망하지 않고 자녀들의 죄를 덮는데 급급하다면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사무엘을 위해 기도한 한나처럼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현명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한나처럼 자녀를 사무엘이란 귀한 열매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엘리처럼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악한 열매로 키울 것인지 그것은 각자의 신앙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 신앙의 선택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혜롭고 명철한 신앙으로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으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3장 1-9절
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가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7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