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잊어버린 사울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과 섞여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상대방의 희생만 강요하는 사람인지에 따라서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이나 교제의 깊이가 다를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사랑으로 감싸고 이해하고 나눌 때 더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기의 필요만 채우려고 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관계는 분명 오래 유지하기 힘든 관계입니다. 물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 개를 받으면 반드시 나도 한 개를 줘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았을 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므로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관계가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부부나 부모와 자식, 친구와 형제, 성도들처럼 만나야만 하는 관계는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불화가 생길 것입니다. 세상에서 계산적인 관계는 감정이 상하면 상관하지 않으면 되지만, 감정이 상해도 버릴 수 없는 관계는 서로 노력하면서 맞춰가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도 노력 없이는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없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은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보면 사울에게 다윗이 쫓겨 다니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늘 악한 사울에게 선을 베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다윗을 공격하지만, 다윗은 맞서기 보다는 피해 다녔습니다. 사울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세상의 왕이고, 다윗은 그 왕에게 쫓겨 다니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왜 다윗은 사울을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답은 로마서 12장 19절에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를 향해 복수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가 주리면 먹이고 목말라 하면 물을 준다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처럼 고통을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시면서도 죄인들이 사망에 빠지지 않도록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음으로 볼 수 있어야만 자신의 죄가 보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죄를 보는 영안이 열리면 예수님의 사랑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울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때는 예수님처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랑을 주어야 하고, 받을 때는 겨자씨만한 사랑만 받아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인격과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 큰 그릇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고 깨달았기 때문에 사울을 공격하지 않은 것입니다.
선을 베푸는 다윗을 끊임없이 죽이려 쫓아다니는 사울은 블레셋이 예루살렘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갔지만, 블레셋이 떠나자 다시 다윗이 숨어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최고 정예병 삼천 명을 데리고 와서 다윗과 그의 군사 육백 명을 단번에 섬멸하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엔게디에 숨어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삼천의 군사도 있기 때문에 사울이 마음만 먹으면 다윗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다윗은 시편 35편 1-3절에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편 35편 1-3편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사울과 직접 싸우기보다는 하나님께 원수를 맡기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얼마든지 싸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윗도 인간인데 왜 직접 사울을 상대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성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울을 죽였다면 살인죄를 진 상태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으며, 억지로 빼앗은 이스라엘 왕의 자리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악한 방법으로 왕에 오른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때까지 인내하고 견뎌야 하기 때문에 위험을 미리 알려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훈련을 통해 얻은 경험들이 다윗을 성숙시킨 것입니다.
3절에 사울은 다윗을 잡으러 왔다가 그 발을 가리우러 굴로 들어갔는데, 마침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발을 가리운다’는 것은 ‘용변을 보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사울은 다윗과 육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용변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본다면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부하가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하신 그날이 바로 지금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알려주셨고 또 사울이 무방비로 눈앞에 있습니다. 이제 사울을 죽이고 그는 왕위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살짝 베었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시편 35편 4절에 그는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데도 이 기회를 잡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용변을 보는 사울을 죽이는 것처럼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기는커녕 옷자락을 벤 것도 회개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다윗을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사울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하신 말씀은, 내가[하나님] 너에게[다윗]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이렇게 복수하기 좋은 상황에서조차 잘 판단해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사울을 죽이면 원수는 사라지겠지만,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는 큰 시험인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고난도 시험이지만 이런 기회도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도 달아보십니다. 여러분에게 더 큰 것을 맡기고 싶을 때, 정말 내 자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문제를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사람들은 복수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거나,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자신이 좋은 대로 행동을 합니다. 그런 신앙은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실 수 없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다가 혹시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기회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다윗과 같이 신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사울을 죽이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다윗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여러분은 이제 다윗처럼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기 위해서 인내하는 여러분을 높이 드실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 굴에서 벌어진 줄도 모르고 사울이 굴 밖으로 나왔을 때 다윗은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절을 한 후, 내가 왕을 죽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듣고 왜 나를 쫓아다니느냐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주며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으니까 내가 왕을 죽일 것이라는 거짓말을 듣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2절에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왕에게 보복하실지언정 나는 내 손으로 당신을 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노리는 사울을 직접 심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시편 35편에서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사울을 친구와 형제처럼 대했지만, 그는 선행을 악으로 갚으며 불량배처럼 자신을 치고 찢기를 그치지 않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대신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죽이지 못하는 다윗은 생각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죽일 기회가 있어도 죽이지 않는 다윗과 죽이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울은 달라도 아주 달랐습니다. 이처럼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기회가 주어지는 다윗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누구와 동행하시느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19-20절에 내가 반역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는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사람이 원수를 만나면 그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인데 나를 죽이지 않은 너의 선한 행위를 여호와께서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있고, 이스라엘이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안다고 하면서 내 후손을 끊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돌아갔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선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여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고 후손도 부탁하는 사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다시는 다윗을 괴롭히지 않을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26장에 다시 다윗을 쫓는 사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는 쫓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사울이 삼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을 잡으러 온 것을 보면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사람은 본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다윗에게 네가 선한 것을 알고 내 후손을 부탁한다고 말을 하며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악한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큰 위기를 맞이했을 때 사울은 다윗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사울이 지금 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윗이 생명을 걸고 골리앗과 대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전쟁마다 승리했고 악신으로 고통 받는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나라가 안정되어 이제 다윗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다윗의 헌신이 도리어 부담이 된 것입니다. 사울처럼 받은 은혜를 잊는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이 악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필요를 채우면, 그 상대가 하나님이든 믿음의 사람이든 가장 큰 도움을 준 순서부터 자르는 것을 봅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다윗이 큰 도움을 주었지만, 백성들이 만만이라고 칭송하고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나누어 줄 때가 되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울이 어리석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윗을 자신의 곁에 두신 분도 하나님이고, 다윗을 통해 왕권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것을 보는 영안이 어두우니까 원하는 것을 취하자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믿음의 사람 다윗을 통해 나라를 구했다면, 사울은 다윗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취한 후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을 버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모두 사울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질투로 마음을 닫아버린 사울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윗을 쉽게 죽일 수 없었습니다. 군사를 동원해도 다윗은 안개 속에 감춰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고 계시는 한 사울은 절대로 다윗을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왕자 요나단을 왕위에 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런 뜻을 깨닫고 선하게 살았던 것이고, 사울은 하나님의 이런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울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만약 사울이 지혜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동역자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골리앗을 물리쳤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자신에게 든 악령도 쫓아내어 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죽이겠다고 쫓아다니지만, 세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악인이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선한 마음과 행실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악한 영과 악한 사람은 절대로 여러분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만 하면 자신을 도와준 하나님도 다윗도 쉽게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그 평안함은 하나님과 그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받은 축복인데도, 절대로 나누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욕심이 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도록 막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에게 은혜를 받았거든 마음에 간직하시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울은 자신이 파놓은 파멸의 구덩이에 빠졌고, 자기는 물론 아들들까지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결국 자기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돼 있습니다.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듣게 되어 있으므로, 사울처럼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한번 도와주셨다면, 하나님은 열번 백번을 도와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므로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배신해서는 안 되며 다윗처럼 여러분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 있거든 쉽게 버리고 대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들이 베풀어준 사랑을 기억하고 갚을 줄 아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25장 14-22절
14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1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