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 나은 순종 — 사무엘상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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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이가봇

엘리의 며느리는 아들을 낳고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과 시아버지와 남편과 그의 형제가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갑자기 아기를 낳게 되었고 아기를 낳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이 심판의 말씀을 전했지만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에 앞서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심판의 말씀을 전했고, 그 이후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 누리고 있던 삶에 만족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사무엘의 예언이 결국 임했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지금 이 사건을 살펴보면,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존중하고 섬겨야할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여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알았기 때문에 교만한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돌이켜야 한다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설득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힘을 가진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악한 자에게 진리는 그저 듣기 싫은 소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아들을 낳은 것에 관념치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을 염려하며 죽어간 그녀의 신앙을 잊지 않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지만, 세상에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했던 여인의 기도와 신앙은 귀한 후손을 남겼습니다.

사무엘상 14장 3절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성경은 사무엘의 허락 없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사울의 사건과 요나단이 블레셋을 습격하는 사건 중간에 갑자기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제사장 아히야는 아히둡의 아들이고, 아히둡은 비느하스의 아내가 낳은 아들입니다. 아히둡에게는 또 다른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사무엘상 22장 9절에 등장하는 아히멜렉입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과 떡을 준 죄로 사울에게 85명의 제사장들과 함께 몰살당한 제사장입니다. 이가봇을 낳은 여인의 후손들은 정직한 제사장으로서의 맥을 이어왔고, 사울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정직한 죽음을 선택한 것을 보면, 그녀가 믿음으로 자녀를 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믿음으로 바로 살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열왕기상 2장 26-27절에는 아버지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의 거룩한 죽음을 보고도 출세를 위해 솔로몬을 따르지 않고 아도니야를 선택한 아비아달이 등장합니다. 비록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였으나, 솔로몬은 그에게 고향 아나돗으로 돌아가라고 하며 그를 용서해주었습니다. 연약한 여인의 믿음이 후손들로 하여금 끝없는 용서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아모스 9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과 전쟁하고 있는 블레셋이 갑돌에서 올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갑돌은 그레데 섬 지역을 뜻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B.C. 2000년경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그레데 섬에 살았지만, 사사시대에 들어와 가나안 땅의 남서쪽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혀왔습니다. 그들은 제철기술이 발달한 뛰어난 문명을 가진 민족이었기 때문에 타락한 이스라엘이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 군사 사천 명이 죽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전쟁에 패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패하게 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하기 전에 자신들의 신앙을 되짚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패하자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생각은 굉장한 믿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장로들의 생각은 언약궤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위해 늘 기적을 베풀었던 언약궤가 전장으로 들어오자 자신들의 무조건적인 승리를 확신하며 기뻐했습니다. 반면 블레셋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기에 자신들이 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모두 인간 편에서 언약궤를 본 결과입니다. 언약궤나 구원은 인간의 입장에서만 보면 언약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패배를 경험한 이스라엘과 같이 구원을 얻었다고 확신하면서도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과 동일한 신앙의 상태입니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나서 차에서 예배를 드린다든지 읽지도 않는 성경책을 차에 놓고 다니거나 십자가를 걸어 두고 다니는 것은 그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전쟁은 무기나 군사의 수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있는 믿음과 믿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곧,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결과를 이끌어 내고 그것이 세상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의 온전한 믿음에 기인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끝까지 죄인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는 역사를 경험할 것이며, 진홍같이 붉은 죄를 갖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사장과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용해 세상의 삶을 풍요롭게 살길 원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한 그들은 전쟁터에 하나님의 궤만 있으면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크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언약궤가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만 명의 병사가 또 죽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군사들은 궤를 빼앗은 것은 물론 실로까지 들어와 크게 살육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언약궤를 제작한 후부터 궤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심을 확인시켜 주는 거룩한 상징물이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언약궤는 한낱 나무상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우상처럼 믿고 있는데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드리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모든 신앙의 형식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매우 잘못된 신앙입니다.

물론 교회에 빠지는 사람을 보면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헌금을 할 때마다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아까워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일성수와 헌금의 이유가 육적인 복을 받는데 있다면 그것은 기복신앙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참된 헌금이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기에 그의 백성으로서 왕에게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히브리서 9장 4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금으로 싼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두 개의 돌판이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대적했을 때 주셨던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철저한 죄악을 상징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신명기 4장 13절에 보면, 두 돌판은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반포하시고 백성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십계명’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이었습니다. 십계명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만들지도 섬기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는 그 은혜의 순간에 조차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기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길을 알려주고 계시는 그 순간에 인간은 철저한 죄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 모세는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첫 번째 돌판을 던져서 깨버립니다. 이후 두 번째 돌판을 만들어 다시 하나님께 올라갔는데, 언약궤 안에 있던 것이 바로 이 돌판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에는 ‘너도 알지 못하고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인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고 만나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 초자연적인 사건을 일으키시며 역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먹을 것을 구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람이 씨를 심고 거두어들인 양식이 아니라 아침에 들에 나가면 하늘에서 내린 이슬이 먹을 수 있는 만나로 맺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국한되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금식을 하신 예수님께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돌들을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답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은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육적인 양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다 보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영적 사망 가운데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영적인 능력과 생명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야만 하늘의 기적을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민수기 17장 8절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총회 가운데 택함을 받은 자 이백오십 명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며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을 보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세와 아론에게 이 회중을 모두 멸하시겠다며 진노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와 아론은 진노를 거두시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그들에게 대적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의 집과 속한 모든 사람과 재물은 산 채로 갈라진 땅속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하는 일을 막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막는 것과 동일하며 성령을 거역하는 죄와 같습니다. 물론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을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에게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회막 안에 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며, 이것으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인줄 알고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 열두 개를 하나님의 궤 앞에 놓았을 때,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만 살구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습니다.

이렇게 언약궤 속에는 이스라엘의 죄를 대표하는 세 가지 상징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피 뿌림의 용서를 잊은 채,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욕심의 도구로 언약궤를 이용하였습니다. 성도들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는 믿음은 놀라운 기적과 이적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신앙을 이용하여 세상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하나님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공격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패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목숨 걸고 구해야 하며 그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한낱 이방신과 동일하게 취급한 그 죄를 회개하였다면 사랑의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보호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인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성소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성소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핵심은 ‘죄 사함을 받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은 물론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영원히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을 중심에 세우는 일입니다. 소아시아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믿은 것처럼, 에티오피아 내시가 빌립의 설교를 듣고 믿은 것처럼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은 말씀을 깨닫고 돌이킬 때 주어지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것을 들었을 때, 엘리는 자신의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사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제사장직을 수행하고도 결국 목이 부러져 비참하게 죽는 엘리를 보면서 우리도 믿음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궤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제사장이 기도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소식만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역시 치열한 세상의 전쟁터에서 기도 없이 요행만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성도들이 기도의 자리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면 엘리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엘리는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제사장이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백성들은 제물을 계속 가지고 올 것이고, 제사 드리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 두려움 없이 형식만 갖추어 직분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며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동일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적당히 헌금을 드리면서 천국을 보장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날마다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므로 사람의 깊은 생각을 모두 읽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시아버지 엘리와 남편 비느하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심판을 전했던 며느리가 되어야만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엘리와 비느하스를 보면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지만, 간절히 기도하던 엘리의 며느리가 드렸던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멸망과 심판을 받을 엘리의 집안에서 다윗을 돕는 아히멜렉과 같은 거룩한 후손을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엘리의 며느리와 같은 신앙을 갖는다면 생명의 물줄기는 여러분을 통해 태어나는 모든 영육간의 열매들에게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온전한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손들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능력이 되므로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처럼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면 그의 곁에 있던 아들들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고난을 함께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이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던 이 여인의 신앙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는 것은 곧 심판이며 멸망이라는 것을 아는 신앙을 가졌을 때 온전한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5장 1-5절

1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제사보다 나은 순종 · 이가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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