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과 거짓된 사랑
사랑에는 대가를 바라는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기대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면 그 사랑은 점점 빛을 잃어갑니다. 대가를 바라는 사람은 자기만족이 없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고 불행한 감정이 결국 상대방까지 힘들게 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 주위에는 돕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랑을 베풀게 되면 강물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는 심정이기 때문에 보람이 없으므로 사랑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관계까지도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뿐 아니라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공허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내가 주는 사랑을 받고 상대방이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계산이 앞서기 때문에 도리어 상대방의 인생과 믿음까지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상대가 배신하지 않는 한, 항상 그 결과가 좋습니다. 자신이 베푸는 사랑으로 상대방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안정되기를 바라며, 준 것을 다시 되돌려 받을 생각이 없으므로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사랑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계산으로 사랑을 흉내 내는 것인지 결과가 말해 줄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별로 베푸는 것이 없는데도 그 사람 주위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늘 사랑을 베푸는 것 같은데 혼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이 진심에서 나온 사랑인지 아니면 무엇인가 바라는 사랑인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형제와 친구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준 것만큼 반드시 보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조급하고 공허합니다. 내가 베푼 만큼 상대방이 답하지 않으면 힘들어하고, 내가 베푼 횟수만큼 상대가 보답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거저 받은 선물을 사랑하는 이웃에게 나누어 줄 때,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고, 샘솟는 샘물처럼 나누어도 또 나눌 것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족하는 심령에 더 많은 복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분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전에 두 번 선물을 줬는데 왜 한번 밖에 주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내가 얼마짜리를 줬는데 자신은 그보다 싼 것을 받았다면서 투덜거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제가 볼 때 자신이 받은 사랑과 선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준 것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때부터 지옥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물을 너무 자기만족으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상대가 선물을 받았을 때 기분이 상하거나 서운하다면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닙니다. 자기에게도 충분히 소중한 것 그리고 상대방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을 주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주거나 버리기 아까운 것을 주는 것은 그 자체로 인격이 올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성품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상대방이 자신보다 가난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진심으로 잘해주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더 잘 되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화를 내고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관계가 이제 끊어졌나 생각하고 어려운 일이 생겨서 다시 연락을 하면 진심으로 다시 도와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항상 자신보다 아래 있어야 하고 어려움을 당해야만 기쁜 마음으로 돕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처럼 계산 없이 무조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있어야만 관계를 맺고, 또 자기보다 못해야만 관계를 맺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지속될 것입니다.
사무엘상 18장에 보면, 사울이 바로 지금까지 말씀 드린 그런 성품을 가졌습니다. 사울은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인정을 받지 못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람들에게 상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관심을 갖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사울은 자기를 희생하고 나누고 상대가 높아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이런 사람과 일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좋게 시작하지만 결국 서로 마음이 상해서 헤어질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왕인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월감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릇이 작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에 약하며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신이 잘 되면 교만하고 상대가 잘 되면 힘들어 합니다. 이런 태도는 열등감이 있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보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불편해하고, 말을 들어주기 보다는 기회만 있으면 상대방을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기 힘듭니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처럼, 사울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왕의 역할만 잘 감당하면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백성이 다윗을 따른다고 해도 이미 사울이 왕이기 때문에 염려할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좌불안석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이런 태도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릇이 작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큰 그릇인 다윗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사울이 자신의 그릇이 작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그는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왕은 겸손해도 왕이며, 왕은 왕인 체하지 않아도 왕입니다. 왕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 미복잠행을 할 때 평상복을 입어도 그는 왕인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사울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낮은 자리에 앉을지라도 사람들은 그를 높은 자리에 앉도록 권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울이 왕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능력 있고 재능이 있으면 포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정해진 법처럼 실패가 따라옵니다.
상대방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상대방을 경계하지 않게 되고 도리어 상대의 능력을 사용하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상대가 유능할수록 그의 완전한 능력을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처럼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으며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실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곁에 있는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가페 사랑을 받아 봤기 때문에 똑같은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함박눈처럼 포근하고 감사하고 기쁘다는 것을 알기에 싸라기눈처럼 사랑을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대가를 바라고 주시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절대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고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랑을 하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여러분이 먼저 사랑을 주되 대가를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베풀어준 사랑은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그러나 받은 사랑이 있거든 죽는 그 순간까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 영혼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나를 믿으면 내가 내 능력으로 너희들을 도울 것이기 때문에 나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면서도 나보다 더 잘 되면 안 되고, 세워주면서도 나보다 더 크면 안 된다는 마음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면 그가 나보다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마음이고 진정한 사랑을 아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이 크게 성공해도 시기하지 않는 것처럼, 믿음의 형제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므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며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사울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온 백성은 다윗을 칭찬했고 높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져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다윗을 시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나는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곁에서 듣고 있던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과 특별한 친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미워하는 상황에서 다윗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계획을 알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왕자인 요나단뿐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 곁에 그를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으면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것이 성도들이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며, 언제나 지금의 삶을 만족하는 것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나라를 구한 다윗을 칭찬하고 감사해야 할 사람은 사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경계의 대상으로 볼 뿐 나라를 구한 그의 충성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라는 작은 그릇에 다윗이라는 큰 그릇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나 윗사람의 그릇이 작으면, 즉 지혜가 없고 사랑이 없으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성장할 수 없고 삶이 피곤한 것입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다는 것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사슬로 단단하게 묶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을 영적으로 알아보고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한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을수록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더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사울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다윗을 경계해야 할 사람은 요나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를 도운 것입니다. 요나단처럼 행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왕자인데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왕의 자리를 그에게 넘겨주겠습니까? 다윗의 능력을 이용하여 더 큰 권력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진심으로 다윗을 보호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은 사울을 환영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골리앗을 이길 장수가 없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서 생명을 건져준 다윗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7절에 그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은 사울은 불쾌해하며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왕인 자신은 천천이고, 다윗이 만만이라면 왕으로서 불쾌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라의 주인인 왕보다 신하인 다윗을 더 높여주는데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울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다윗이 더 힘써 일할 수 있도록 백성 앞에서 다윗의 공을 더욱 더 높여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왕인 사울이나 신하인 다윗이나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누리는 축복은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승리한 모든 전쟁을 통해 넓어지는 지경과 전리품은 사울과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사람들의 말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다윗을 높여주었다면 도리어 백성들은 사울을 높이고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먼저입니다. 다윗은 만만이고 자신은 천천이라는 말이 그를 분노케 했고, 그 분노가 결국 자신과 아들들의 죽음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거듭나지 못한 세상 사람의 모습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아랫사람과 같이 일을 했는데 아랫사람이 여러분보다 더 칭찬을 듣고 인정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그러나 지혜가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지 왜 이 사람과 동역하는지 한번만 더 생각을 해 본다면, 마지막 선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서로 돕기 위해서 애쓰고 힘쓴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사울은 질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사탄은 그 악한 마음을 이용하여 더욱 그를 괴롭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악신이 괴롭혔다기보다는 다윗을 향한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이 그의 판단을 흐렸고 살의를 품게 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시기와 질투 혹은 낙심을 버리지 못해서 자기를 괴롭히고 또 그 마음을 사탄의 도구로 내어주고 있습니다.
12절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두 번이나 창을 던졌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두려웠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돕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왕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다윗을 절대로 해칠 수 없으며,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있으므로 사울의 행동을 예견하여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죽이는데 실패한 사울은 맏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겠다고 하면서 대신 블레셋과 전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죽이지 않더라도 강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죽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제안을 거절하자 큰딸 메랍은 아드리엘에게 시집을 갔고, 작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사울은 또 꾀를 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가져오면 미갈과 결혼시켜서 사위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미갈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다윗이 그들에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또 한 것입니다. 사울의 질투는 계속 다윗이 죽을 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이려고 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끊어 놓으면 영혼이 죽어서 사탄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의 딸과 결혼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편히 살 수 있는 삶이 보장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안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총리가 된 것처럼 성도가 왕의 딸과 결혼을 하더라도 그 믿음만 변치 않는다면 그 악조건이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 포피 백 개를 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다윗은 이백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믿음의 자녀인 다윗은 사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울의 입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성도의 지혜로움은 곧 사탄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도구이며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울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다윗처럼 사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행동해야 하며, 사탄의 조종을 받는 사울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알고 대처해야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위험에 처할 때나 평안할 때나 하나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길로 가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지 기도했고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왕국을 이룬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괴롭힌 시간은 다윗의 인생에 도리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고, 사울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 지혜로워졌으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행동은 여러분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떨어진 낙엽이 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지, 나무에 붙어 있는 나뭇잎은 절대로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곁에 있는 사람은 사울이 아무리 흔든다고 해도 떨어지지 않으며 사탄이 부는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하는 귀한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갈 영원한 천국과 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요나단처럼 도와줄 동역자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지혜를 받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횃불을 높이 드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19장 17-24절
17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18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19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