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보다 나은 순종 — 사무엘상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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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제사를 드린 사울의 교만

잠언 20장 11절에 보면 비록 어린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 어떤 성품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마음에 품은 생각을 잘 감추지 못합니다. 얼굴에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이나 선행은 숨기려고 해도 결국 모든 사실은 드러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보여준 행동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므로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가 밖에서 놀다 오면 어머니는 놀이터에서 잘 놀았는지 아니면 싸우고 왔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머니를 속이려고 해도 어머니는 자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심령을 보시기 때문에 절대로 속지 않는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인생이 증거이기 때문에 거짓을 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하며, 매순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귀한 인격을 갖추어야만 인생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잠언 16장 1-2절에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일지라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선악을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없이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으므로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긴다면 경영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계획한 일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인정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녀들이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부모와 상의 없이 마음대로 처리했다면 그것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혹은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상의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자녀들이 도리어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입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은 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고백은 거짓말이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람에게도 세상에서도 하나님께도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명을 감당하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늘 결심만 하는 사람, 감정이 쉽게 변하는 사람은 인정을 받을 수 없으며,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은 고단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항상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성실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에도 행구 사이에 숨는 겸손함을 보였고, 사무엘이 기름을 부을 때도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암몬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해 놓고도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게 되자 그 승리가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교만하였습니다. 그런 왕과 백성을 보면서 사무엘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응답을 받을 때는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감사를 잊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세워주셨고, 능력을 주셔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실을 잊을 때 악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울이 암몬에게 크게 승리한 것은 그를 왕으로 온전히 세워주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교만해진다면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 지 이 년이 되었을 때 그는 자기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 이천 명은 자신을 호위하도록 하였고, 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기브아에 있게 하였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 세 번째 예언에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가 기브아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울에게 천 명의 군사를 받은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쟁소식에 백성들은 두려워했지만, 사울은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한 것을 기회로 삼아 히브리 사람들에게 빨리 모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사울이 이스라엘을 향해 ‘히브리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아브람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사실에서 기인된 말입니다. ‘히브리’라는 뜻은 ‘강을 건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얍복강과 홍해와 요단을 건너므로 히브리인의 역사에서 실현시킨 것입니다.

4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자 사울을 따르기 위해서 모두 길갈로 모였습니다. 블레셋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병거를 삼만, 마병 육천을 준비했고, 군사들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그들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을 쳤는데, 여기서 ‘벧아웬’은 ‘사악한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병거와 마병과 군사들을 본 이스라엘은 두려운 마음에 굴과 수풀과 바위틈에 숨고 말았습니다.

호세아 10장 5절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우상숭배의 장소로 타락하게 되자, 그들의 신앙을 경멸하는 뜻으로 ‘벧아웬’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었던 ‘벧엘’이 ‘벧아웬’이 되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리스도인이고, 사탄의 지배를 받으면 짐승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벧엘’이 될 것인지 아니면 ‘벧아웬’이 될 것인지,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여러분의 삶이 결정해 줄 것입니다.

블레셋은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많은 무기와 군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무기도 없고 훈련 받은 군사도 없었습니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습니다. 블레셋의 엄청난 군사력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전의를 상실하고 숨기에 바빴던 이때,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8절에 사울은 사무엘을 정해진 기간 동안 기다렸지만 오지 않자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 오라고 해서 자기가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제사를 막 마쳤을 때 사무엘이 도착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왕에게 지금 당신이 행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대답하길, 백성들은 블레셋이 무서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않고 블레셋과 전쟁이 시작되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사울은 사무엘에게 길갈로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줄 것을 부탁한 것 같습니다.

흩어지는 백성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야 하는데, 약속한 시간에 사무엘이 오지 않자 왕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사울의 말을 들어보면 모든 잘못이 사무엘에게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물론 백성들은 흩어지고, 블레셋 군대는 올라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울의 말처럼 나라는 위기에 처했고 어쩌면 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존폐 위기에 놓여 있는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사울과 같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울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정한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정한 이 기한까지, 혹은 이 정도까지는 도와주셔야 한다고 정해 놓고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내가 정한 때에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어이없는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 역시 내가 정한 시간에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을 것 같은 조급한 마음에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제사를 왕이 드린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늘 핑계를 대는 사람은 계속 죄를 짓게 됩니다. 그처럼 사무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핑계를 대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사울은 계속 책임을 사무엘에게 전가시켰습니다. 사울이 차라리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했다면 하나님과 사무엘은 사울을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사울이 정한 때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우선입니다. 사울은 그것을 범했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사람을 돕고 응답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결정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고, 인간적인 판단에 의해 잘못 결정했다면 곧바로 회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13절에 사무엘이 왕이 망령되이 행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왕은 직무의 한계를 넘어서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제사는 사무엘의 절대적인 권한이라는 것을 사울도 알고 있었지만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죄를 지은 것입니다

사무엘은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지 않으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할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했습니다. 그런 예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나라가 길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사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방나라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도 아니며, 사무엘이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제사를 지낸 것뿐인데 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울이 하나님의 법을 준행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제사를 드리고도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통해서만 제사를 받는다고 법으로 정하셨다면, 사무엘이 오지 않았더라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을 것입니다. 꼭 제사를 받아야만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본 백성들은 사무엘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이제 제사를 드렸으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정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행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진리의 길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울이 드린 제사를 누가 받는 것인지 조금만 생각한다면, 사울이 어떤 죄를 졌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2절 당장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무기를 사울과 요나단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철을 독점하는 정책을 블레셋이 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무기가 없다면 싸울 필요도 없이 패한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노력을 해도 사울과 요나단만 무기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블레셋을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0장 20절에,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무기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에는 이미 철병거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무로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이 이해가 되십니까? 상대가 어떤 무기를 가졌든 상대가 수적으로 많아도 상관하지 말고, 나무칼을 가지고 그들과 전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보면서 성도들의 믿음은 흔들릴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야만 힘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의 신앙으로는 나무칼을 만들라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라면 믿지 않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게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무칼을 어디에 사용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만들면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길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라면 나를 높여줘야 한다는 세상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은 택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모든 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그 하나님을 믿어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자신을 불러 가장 높은 곳에 세워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면 하나님께 받은 그 모든 은혜와 능력을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사울의 이런 어리석은 행동이 결국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사울을 거울삼아 여러분은 진실 되고 정직한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병거와 마병으로 무장했을지라도 그들의 능력 위에 계신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믿음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인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무엘상 14장 6-15절

6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8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1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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