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목회하고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서 3개월 정도 체류했을 때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차 선교여행 말기인 A.D 57년 말 ~ 58년 초순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는 바울의 올바른 신앙이 담겨 있으며 당대는 물론 지금 우리들까지 진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서신서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전하는 이런 서신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기 때문에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3장 31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말씀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며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육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의 충만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자식이 굶고, 육체가 병들고, 악한 자에게 위협을 당할 때 영혼의 성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지는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선순위에 두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의지하는 육은 자연스럽게 영의 지배를 받게 되고 영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므로 육을 이길 힘과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바울은 육의 지배를 받고 살았지만 회심한 후에는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성령을 의지하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무익한 육을 버리고 말씀대로 사는 성도의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누렸던 세상의 권세를 버리고 자신이 핍박하고 조롱했던 예수를 위해서 세상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던 천부장이 자신은 돈을 주고 로마시민권을 샀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특정한 권리와 보장을 누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를 위해서 자신이 가진 삶의 특혜를 모두 버린 것입니다. 율법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이런 결단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종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특혜를 버렸지만 복음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바울은 자신을 험담하는 유대인들과 논박하던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서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왜 권세와 물질과 지식을 갖게 했는지 알기에 자기를 비판하는 유대인과 논박하는 성도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 권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명료 정확하게 전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율법대로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율법의 요구를 깨닫게 되자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았을 때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처럼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인이 안타까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는 자기 지역을 대표해서 전국체전에 출전합니다. 그곳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면 국가 대표로 선발됩니다. 이 선수는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출전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선수입장에서 보면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은 지역대표보다 선수로서 훨씬 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처럼 율법을 지키던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자 더 큰 영적 세상을 보게 되었고 죄를 용서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이 유대인에게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근절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받은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을 정도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제자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살기가 등등 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에 죄의식도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를 박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몰랐던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메섹으로 달렸습니다.
사도행전 9장 3~5절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나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공문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던 사울은 아주 위험한 사람이었으므로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울을 막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사울은 문화적 종교적 그리고 태생부터 율법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스데반을 죽일 정도로 율법과 권력으로 무장한 사람이었으므로 사울이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사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에 존경받던 랍비 가말리엘에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소탕하는 것은 그에게 곧 믿음이며 충성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죽이는데 죄의식도 없던 그를 멈추게 한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이었습니다.
강한 빛이 사울을 감싸자 그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므로 성도를 핍박하는데 어떤 두려움도 없었지만 지금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사울이 놀라며 누구냐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안식일의 주인이며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울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이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음성을 직접 보고 듣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초라하게 죽었던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자 사울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율법의 신앙과 율법을 위한 삶이 모두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21절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바울은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그리스도를 전능하신 왕으로 영접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실들이 모두 잘못 된 정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음성을 보고 듣는 순간 그 어떤 세상의 권세보다 그리스도의 권세가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유대인이라는 신분과 로마 시민권이 자랑스러웠지만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자 그는 하나님 나라가 실존하는 나라라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자랑이었던 율법의 지식과 부와 명예가 그리스도안에서 얼마나 하찮은지 알게 되자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바울은 훗날 복음을 전할 때 그 모든 것들이 유대인을 전도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고 지혜롭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했던 그리스도인들이 혈육보다 가까운 형제라는 것이 믿어졌으므로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20절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 돌이 되셨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하찮게 여겼던 이방인들에게 너희는 소외된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형제라고 하면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통해 가장 큰 변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요즘 목회자와 성도들을 보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가치와 기준이 세상이므로 세상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무가치한 육의 일을 버리고 영을 위해 산다면 우선 순위가 바뀔 것이고 삶의 방향과 마지막 목적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26~27절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3년 만에 돌아와 15일 동안 체류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가장 먼저 제자들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8-19절에 보면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회심했다는 것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울을 피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스도인과 스데반까지 죽였던 그가 하루 아침에 회심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면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도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도 지금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그들의 반응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공문까지 받을 정도로 핍박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던 사울이 갑자기 사도성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더욱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때,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그를 보증해 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성도였고 구제와 말씀을 전파하는데 열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존경을 받고 있었던 바나바는 성도들이 바울을 의심하며 멀리할 때 그를 지도자들에게 소개하며 교회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아마도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은 교회 중심으로 들어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바나바의 도움으로 바울은 소아시아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의 수많은 나라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나바를 예수님의 70인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며 구브로 교회의 설립자였고 훗날 구브로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바울을 높여주면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이방인의 사도로 일할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으로 앞선 바나바가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는 것도 보셨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변함없이 충성하는 모습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도 보고 계십니다. 한편에서는 자신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사울을 막아달라고 두려움에 떨며 기도하는 성도들도 보셨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사울의 발길을 막는 것뿐 만이 아니라 그가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가 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회심한 바울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악한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지켰던 스데반이 아니라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는지 의아했던 성도들이 이해가 됩니다. 성도들은 사울을 사도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공평하신 분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 역시 복음을 영접하기 전에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면서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만 위해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것이 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그리스도가 없는 삶이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도들만 공기와 물을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악한 자들에게도 공기와 물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도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이 은혜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은 구원입니다. 스데반은 두 팔을 벌리고 자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을 받았고 핍박을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자비로운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셔서 복음을 지혜롭게 전하게 하셨고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에게 은사를 부어 주셨고 바나바처럼 준비된 귀한 성도를 동역자로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악한 자들이 은혜를 입으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아도 되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바울의 변치 않는 믿음이 존경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에 빠진 우리를 부르셔서 그 누군가의 부모가 되게 하셨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능력과 물질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준비된 누군가를 만나게 하셨고 그 성도의 희생을 통해 영생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구원을 불평하기 전에 자신이 거저 받은 구원에 감사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바나바는 사람들이 바울의 생명을 위협하자 다소로 보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14년을 머무르며 성도들을 가르쳤고 신앙의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이 율법보다 더 깊은 영적 세계를 경험하면서 신앙을 정립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은 거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내며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바울이 세상의 힘과 능력을 배설물로 버린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8장 16~19절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첫번째 로마로 압송되었을 때에는 억압받지 않아서 행동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살게 된 이유는 BC 63년에 폼페이가 유대의 독립 운동을 진압하면서 포로로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바울은 그들에게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항소했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우리는 너에 대해 들은 바 없지만 너희들이 믿는 기독교는 어디서든지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되도록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석방되자 에베소를 거쳐 골로새로 갔으며 마게도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스페인이었지만 가지 못했으므로 결국 그레데를 방문하여 디도를 남겨두었고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두번째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을 때 두번째 감옥 생활은 첫번째 감옥생활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AD 64년 로마 대형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네로 황제를 향해 분노하자 그는 소수 집단이었던 크리스천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순교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외진 곳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으므로 처형 될 날을 기다리면서 디모데 후서를 썼고 주 후 68년 봄에 순교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사랑한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 했으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핍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바울은 강력한 로마제국에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로마는 제우스와 세상 신들을 믿는 우상숭배가 팽배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세상의 왕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왕을 전하는 것은 가치 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네로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가면서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서를 쓴 후 10년 후에 로마에서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네로의 참형으로 육의 눈은 감았지만 영의 눈을 뜨는 순간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에 행복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순간만큼은 스데반의 미소가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로마서를 보면 한번도 만나지 못한 로마 교회를 그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성도들에게 올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6~7절
6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교회 성도들은 모두 자신처럼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백성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시민권을 갖게 된 것은 거저 받은 은혜이므로 성령의 전인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자신은 구원 받을 자격과 용서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차별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속량을 받았으므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인 자신을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목숨을 드렸습니다. 이런 믿음은 바울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사랑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한다면 바울처럼 대속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달을 수 있으므로 은혜를 갚는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연약함을 채워 주기 위해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종이며 동역자입니다. 거저 받은 은혜를 바울처럼 목숨으로 갚지 못할지라도 사는 동안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