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러분은 사망교도소를 예로 든 설교를 통해 사탄의 유혹과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자세히 알았을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을 사망으로 이끄는 힘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받은 구원은 큰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아들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셨고 예수님은 순종하기 위해서 기꺼이 보좌를 버리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 용서를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죄에 대해 모든 것을 가르쳐준 바울은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성도들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용서를 받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성도들은 이제 순종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데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형식대로 드리면 되지만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깨달아야만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성도에게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성도들이 죄를 깨닫게 하는데 집중했다면 지금부터는 성숙한 성도로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성화된 성도로 살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판단과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거듭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에 도리어 반박했습니다.
로마서 6장 1절
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바울은 율법을 주신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죄는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관영한 곳에 은혜가 임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은혜로 인해 건짐을 받게 되므로 죄가 관영한 곳에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칠 수 있도록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조롱하듯 말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많은 계획과 희생과 인내와 사랑으로 성취된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교도소 담이 높은 것은 너희들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높은 담조차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독생자에게 십자가를 지도록 하셨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용서인데 이들은 조롱하듯 범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친다면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이 어떻게 잘못된 것이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종이나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한 죄를 용서해 주시는 차원이 아닙니다. 모른 인류를 사망에 가둔 원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하셨기 때문에 무지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로마서 6장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은 죄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한 그들에게 너희들이 지금까지 사망과 사탄과 죄의 노예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시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믿음의 성도들도 그 자리에서 같이 죽었으므로 이제는 죄를 지을 몸이 없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예수님께서 대속해 주신 죄를 다시 범하는 것은 은혜를 배신하는 행위이며 사망의 구덩이로 뛰어드는 행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에게 무죄라는 판결이 내린 것과 같으며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사망교도소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에게 자유가 주어졌으므로 선한 진리 가운데 자유를 누리면 됩니다.
로마서 6장 3~4절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세례와 결부시켰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세례는 형식적인 세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영광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던 애굽을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받고도 마음이 다시 강퍅해진 바로 왕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백성을 추격했습니다. 바다 앞에서 백성들은 모세만 바라보았고 모세는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모세는 물론 백성들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 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큰 동풍을 불게 하여 바다에 길을 내셨고 육지가 드러나자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서 건너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의 수가 워낙 많아서 홍해를 건너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을 것입니다. 곧이어 바로의 말들과 전차와 기병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해 육지처럼 드러난 바다 한 가운데로 쫓아 들어왔습니다. 430년이란 긴 시간동안 종살이를 하면서 당한 고난보다 어쩌면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는 이 시간이 더 두렵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하면 고난이 모두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 모세를 보내셨고 모세가 행하는 10가지 재앙을 보면서 이런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과 모세라면 자신들을 편안한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애굽 군사들과 같이 있게 되자 이스라엘은 믿음이 흔들리며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벽처럼 쌓인 바다 한 가운데를 걷는 기적도 보았지만 애굽 군사들에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애굽 군사들에게 몰살당하거나 다시 붙들려 애굽으로 끌려갈 수 있는 상황에서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벽처럼 쌓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셨지만 그들의 의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바로의 군사들이 백성들을 추격하며 바다로 들어오자 여호와께서는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을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애굽 군사들은 병거 바퀴가 벗겨지고 마차가 부서지자 여호와께서 직접 자신들과 싸우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불과 구름 기둥으로 자신을 공격하시는 여호와를 보았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길 네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서 물이 애굽 사람들 위로 다시 흐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내밀자 바닷물이 애굽 사람들을 덮쳤고 모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애굽 군사들이 있는 쪽의 바다는 덮였지만 이스라엘백성이 걷고 있는 쪽의 바다는 여전히 갈라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다 한 가운데서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바다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사망에 잠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당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직접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기 위해서 쫓아온 애굽 군사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출애굽 사건이 지닌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구름 아래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바다 가운데로 지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스라엘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특별한 은혜로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세례를 통해 그 뜻을 알려준 것입니다. 모세에게 속했다는 것은 백성들은 끊임없이 모세에게 불평을 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세와 하나가 되어 홍해를 건넌 이 상황을 구름과 바다에서 모두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바다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를 믿고 그와 연합하여 바닷속을 걸었던 백성들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신뢰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가 세상과 사망과 분리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을 하고 받는 세례가 이와 같습니다.
제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인 간다게가 예루살렘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성령의 명을 받은 빌립이 그를 찾아가서 말씀을 가르쳤고 간다게가 믿음을 고백하자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백성이 모세와 연합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백성들은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다 한 가운데를 지난 것처럼 교회에서는 물에 완전히 잠겨지는 침례나 물을 뿌리는 세례를 행합니다. 바다가 갈라지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물속에 있었던 것처럼 세례는 물에 잠시 잠기는 형식을 통해 죄 된 몸은 죽고 새 생명을 받아 부활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세례는 형식이므로 세례 받은 사람들이 모두 거듭나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의 의미를 안다면 죄악된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형식에 따라 세례를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이 믿어지며 천국을 소망하게 되고 자신의 구원이 믿어집니다. 성령께 의지하면 죄가 사망으로 이끌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성도들이 죄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도가 온전히 서지 못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신다고 해도 불순종하게 되므로 먼저 개인의 신앙을 반석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사망으로 이끌지 못하도록 성도들을 도와주시겠지만 성도들도 죄에 저항할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성도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린다면 성령의 뜻을 거스른 죄이므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 죄는 원죄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도덕적인 죄를 계속해서 짓는다면 결국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진리를 부인하게 되어 성령을 거역하는 죄까지 짓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은 30냥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과 어려운 환경을 함께 견디며 동역 했던 데마가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택한 것을 보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처럼 죄도 성장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구원과 상관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면 새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부활의 삶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6장 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연합한’이라는 헬라어는 ‘함께 심겨진’ 또는 ‘함께 자라난’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도가 연합했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심겨졌고 그리스도로 인해 자랐기 때문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많은 과실을 맺는다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는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실 때 예수님의 죽음안에서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 역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완전한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완전한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믿으며 부활과 재림을 믿는 성도이기에 진리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그리스도처럼 완벽한 삶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신에 남아 있는 죄의 성향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죄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내하고 성화되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성도들은 이제 죄를 지을 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머리로 아는 지식으로 이겨내려고 해도 죄를 피하기 힘듭니다. 성도이기에 죄가 없는 자로 의인으로 살아야 하지만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는 세상에서 사탄의 공격을 받아야 하고 육신의 정욕과 욕심을 제어해야 하는 힘든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겪는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단절시켜 주셨는데도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본성이 늘 죄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아담이 쉽게 죄를 지은 것처럼 옛 습관과 잘못된 삶의 방식이 몸에 남아 있기에 새로운 습관과 방식으로 삶을 바꾸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흙으로 만든 벽돌을 잘 말리면 망치로 쳐도 깨지지 않지만 그 벽돌을 물에 담그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녹아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하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 만큼 성령의 충만함으로 단단해집니다. 하지만, 세상의 물에 다시 몸을 담그고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성도의 모습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결국 죄를 짓게 될 것이며 사탄의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골로새서 3장 1~3절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을 이길 방법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은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 보좌에 앉아 계시므로 심판주가 되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가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과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지면 고난을 능히 이겨낼 수 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인생에서 만나는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악한 자와 악한 영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있으므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죽였고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것 조차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므로 사탄은 도리어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도록 도와드린 도구였습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사탄은 어떤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여러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서 영광을 받고 계시므로 믿음의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안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안에 감추어진 성도들을 사탄은 공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훗날 하나님의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들이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을 갖는다면 사탄의 승리를 돕는 것과 같습니다. 미천했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을 믿고 있다면 죄를 지으려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우리가 죄를 원하는 지체를 이겨낸다면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단번에 죄를 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죄의 유혹을 담대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여러분이 유한한 세상을 바라본다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죄의 몸이 다시 살아나므로 인내하고 또 인내하면서 거룩한 성도로 살아내야 합니다. 홍해를 갈라서 바닷물을 벽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 인생에 걸림돌의 모든 것을 갈라서 구원의 방해가 되지 못하도록 도와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승리의 삶을 살아 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