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7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바로 왕에게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여쭈어보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8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직접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많은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왕자로 살면서 애굽의 문화와 풍습을 익히게 하셨고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목동으로 살면서 세상과 사람들의 관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왕자라는 자리에서 자기의 힘만 믿고 애굽인을 살해했던 모세가 그 자리를 빼앗겼을 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지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왕이 두려워 광야로 도망친 모세는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왕자와 목동으로 살게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과 생명을 아끼는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양을 데리고 다녔던 길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한 길이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시간과 환경은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훈련을 받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애굽으로 가서 출애굽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받은 훈련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험으로 강하고 잔인한 바로를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바로에게 내 백성을 내보내라고 호통을 치는 모세의 견고한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도의 믿음을 통해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말씀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을 보면 기쁨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이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을 보시면 그 성도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살필 것입니다.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방법은 그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결코 유대인들의 자랑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며, 율법으로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대인은 자신들이 특별히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과 멀어지는 불행을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신 것이며 율법을 통해 더 정상적이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기 위해서 더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1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율법을 행위로 지키며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았던 그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여 년 동안 고통을 당하는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고 도리어 ‘이방인들은 지옥 불의 땔감’이라는 말을 하며 스스로 우월한 민족임을 자랑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받았고 선민이므로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손의 자격으로 구원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을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복된 민족이라는 것을 과시했을 뿐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했던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에 안주했고 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을 자랑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데까지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2장 19~20절
19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바울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유대인을 책망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면 더 많이 돌려 드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것만 자랑하면서 죄를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할 정도로 이방인들을 하찮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다면 자기들이 먼저 그 말씀대로 살면서 이방인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데 이방인을 맹인과 어둠에 있는 자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유대인이 생각하기를 자기들은 율법의 지식과 진리를 가졌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방인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큰 은혜를 받자 자기 교만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받은 은혜가 크면 더 잘해야 하는데 이렇게 교만에 빠지는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일컬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고 하시며 만일 맹인이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두려운 말씀을 듣고도 그들은 자신이 교사이며 선생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잘 알아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는 나이가 많으니까, 나는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선생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도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학교 교사도 자신이 정말 높은 지식을 확실하게 알고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목회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정말 자신이 거룩한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는지, 말씀대로 살면서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교사와 목회자이기 때문에 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책망받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것인지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가르침은 그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이며 자신이 가르친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읽는 유대인을 향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한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로마서 2:21~23]
바울이 로마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책망할 때는 동조했던 유대인들이 너희들도 그들과 다를 것 없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율법을 가진 자신들이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당연히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울이 너희도 같은 죄를 짓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분노한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지적한 것은 십계명인데 도둑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것을 탐했습니다. 이방여사제들이 음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비방했던 랍비들이 성적 범죄를 일으킨 예가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랍비들이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자신들은 간음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너희들은 남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지금도 성적으로 타락한 목회자가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직업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죄의 대가는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잊고 자신의 쾌락만 생각하기 때문에 악한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음란과 우상숭배가 만연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고 그들은 회복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도 지금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유대인에게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고 책망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이없게도 잘 만들어진 우상을 도둑질해서 팔았다고 합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우상을 훔쳐서 판 것입니다. 이들은 도둑질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죄를 지은 것과 같습니다.
신명기 7장 25절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우상에 정성껏 금과 은을 입힌 것을 훔쳐서 그 금과 은을 벗겨 취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죄를 짓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미워하시므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함께 진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한심하게도 우상 숭배자들과 동일하다고 책망하셨던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런 이중적인 삶은 하나님의 징계를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눈으로 보는 것에 약하기 때문에 순간 이런 죄 된 마음을 가질 수 있기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성적인 유혹을 받으면 극복하기 힘듭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물질의 유혹을 받으면 극복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런 강한 욕망을 인정하고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강한 유혹을 자주 받는 사람들은 이런 감정은 성령께 의지한 믿음의 결단으로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간적인 욕망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 죄를 회개해야 하는 고통이 더 오래갈 것이므로 성령께 의지하며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로마서 2장 24~25절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율법을 지킨다는 사람들이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신전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율법을 범하는 죄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입니다. 이런 죄를 짓고도 로마교회에서 율법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가르친다면 이방인들은 그들을 책망하기보다 그런 사람들을 선민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모욕할 것입니다. 처음에 이방인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율법을 막힘없이 외우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보면서 저런 사람들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을 도리어 조롱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도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했지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그들의 위선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고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입으로는 거룩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삶은 가증스럽게 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이중적인 행동에 교회를 멀리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들이 도리어 이방인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며 하나님은 마음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랑하지 않고 율법을 받는 특권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이방인처럼 적게 드린다고 해도 책망을 덜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민족이기에 더 큰 진노를 받게 됩니다. 우리도, 성경을 많이 배우면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면 알고 있는 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언행이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온전히 살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교회, 목회자, 성도들을 조롱하기보다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조롱하며 비웃을 것입니다. 순종하지 못한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을 비방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죄보다 성도들의 죄를 더 크게 책망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2장 25절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사도바울은 25~29절까지 유대인들의 긍지인 할례에 대해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구원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람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에게 내가 너를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게 할 것이며, 너에게서 민족들의 왕이 나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어 그들에게 가나안 온 땅을 줘서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증거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으므로 유대인에게 있어서 할례는 영원한 복을 받는 증표와 같은 것입니다. 할례를 행했다는 것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여 할례를 구원의 증표처럼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를 행했다고 해도 율법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그 할례는 무효가 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그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3절에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전하는 의무를 가졌다는 것이며 말씀에 순종할 때 교회 다니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 4절에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613가지]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인간의 힘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 가도록 하는 것이 율법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율법만 고집하는 사람은 율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할례를 행했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바울은 만약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않겠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뜻과 언약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믿음을 지켰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는 율법을 온전히 지킨 것입니다. 율법책에 기록된 문자만 믿고 자신은 율법을 다 행했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가 볼 때 그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과 동행하는 이방인이 도리어 율법을 지킨 성도입니다. 결국 율법이 요구하는 핵심이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과 할례를 받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사람 중에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세례를 받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과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 중에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물론, 교회에 나와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형식보다는 실제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형식에 매여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성령으로 변화된 삶을 보여드리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지금 교회들은 어떤 형식적인 예배와 형식적인 헌신과 형식적인 믿음을 보여줌으로 그것이 믿음이며 구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형식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처럼 정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닌 것처럼 형식적인 신앙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속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이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에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닌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희생을 아는 사람이고 성령께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입니다. 할례를 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회를 다닌다고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의무가 있으며 영화롭게 해 드릴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이 성령께서 주신 영적인 지혜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데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삶을 보시며 기뻐하시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목숨을 다해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과 그 나라를 다스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그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을 그리스도인답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새 사람으로 거듭났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특별히 보호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특별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어둠에 휩싸인 세상을 부러워하고 그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어두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혀줄 것이라고 믿고 계시기에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앞서 돕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부디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지 말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여 더 넓고 큰 은혜를 받아 아름다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