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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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니

로마서 2장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으므로 성도들은 힘을 합하여 온 세계가 안정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을 핍박하는 나라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이중으로 고통을 받는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부탁을 드립니다. 어두운 터널과 같은 이 고난은 곧 지나갈 것이므로 여러분이 들고 있는 믿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한 쪽이 기울면 다른 한 쪽이 올라가는 시소처럼 생각지도 못한 고난을 갑자기 만났지만 성도들의 신앙은 더욱 성숙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지 못하니까 게으름이 습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나쁜 습관은 영적인 파멸을 초래하므로 여러분 스스로 힘을 내어 하나님께 가까이 오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4장 21~24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물에 물을 뜨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리기를 주장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런 뒤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미워하며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투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리심산과 예루살렘이라는 예배의 장소를 두고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디서든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시며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약적 예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인식하고 그 뜻대로 살면서 드리는 영적 예배는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예배 드리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성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그 대상을 모른다면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시고 승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모든 계획을 성취 하시자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온전한 예배입니다. 교회에 자주 나올 수 없는 이런 시국에서는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각자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당에 나와서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예배 드려야 하지만 어두운 세상에서는 이보다 더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부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과 함께 정직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구원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은 차별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불러주시는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이제 사람들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천국의 문이라고 하셨고 그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므로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로마서 2장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환난과 곤고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각 사람의 행함에 따라 상급과 심판을 주시므로 사후에 받는 하나님의 상벌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사람들의 악한 행동입니다. 야고보가 말하길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면 좋은 자리에 앉히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면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발판]에 앉으라고 하는 것은 차별하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교회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지 못하므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고 세상의 소유로 사람들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목사와 장로가 하는 말은 성도들이 하는 말보다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자제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들은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겉옷을 벗지 못하고 교회에서 세상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겸손하셨던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지만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육신의 정결이 필요한데 그 이유는 욕심과 정욕과 혈기가 영적 성장을 막기 때문입니다. 게을러서 인내하지 못하고 욕심과 정욕과 혈기가 많으면 아무리 거룩하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습니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진리를 떠날 수도 있으므로 육신의 정결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말씀으로 인내하지 못하고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면 혈기나 분노를 참지 못하므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왜 인내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믿음으로 섬겨야 할 대상을 알아야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인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셨는데 생각없이 던지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방해하거나 혈기로 자신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거듭나기보다는 고난을 만났을 때 어쩌면 고난이 지나가기를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자 교회를 설립했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성령 충만으로 목회를 했다는 생각보다는 어려웠던 그 순간을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가난하고 육신이 연약했던 시절에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견뎌내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해서 충만해야만 더 깊은 은혜를 받았을 텐데 어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은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목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을 매년 10독을 넘게 읽었지만 설립 당시 사람을 가르칠 정도로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알고 있는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늘 두려웠습니다. 물질의 여유가 있었다면 조금은 편하게 교회를 운영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들 때였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고사했던 목회를 지금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신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두세 시간 밖에 잘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설교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좋았고 성경을 읽고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 있었습니다. 공장과 학교와 교회와 집을 다람쥐처럼 종종걸음으로 다니면서 시간을 분배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저에게 자세하게 알려주시는 것처럼 날마다 깨닫는 것이 너무 좋아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덕분에, 믹스커피를 하루에 열 잔 가까이 마시며 살이 10kg이상 쪘지만 그것 역시 제 상급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시간에 맞춰 일주일에 성경공부만 열 번 이상 하였고 식사를 하지 못하고 교회로 달려오는 성도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했기에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기쁘고 즐거웠던 그 시간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저같이 여리고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목회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성경 말씀을 성도들이 알아 듣기 쉽게 풀어내지 못할까봐 두렵고 성도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할까 봐 늘 두렵습니다. 20년 동안 설교를 하면서도 매주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한 설교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목회 중에 가장 잘 전하고 싶었던 로마서를 강해할 정도로 이론과 신앙이 잘 정돈된 성도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도들이 기다려주었기에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들도 말씀으로 잘 성장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 참 열심히 달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레시피가 없어도 음식을 만들어내는 어머니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목회하면서 성도들을 잘못 인도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고 결정하기 어려운 일을 실제로 만나서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법으로 정하신 테두리안에서 성도들의 영육 간의 삶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목회는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정직하게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므로 그 책임감은 무거운 쇠덩이를 목에 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를 이해하는 것은 거창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제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나서야 성도들을 진심으로 품게 되었습니다. 그저 모두 서 있는 위치가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다르며 배움이 다르고 눈 높이가 달랐을 뿐인데 이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성도를 하나님 앞에 모두 세워야만 한다는 생각에 긴장했는데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열심으로 교회를 이끌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상처도 입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그 상처를 혼자 치유해야 하기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목회자가 교회와 성도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때 뒤따라 가는 것이 목회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훈을 잊었기 때문에 힘겨웠던 것입니다. 목회는 성도의 수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어려운 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목회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눈 높이가 다른 전능자이며 우리는 그 분의 지혜를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우리들을 언제나 동일한 모습으로 만나 주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이 사랑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에 감사해야만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여러분도 인생을 돌아보면 편하게 살아왔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분이셨다면 우리는 더 부끄러운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상대를 품어 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한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품어 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 생명의 자리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는 지금 더 베풀지 못한 것과 마음의 한 자리를 더 크게 내어 주지 못한 것을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흉내내기도 힘든 사랑이므로 여러분은 그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알려주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돌리기도 합니다. 자신은 뛰어난 사람인데 환경과 사람과 건강 때문에 더 성장하지 못했다고 불평만 하다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부족해서 결정을 잘못하여 지금 어려움을 당한 것이라고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탓하든 상대방을 탓하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모든 시간이 바로 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이 순간도 불평하는 마음도 결국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 때문입니다. 울면서 불평해도 달라지지 않고 혈기 내며 싸워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생에 믿음의 꽃을 달아주면서 위로한다면 욕심과 근심을 뛰어넘는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데 내 자신이 나를 외모로 판단한다면 그것은 너무 불행한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으로 부요 하게 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차별하지 않는데 내가 나를 차별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차별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법을 정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했지만 사람에 따라 딱딱한 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부드러운 것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세상은 규칙을 정해 놓고 제일 먼저 통과한 사람을 우승자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줍니다. 사람들은 모두 우승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앞서서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빨리 뛰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에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축복의 열매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뛰어난 선수를 가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규칙이지만 하나님께선 모든 성도들이 결승점을 통과해서 우승자가 될 수 있도록 각 사람에게 맞는 출발선을 정해 주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완주할 수 있도록 출발선이 다른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결승선앞에서 10m만 달릴 수 있도록 출발선이 가까이 그려져 있습니다. 믿음으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50m를, 믿음으로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100m를 뛰도록 정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는 모든 성도들이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며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은혜입니다. 다른 사람이 100m 달리는 것을 보면서 욕심껏 그 출발선에 같이 선다면 도중에 지쳐서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를 받고도 인생이 늘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출발선에 서지 않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금 잠시 여러분 마음에 가득차 있는 것들을 꺼내 보기 바랍니다. 혹시 타인보다 덜 가진 자신이 불행하다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으로 부요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탈선하지 않는다면 앞서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보다 앞서 달려가는 사람의 등을 보면서 초조한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출발선이 어디인지 찾아보기 바랍니다. 혹시 그 출발선에서 여러분이 너무 먼 곳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리에 서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뒤쳐져 있다면 욕심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맞춰 걸어가면 됩니다. 가다 보면 어느새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무 욕심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보고 걸어도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느끼며 즐거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넉넉한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리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 세상은 스스로 굴복할 것이며 그 능력과 권능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뛰어 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 꺼내 놓은 마음들 중에 행복한 마음, 감사한 마음, 자족하는 마음, 하늘의 소망만 다시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감정은 그 자리에 놓고 미련없이 일어나 진리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여러분은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달려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앞으로 얼마인지 모를 인생 길을 더 달려야 하지만 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해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니 괜찮고 하나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니 괜찮다고 여러분이 자신을 위로해 준다면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랑의 길로 달리면서 힘들 때마다 성령께 의지한다면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복된 것이며 여러분이 사랑하는 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온 여러분을 모두 축복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달릴 수 있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위하여 기도해주면서 변치 않는 동역자가 된다면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눈이 머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주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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