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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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

로마서 10장 10~21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서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것과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신 것은 바로 우리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계획하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아시는 예수님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수 있도록 지금도 일하시는 성령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사랑을 아는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이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변함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기에 성도에게는 부활이 그만큼 소중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랑이지만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갇힌 죄인들은 둘째 사망을 벗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구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기에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부르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주셨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 하나님 백성이라는 교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이 상상할 수 없는 크신 사랑이며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위해 조건없이 희생하신 것이므로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죄는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 아래 가두었으므로 사람이 사망과 사탄에게서 빠져나올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서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워 죄를 용서받게 하셨고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노력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자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멸하실 때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멸하시는 강력한 힘은 바로 부활입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을 유혹하여 사망에 가두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의 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모른 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의 성도들이 세상으로 나가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들만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전해서 다른 사람들도 성도로 살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성도가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으라고 소리쳐도 그 외침이 진리가 아니라면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3~14절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 것처럼 믿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외면한 채 세상만 보기 때문에 생명의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넘어 멀리 바라봐야만 희망과 소망 지혜와 명철 그리고 생명의 길이 보이는데 세상만 보기 때문에 근심과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국열차라는 영화에서 보면 세상이 극심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사람들은 CW-7이라는 인공 냉각제를 대량 살포해서 지구의 온도를 낮추려고 했지만 부작용으로 엄청난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추위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죽었지만 간신히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1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달리는 열차안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윌포드가 만든 기차는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차는 전 세계를 횡단하며 달렸는데 만약 기차가 멈춘다면 사람들은 죽게 될 것이므로 엔진을 장악한 사람이 절대자였습니다. 세상이 그러하듯 기차 앞쪽 칸은 호화로운 객실로 꾸며서 부자들이 살고 있었고 중간은 기차를 운행하는 직원이 있었으며 맨 뒤쪽 칸은 힘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죽도록 일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힘을 가진 자들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고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은 기차에서도 배신, 낙심, 질투, 폭력, 부를 향한 갈망과 절대권력이 있었습니다. 한정 된 공간안에서 물과 음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과 가난을 벗어나고자 권력자의 악행을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차가 멈추면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엔진을 성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죄로 인해 기차는 레일을 탈선했고 기차밖을 동경하던 두 아이가 설원을 걷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차밖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공포때문에 엔진을 가진 사람이 큰 힘을 가졌지만 엔진이 멈추자 도리어 가장 힘이 없는 두 사람이 바깥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종말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서도 인격이 온전하지 않은 권력자가 있었고 큰 부를 누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선한 자와 악한 자도 있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사람의 수를 조절하면서 죄책감도 없는 것을 보면서 작은 기차가 지금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성도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종말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그리스도인이 함께 타고 있다면 그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종말을 향해 달리는 세상에서 더 많은 권력과 물질을 갖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기차의 앞쪽을 차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 성도는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기차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는 언젠가 이 기차는 멈춘다는 사실과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좁고 빠른 기차에 함께 타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열차에서 내려야만 자유롭고 영원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아마도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시간이 없으니 기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기차에서 내리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차에서 내려야 살 수 있다는 복음은 너무 황당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사망에 빠진다는 것을 알기에 설득해야만 합니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고 험한 계곡을 지나는 상황에서도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편하게 사는 사람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누구에게나 행복과 슬픔과 근심이 있으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문제를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만 바뀔 뿐 기차바퀴처럼 똑같은 일들이 반복될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대사로 파견된 성도는 이렇게 쳇바퀴처럼 도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강조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비밀을 아는 성도들이 곧 종말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시간과 기회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여러분의 힘으로 바꿀 수 없으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한 사도 바울은 전도의 범위를 모든 사람으로 확장했는데 그 이유는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하면서 성도들이 나가서 전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요엘 2장 32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어야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하였고 복음을 듣기 위해서는 전하는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복음과 심판을 소리쳐 외쳤는데도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역시 그 누군가의 전도로 인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전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성도가 전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 창조의 역사와 그리스도 대속의 역사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알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속지 않도록 성경을 주셨고 누구든지 성경을 펴서 읽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도 읽지 않고 진리를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없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은혜를 주셨는데도 비진리를 전하는 사람에게 속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진리를 벗어난 신앙은 거짓이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가시는 것은 바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진리를 아낌없이 나눠줘야 합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알고도 전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있어도 들을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실 것이며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실 것이므로 성도들은 두려움 없이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5절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전도자를 보내신 분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권위는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는 특정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종말이 있다는 사실과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진리와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빈민들이 탄 마지막 칸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면 그곳에서, 부유한 자들이 있는 앞칸을 맡기셨다면 그곳에서 온 마음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도는 전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어 전하면 구원의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12명만 데리고 3년 동안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온 세상과 권력자를 향해 큰 기적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면 사람들이 쉽게 믿었을텐데 왜 12명만 가르치셨을까요? 참된 믿음은 기복신앙과 달라서 서서히 변화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기적을 쫓게 하거나 과장된 말을 해서는 안되며 강압적으로 세뇌시켜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이단이 사용하는 방법인데 진리를 모르는 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가 없으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삶속에서 많은 경험을 통해 확신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의 양식을 매끼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의 양식도 한번에 채울 수 없으므로 영적 성숙함을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말로 사람들을 이끈다면 그들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위대하심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15절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한 것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이 고향으로 귀환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한 이사야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해방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일인지 유대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이 그 사건처럼 기쁜 소식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70년 동안 포로로 살았던 고통의 시간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사탄의 권세 아래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이 사람처럼 설레고 기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종말이 곧 닥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자신만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책망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6~17절

16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도는 다른 사람이 듣고 믿을 수 있도록 반드시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듣고 난 다음 선택 여부는 그들의 책임이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성도들을 부르셨고 믿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온 세계에 전해져야 하며 여러분의 전도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구원받은 영혼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진리를 전했지만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사야가 하나님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느냐고 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강퍅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도리어 핍박을 받았고 사도 바울도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핍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어쩌면 열차밖으로 던져지는 핍박과 수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차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므로 핍박을 받는 자체가 순교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난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줘야 합니다. 세상의 종말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성도들이 전도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복음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도 사망을 벗을 수 없었지만 그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전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바울은 자신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이 진리를 듣고 구원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8절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바울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복음을 들었다고 단정 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나는 듣지 못했다고 변명해도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도들이 전도하지 않는 것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하겠다는 전도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전도하지 못한 것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하지 못했고 혹은 누구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핑계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마도 영적으로 나약해졌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책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음으로 특별한 민족이 되었고 성막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했지만 행위를 믿음으로 선택하는 잘못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조롱했던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유대인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왜 구원하셨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10장 21절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종일 손을 벌려 그들을 안으려고 하셨지만 그들이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생각하며 구원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으며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른 것처럼 여러분을 부르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명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부탁하신 사명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 왕의 왕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인생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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