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른 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능 자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판단하시지만 사람은 자기 앞에 일어난 문제만 보고 대처하기 때문에 식견이나 사려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진리를 거절했기에 구원에서 멀어지는 우둔함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크게 승리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백성들에게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승리를 축하하듯 가뭄으로 고통받던 땅에 비가 내리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선지자를 모두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엘리야를 죽이려고 찾는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브엘세바에 이르러 사환은 그곳에 머물게 하고 혼자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거짓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당당했던 엘리야는 보이지 않고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도망 다니는 엘리야만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지쳐서 잠이 들었을 때 천사는 그에게 여러 번 와서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준 떡과 물을 먹자 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호렙산에 도착할 때까지 사십주야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사람의 능력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적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과 자신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이 현실이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어 보시는 여호와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은 유별나게 열심히 일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의 열심을 칭찬하기는 커녕 주의 언약을 버리고 제단을 헐고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본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줄 알았는데 이세벨과 하나가 되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교만이라는 함정입니다. 엘리야는 850명을 상대해서 승리하였고 가뭄에 단비를 내리게 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도와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엘리야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기적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과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열심만 본 것이며 그 열심이 인정받지 못하자 낙심한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엘리야처럼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합 왕 앞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바알과 아세라선지자 850명을 처단하고 기도를 통해 비를 내린 후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어 마차를 타고 달리는 아합보다 앞서서 달린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엘리야가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렸다면 믿음이 더 성장했을 텐데 엘리야는 자신이 베푼 기적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이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1~12절
1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이와 같은 기적은 엘리야가 자신은 여호와께 열심히 일했지만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과 제단을 헐고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상황에서 오직 자신만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말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계속해서 자신의 열심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세벨 역시 엘리야가 베푼 기적을 보고도 그를 죽이려고 찾는 것을 보면 엘리야와 이세벨의 행동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고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엘리야에게 내가 대신 그들을 심판하겠다는 진노의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에게 강한 바람으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며 지진을 보게 하셨고 지진 후에 불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엘리야가 원하는 대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은 현상만 보여주셨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엘리야는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보다 높은 차원에서 판단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감정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는지 엘리야에게 알려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거듭난 이성이 감정을 이기도록 훈련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감당해야 하는 엘리야가 하나님과 구원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표적이나 기적과 이적을 통해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즉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선지자가 세미한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열 가지 재앙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바로와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원망했던 이스라엘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엘리야처럼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신했지만 자신은 믿음을 지켰다는 그의 말은 하늘에서 불과 비를 내린 선지자라고 보기에는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세미한 말씀보다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판단할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할 지혜가 없는 엘리야가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워하고 불평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악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행한 기적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주셨지만 현상만 보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이제 자신만 남았으니 차라리 죽여 달라는 엘리야에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 19장 17-18절에 네가 세운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고, 네가 세운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너와 같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큰 일을 감당하는 엘리야가 믿음의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나도 죽여 달라고 한 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히 전능하신 하나님께 이만큼 사명을 감당했으면 된 것 아니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엘리야가 제가 이세벨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면 감당할 수 있다고 기도했다면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났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살아 남은 것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만 보는 엘리야에게 너는 혼자 남은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이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칠천 명의 사람을 내가 남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자기만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이 칠천 명이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은 엘리야는 하나님은 어느 시대이든 믿음의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세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멀리 보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면서도 세상을 두려워하고 근심을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한 시대를 감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 엘리야는 더 이상 불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시선이 바로 엘리야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안에서 구원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교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자신만 구원 받은 것처럼 교만하다면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보면 유대인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는 이스라엘인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베냐민 지파로서 순수한 유대인 혈통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율법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이므로 성도를 핍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인 자신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유대인인 열두명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신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를 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남은 자들을 통해 복음을 이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7절
그런 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유대인은 율법을 행위로 지켜내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할 본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행위로 믿음을 인정받으려고 한 그들의 신앙을 받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의 행위로 열심을 다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말씀과 상관없이 자신의 의를 위해 산 사람들은 우둔 해졌습니다. 우둔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부름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둔감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의 심령을 완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말씀을 듣지 못한 심령은 완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전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도 변화 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이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는 것은 여호와께서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들어도 변화 받지 못하고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가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면 엘리야처럼 교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실족하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받은 복을 자신이 이룬 것처럼 더 이상 감사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양식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사탄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으며 결국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말씀이 성도들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어야만 완악한 마음이 들 때마다 돌이킬 수 있고 선한 양심으로 빛과 어둠을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9~10절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시편 69편 21~24절
21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22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23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바울은 다윗의 기도인 시편 69편을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받는 저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편 69편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감당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자 힘든 마음을 기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왕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여러분도 시편 69편을 읽으며 느꼈던 것처럼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당하신 고통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셨다는 말씀처럼 다윗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자세히 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다윗은 어쩌면 자신의 고통을 기록했을 뿐인데 훗날 예수님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시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편 69편 4절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
다윗을 까닭없이 미워하고 공격한 사울 왕 때문에 그는 쉴 곳이 없었으며 공격하는 사람이 많아서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인데 사탄과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사망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 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으로 성경을 응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목마름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던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다윗은 온갖 수모를 다 견디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악한 자들의 조롱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인내와 사랑이 죄인들의 구원을 성취하시며 모든 성경을 응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의 기도를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들인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았지만 너무나 쉽게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해 달라고 한 것은 사람들의 육적인 관심사 즉 밥상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버린 그들의 선택이 멸망을 자초하는 불행의 덫이 되고 올무가 되어 저주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이 세상을 쫓으며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바로 사망의 덫이며 올무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세상을 저주 할 필요도 없는 것은 사람이 본성대로 살면 그 자체로 사망의 덫과 올무에 걸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받는 복과 세상의 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데 성도는 그 성공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성공은 덫이나 올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세상에서 성공하면 늘 동일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지 않고 세상과 점점 가까워지므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우둔한 자가 됩니다. 엘리야는 세상사람이 볼 때 분명히 큰 기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기가 결정해서 열심히 일한 것처럼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엘리야가 알았다면 자신처럼 연약한 자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말씀을 알게 하고 헌신하도록 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을 것이며 더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자신도 우둔한 자였으며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가진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을 베풀 수 있었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믿음으로 남은 자들의 도움을 받게 하셨을 것이며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처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남은 자들의 헌신과 충성을 보게 하시며 힘을 얻게 하셨을 것입니다. 부족한 자신을 보지 못하면 엘리야처럼 죽여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만난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복음으로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영의 양식을 나누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거든 죄인중의 괴수였던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은 은혜라고 자랑하며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바로 나라고 고백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죽도록 헌신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분을 결코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남은 자가 될 때 여러분이 전한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