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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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장 1~23절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에게 천사가 와서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초청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사람들을 불러서 천사의 말을 전하며 욥바로 가서 베드로를 집으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는데 환상이 열리며 하늘에서 보자기처럼 생긴 그릇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율법이 금지하는 것들이 가득한 것을 보며 베드로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지키며 살아온 베드로는 너무 놀라서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결코 먹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후 세번 동일하게 보여주신 다음 그릇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의아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대를 받고 그 저의를 의심하자 성령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을 내가 보냈으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진리가 주는 자유를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옛 습관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어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베드로는 아직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13절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 사는 이방인 성도들과 식탁에 둘러 앉아 교제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서 할례 받은 유대인들이 오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이 잘못 된 것처럼 당황하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베드로가 자리를 뜨자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들도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할례자들이 두려워서 자리를 떠난 것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이므로 사도 바울은 베드로의 행동을 크게 책망했습니다. 복음을 영접한 이방인과 개종한 유대인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보여준 베드로의 행동은 사도로서 영적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잘못이기 때문에 바울에게 책망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사도로서 덕이 되지는 않지만 이런 행동이 복음을 방해한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볼 때 충분히 시험들 수 있는 잘못이며 이런 작은 실수로 인해 교회가 분열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3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14장에서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일은 믿음이 성장하면 모두 해결될 일이므로 개인적인 견해를 두고 서로 비판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과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인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 대조되는 사소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은 제사와 절기와 날을 지키며 엄격한 율법주의를 고수했던 버릇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가려 먹었습니다. 법을 지키는 유대인은 형식적인 것만 버리면 빨리 성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이방인은 자유롭기는 했지만 법을 지키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영접했지만 형식에 따라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이전 관습을 고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특정 음식에 구속당할 이유가 없다고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율법과 상관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절기와 특정 음식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의 습관이 다른 두 그룹이 충돌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 누가 옳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는 말씀을 깨닫게 되면 충분히 이해가 되며 구원에 관한 문제가 아니므로 서로 비판하지 말고 그리스도만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 제도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다 처리할 수 없었던 그들은 시장에서 판매하였고 사람들은 그 고기를 사서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문제로 의견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린 고기만 먹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음식이나 절기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그림자처럼 잠깐 허락되었던 규례이므로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부활하셨는데 지금 낡은 관습에 매여 있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형식을 주장하는 이들을 중재해야 하는 바울의 신앙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갈5;1] 이렇게 말한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너희는 하나님께서 받으신 거룩한 성도이므로 서로 경멸하고 수치를 주지 말고 사랑으로 품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도 다른 교회처럼 행사를 하지 않거나 형식이 다르면 불평하는데 진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분쟁하는 것은 가치 없는 행동입니다. 저는 20년 동안 오직 성경말씀만 가르치면서 감정적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 같아 염려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을 보면서 그동안 저의 목회방침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식때문에 교회를 분열시키기 보다는 형제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신앙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으라고 한 것은 포용하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영접한 후에 성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비웃고 얕보기 보다는 사랑으로 품어주며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성숙한 믿음을 가질 때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는 지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 돕는다면 교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숙한 자나 연약한 자나 서로 이해하면서 상대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준다면 악한 영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5절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이들은 서로 안식일과 주의 날에 관한 견해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던 습관이 있기 때문에 안식일과 절기가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허전했을 것입니다. 피의 제사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지 않는 자신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신앙생활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구원을 큰 틀에서 보고 있는 바울에게는 형식을 버리지 못한 유대인이나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이방인이나 모두 귀한 성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신 사역을 큰 틀에서 보면 교회안에 있는 그들의 고민은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안에서는 어떤 날과 달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날이 소중하기 때문에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신앙의 양심에 따라 각자 소신대로 결정하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절기를 형식적으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의미만 새기고 간단하게 진행하거나 각자 선택해서 예배를 드렸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신앙이 더 성장하면 이런 일들이 구원과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비판보다는 선한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자신의 신앙 방식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까지 배운 형식과 다르면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옳고 그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런 사람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말씀과 상관없는 의견을 고집했을 때 얻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다니던 교회는 절기를 경건하게 지켰고 한 날을 정해서 금식했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불평한다면 되묻겠는데 그런 형식이 예수 그리스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지키고 싶으면 조용히 혼자 지키면 되는데 본인은 왜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절기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절기와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가 되지 못하므로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으면 하면 되고 좀 더 자유롭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절기 그리고 시장에 나온 고기 먹는 것을 가지고 다투기보다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는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6~8절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말씀이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주를 위하여 판단하고 주를 위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상대가 거슬린다고 해도 주를 사랑하면 주를 위해서 인내할 수 있으며 형제를 품어줄 수 있고 연약한 형제를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고 죽는 것까지 모두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형제를 비판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주를 위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를 위해서 죽고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것인 형제를 우리가 감히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인내하신 것처럼 빚을 갚는 마음으로 형제를 품어주는 인내를 보인다면 교회는 영적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 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를 위해 사는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형제들을 판단하고 업신여기고 의견을 고집할 육신이 없습니다. 성령을 방해하는 육이 없으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대로 살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자신을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10~12절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바울은 참으로 두려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별 문제 아닌 것을 가지고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사람들이 형제를 업신여기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복음과 상관없는 문제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세상에서 자기가 했던 행동과 말들에 대해 직접 해명해야 합니다. 형제를 왜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는지 말씀을 배우고도 왜 돌이키지 않았는지 응답을 받고도 왜 헌신하지 않았는지 직접 고해야 합니다. 심판대는 다른 사람의 죄를 일러바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간속에서 판단과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죄를 보는 자리입니다. 왜 이런 판단과 결정을 했는지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지만 변명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너는 그 때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힘이 들었지만 사랑을 베풀었고 화가 났지만 인내했으며 미워했지만 도와주었다고 말씀드려야 착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때 할 말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제가 부딪칠 것이나 넘어질 것이 없도록 치워주면서 그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가 근심하지 않도록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음식과 날과 달의 문제는 너무 하찮은 것이라고 위로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갖는다면 교회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으며 말씀에 집중하는 성도들은 더 큰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18절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것이 모두 자연스럽게 채워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한 수단이므로 성도들은 복음과 상관없는 이런 논쟁으로 교회를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논쟁을 피할 때 성도들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세상의 하찮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참 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는 자가 되어 영원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피차 권면하고 덕을 세운다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20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므로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만물을 악한 사람들이 본질을 흐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므로 성도들의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알고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꺼림칙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들면 죄의식을 갖게 되고 실족할 수도 있으므로 거리낌이 있다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서 고린도전서 8장 12-13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2~13절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진리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씀을 계속 가르치면서 기다린다면 이런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므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바울은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지만 자기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실족하는 형제가 있다면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품는다면 먹고 마시는 일로 다투지 않을 것이며 시험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옳더라도 상대방의 신앙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면 오히려 그런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들의 신앙을 도와 주실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면 선한 양심과 참 진리와 영적 능력으로 인내하면서 연약한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려 주신 것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인내한다면 교회는 교회대로 든든히 서 갈 것이며 성도들은 하나로 화합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성숙한 성도가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성도를 비판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본이 되는 신앙을 보여주면서 사명을 묵묵히 감당한다면 칭찬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험에 들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도 하고 남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사랑으로 기다려주면 그 성도는 언젠가 시험을 이기고 불평하는 성도를 품으며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헌신하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로 충만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안에서 서로의 신앙을 키우는 거룩한 성도가 되어 믿음을 따라 진리의 길을 걷는 복된 성도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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