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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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로마서 11장 25~36절

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다 차기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을 잠시 보류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택함을 받았지만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방인의 정해진 수가 구원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은 우둔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방인은 특정한 기간 동안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인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신비 즉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지혜와 계획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방인이 구원 받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심을 유발하여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것입니다.

모든 때를 정하시고 계획대로 사람들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지혜로워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숨겨 놓으신 것을 과연 인간이 몇개나 찾아내어 사용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비밀 중에 과학자들이 단 한 개만 찾아도 우리는 그들을 위대한 발명가라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목동은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넓은 초원에서 양들이 풍성한 풀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땀 흘려 일을 합니다. 밤이 되면 양을 노리는 사나운 짐승들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양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 넣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나운 늑대에게 양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양들이 원하지 않아도 높은 울타리안에 몰아 넣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들 중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동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유를 속박 당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울타리를 넘어 도망치는 양도 있습니다. 양들을 보호해야 하는 목동은 순종하지 않는 양이라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이럴 때마다 울타리를 더 높게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목동의 말에 순종하는 양도 있는데 이런 양들은 목동의 말을 이해했다고 보기 보다는 아침이 되면 넓은 초원에 풀어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울타리밖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지만 주인을 믿은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양과 오직 자신만 아는 양의 행동은 다릅니다. 물론 양에게 울타리는 답답할 수도 있고 자유를 속박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목동을 따른다면 풀어줄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양에게 이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해 줄 수 없지만 목동이 강제로 가두는 것은 양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늘 울타리를 넘어 멀리 도망치는 양과 울타리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양을 살리는 방법은 울타리를 높이거나 끈으로 묶어 두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양이 사나운 짐승에게 해를 당할까 봐 목동이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양을 묶어 두는 것도 사랑입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양들을 보면 화도 나고 자기만 미움을 받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양이 목동의 마음을 안다면 지금 자신이 얼마나 목동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순종하는 우리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11장 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 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이방인이 먼저 충만한 수가 구원을 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우둔한 상태로 있는 것이 바로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완악함 때문에 복음의 울타리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울타리안으로 넣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울타리가 필요 없다고 하면서 진리의 울타리를 부수고 구원밖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진리밖으로 나가자 하나님과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악한 영으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동이 울타리 밖으로 나간 양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음밖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계십니다. 목동이 양들을 찾아 데리고 올 때까지 탈출한 양들은 목동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양들을 모두 울타리안에 넣고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선 때가 바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자신의 공으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교만 해졌기 때문에 사도 바울에게 책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6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지만 이 말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으로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개인의 믿음의 관계를 통해 완성됩니다. 어떤 교회에 소속되어 있든 기독교 국가의 국민이든 그 전체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70년의 포로생활을 끝냈을 때 이스라엘 사람 전체가 해방 된 것은 분명하지만 믿음으로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방인에게 복음이 먼저 전해진 것이 맞지만 이방인 전체가 복음을 영접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불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이룰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중간 역할을 하실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7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기억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을 마음판에 새기고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단호하게 버리실 것이고 그는 사탄이 좋아하는 심령이 되어 더럽고 냄새나는 어둠의 자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지은 백성을 버릴 수 없어서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4~35절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돌이키지 않는 사람을 끝없이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사랑이 넘치는 분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또 죄를 지을 것을 아시면서도 새언약을 주시는 것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사람이 얼마나 작은 그릇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떤 말씀을 하셔야 사람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긍휼하심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자하심을 보이셔도 준엄함을 보이셔도 오직 자신의 의만 보는 사람들을 향해 어떤 말씀도 하실 수 없어서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완악함을 알기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밖에는 하실 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목동이 아무리 너를 살리기 위해서 울타리에 넣는 것이라고 말해줘도 단어 몇 개 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양은 목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양과 깊은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양에게 할 수 있는 일은 호루라기를 불고 건초를 주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목동은 순종하는 양에게는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목동이 인도하는 대로 따른다면 고생하지 않아도 풍성하게 자란 풀을 먹일 수 있고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목동은 많은 계획이 있으므로 순종하기만 하면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쳐 두고 너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조상과 한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때가 되면 길을 잃은 양을 찾으러 떠나는 목동처럼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일하실 것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9절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녀로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거나 그들을 부르신 것을 결코 후회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는 분이므로 이방인들에게 주신 선물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돌아온다면 크게 기뻐하며 부요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성품을 가지셨고 계획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부족해도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우리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말라버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도 마르지 않는데 폭포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차고 넘치는 축복입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에 나는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죄에 가두려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회개한다면 그 은혜는 계속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녀로 입양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불안과 근심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자신의 영적인 그릇이 작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양을 보호하는 방법은 악한 짐승들로 부터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여러분이 만든 울타리는 얼마나 튼튼합니까? 사탄이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쓰러뜨리려고 하고 울타리안에 있는 귀한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면 사탄과 맞서 싸울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혹시 양들이 스스로 방어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자신의 구원과 가족과 교회와 나라는 여러분이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패배하지 않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며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무장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울타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 지켜 주셨는데 우리는 게을러서 기도하지 못하고 자존심 때문에 겸손하지 못하고 악한 짐승이 얼마나 잔인한지 몰라서 울타리를 같이 부수고 있다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은 사탄이 들어올 수 없도록 울타리가 안전합니까? 이 나라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는 말씀으로 잘 세워져 있습니까? 교회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면 참 자유를 빼앗길 것이고 부모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면 자녀들이 사탄의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어둠을 이기셨고 사탄의 계략을 말씀으로 물리치시며 어리석고 미련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라도 낸다면 사탄은 감히 덤비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1~32절

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유대인은 복음에 불순종하는 것을 통해 그들 역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한 사람들이며 긍휼하심이 없다면 참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를 믿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 이스라엘에 속해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는 것은 아담의 죄로 죄인이 된 사람들이 욕망을 위한 본성대로 살도록 그대로 두셨다는 것입니다. 죄인 줄 모르고 사는 인간의 본성위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지 않는다면 회개할 수 없으며 절대로 복음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려고 했지만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위대하신 계획을 알려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고 사랑이 깊으신 분인지 알려주고 싶었지만 자신조차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전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로마서 11장 33~36절

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다고 해도 우리의 이해 정도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다 안다면 그 분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뿐입니다. 바울이 깊도다 라고 탄식한 것은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모두 이해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도저히 말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왜 이런 환경으로 인도하셨는지 왜 이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그리고 왜 이 자리에 있게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삶속에서 하고 있는 역할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까? 만물의 창조자이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세계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보잘것없는 여러분의 인생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먼지만도 못한 인생에 왜 개입하셔서 인자와 준엄한 얼굴로 인내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욥과 세친구에게 자신은 주권적으로 통치하고 계신 전능하신 분이라는 말을 왜 굳이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계획을 말로 다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수준에 맞춰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 개입해서 긍휼하심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가르치려고 하셨고 하나님에게만 영광이 세세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아듣는 것 같고 조금이라도 돌이키는 것 같으면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부귀와 장수를 주셨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풍성하시고 그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만물의 시작과 끝인 하나님안에 있기를 원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홀로 권능과 지혜를 가지신 분이며 하늘과 땅을 지배하시는 분이며 천사와 사탄의 주인이시고 우리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절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어떤 죄이든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바랍니다.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면 빨리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사탄을 향해 이 사람은 내 자녀라고 말씀하시며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보호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드리고 사랑을 드리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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