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고 한 것은 하늘에 소망을 둔 거듭난 성도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광은 누리기를 원하지만 고난 받는 것은 거절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기복신앙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난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아담의 죄로 인해 사탄의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난이며 인생 중에 만난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의 의를 버리는 것이 고난입니다. 하나님 자녀를 사망으로 이끄는 악한 영과 싸우는 것과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 고난이지만 인내해야 합니다. 이렇게 온전하지 못한 죄인들이 그리스도로 인해 영광을 받았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성도는 고난을 감당할 것이며 훗날 지극히 크고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소망을 위해서 현재의 고난을 참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린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욥기 21장 22~27절
22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사탄이 온 세상을 돌아다닌 후 하나님 앞에 왔을 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하시며 자신 있게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신 있게 칭찬했던 욥이 왜 고난을 당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욥은 인생 중에는 고난도 편안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난은 육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일일 뿐이며 불행하게 산 사람도 편안하게 산 사람도 결국은 매 한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인생 중의 겪게 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줄 때까지 믿음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숙한 욥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은 분명 죄가 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탄이 반박하면서 욥이 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친구들 역시 욥의 깊은 신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숙한 욥은 인생 중에 겪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라면 당연히 고난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기34장에 보면 엘리후가 욥에게 말하길 그대는 하나님께 내가 죄를 지었으니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느냐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신이 고난을 받는 것은 분명 깨닫지 못한 죄가 있기 때문이므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분명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겠지만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살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이런 책망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반박이 어쩌면 교만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욥기 30장을 보면 자신이 사람의 도리를 다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는 고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풍족한 삶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비웃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더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서슴없이 얼굴에 침을 뱉고 대적들이 길을 에워싸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풍요롭게 산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는 고백을 친구들에게 한 것입니다. 욥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지 스스로를 책망하는 고백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은 조건없이 주신 은혜의 위대함을 알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한 욥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관해 선포하실 때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같이 육적인 사람들에게 영적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욥의 고백을 들은 엘리후는 당신은 무식하고 지혜롭지 않으므로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습니다. 죄가 있어서 저주를 받았다고 책망하는 친구들에게 욥은 그들을 반박하기 보다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하찮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셨는지 고난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욥기 28장을 보면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의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욥이 얼마나 깊은 신앙을 가졌는지 모두 전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바로 욥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는 차원입니다.
욥이 죄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가졌고 악을 떠난 명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거듭난 욥의 신앙을 이해할 수 없어서 회개하라고 했지만 욥을 믿어 주신 하나님은 욥의 처지를 조롱했던 친구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욥기 38장 1-4절
1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욥을 조롱했던 친구들의 무지함을 책망하시며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차원 높은 창조의 역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땅의 기초를 놓은 것도 자신이며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도 창조주인 자신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말씀을 육으로 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까지 하셨는지 욥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천지창조의 역사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함에 욥은 나는 비천 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귀로만 듣는 하나님이 아니라 눈으로 뵈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회개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욥기 42장 7절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욥의 신앙을 사탄에게 인정하셨던 하나님의 처음 말씀을 여러분이 잊지 않는다면 이 세 친구의 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욥기를 읽으면서 세 친구가 하는 말이 인간적이기 때문에 옳다는 생각을 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욥의 말이 옳은 것입니다. 육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영적인 삶으로 깊이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거듭난 욥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을 하실 때 그 놀라운 지혜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에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친구들의 죄를 위해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시며 욥을 그들 위에 세워 주셨고 믿음을 지켜낸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세계에 소망을 둔 욥은 부자로 살 때나 고난을 당할 때나 동일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지라도 장차 자신이 누리게 될 하나님의 영광을 알기에 그는 아내의 조롱도 친구들의 핍박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욥과 같은 신앙을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 될 수 없는 하찮은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소망을 위해서 오늘도 보이는 것을 버리고 영원한 영광을 위해 인내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1~22절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사람은 육신의 죽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면서 모든 자유가 박탈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사람과 함께 공허하고 썩어 없어지는 저주를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을 성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이렇게 훼손 된 것은 피조물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회복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이므로 피조물은 해방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로 지진과 가뭄 홍수와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은 마지막 날까지 지속적으로 파괴될 것입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이 무너져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욥처럼 믿어야 합니다. 지금 아무리 힘겹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처소가 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우리는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인내했습니다. 그가 세 친구의 조롱에도 지혜롭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하시고 보증하셨던 성령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긴 했지만 아직 육을 가지고 세상에 있기 때문에 완전한 구원이 아니므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믿음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5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골로새서 1장 26~27절
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소망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소망은 성령께서 보호해 주셔서 갖게 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그 놀라운 비밀을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드러내셨고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보이는 세상만 쫓는다면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며 변명할 기회조차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정하신 그 날에 오신다는 것을 성도들은 알기에 끝까지 인내하며 그 날을 기다리면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자녀에게 줄 성탄절 선물을 열심히 포장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이것은 성탄절에 줄 선물이기 때문에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선물을 뜯어보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성탄절에만 가질 수 있다는 어머니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인내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준비한 선물은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약속한 그 날까지 자기의 일을 하고 있으면 됩니다. 어머니는 한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선물은 자기가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아이는 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어머니에게 책망을 받기도 하며 숙제가 힘겨워 울기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아이가 힘든 일을 당한다고 선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동안 여러가지 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물을 갖고 싶은 마음에 인내하지 못하고 떼를 쓰는 아이도 있고 어머니가 반드시 줄 것을 알기에 다른 일을 열심히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확대해서 여러분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며 잘 인내한다면 구원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시겠다고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도 알고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성도들과 함께 영원히 누릴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때가 되기 전에 세상이 주는 고난과 죄의 짐으로 인해 힘겨워 울 때도 있고 심하게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연약함으로 신음하기도 하지만 성령께서 이런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탄절로 기한을 정하신 어머니는 아이에게 필요한 다른 선물을 주면서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날이 되면 구원의 선물을 주시겠지만 그때까지 잘 참고 견뎌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믿음을 도와 주십니다. 정하신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선물 받을 날짜를 정하기도 하고 자신이 선물의 주인공인 것처럼 사람을 속이기도 하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이단이며 거짓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가 받을 큰 선물이며 그분이 만 왕의 왕이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성령께서 연약함을 도와 준다는 것은 구원이 완성 될 때까지 진리를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기도 하고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고민과 아픔까지 탄식하며 대신 기도해 주시는데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걷기 힘겨웠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 험한 이 세상과 맞서서 싸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다는 것 악한 자와 악한 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명철을 주신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입니다.
로마서 8장 27절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시므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성령과 하나님의 보호를 함께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삼위 일체 하나님은 함께 활동하시며 성부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에 따라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그 한 가운데서 우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잠시 받는 고난으로 인해 투정할 수 없으며 보이는 세상을 위해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한다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도 알려주시고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성령을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더 잘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성도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우리들은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먼저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찬양하며 믿음으로 영적 싸움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성령께서는 더 큰 은혜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들도 힘들 때가 있고 감당하지 못할 고난을 당하며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욥이 당한 고난처럼 인생 중에 만날 수밖에 없는 고난이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영혼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서 빨리 달리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자리에 머물 때도 있겠지만 성령께서 진리를 알려주시며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돕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고난을 만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큰 울타리가 되어 주고 계신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을 위해서 하늘과 땅과 세상과 인생을 통해 모든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까?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령 충만한 성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거룩한 성도입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언제든지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악한 자들의 결정에 의해 고난을 당하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평화를 허락하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고통의 소식이 들려온다고 했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전쟁과 가뭄과 지진과 전염병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으므로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육로로 피난을 가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더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린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성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세상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지키며 하늘에 더 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하였으므로 성도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늘 변함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쫓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