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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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하리요

로마서 8장 28~39절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만납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의도치 않게 던진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하며 믿음으로 이겨내는 강인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성도의 인생도 세상 사람들의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과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께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영화롭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인내의 삶을 사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는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난보다 더 크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갖기 때문에 고난은 이미 고난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고 칭찬까지 받았던 다윗이 받은 고난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큰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다윗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의심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양을 치던 어린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골리앗에게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을 보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물 맷돌 5개 만으로 골리앗을 상대했습니다. 어린 다윗이 강하고 거대한 골리앗을 만난 것은 분명 고난이지만 그동안 양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물 맷돌을 던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는 골리앗을 짐승으로 생각하며 상대했습니다. 이런 결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신다는 믿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왔다고 하였습니다. 골리앗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소년이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이미 승자였습니다. 이스라엘군사들은 골리앗의 체격을 보고 주눅들었지만 다윗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골리앗이 눈앞에 있었지만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로마서 8장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를 실족 시킬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이 선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시기 때문에 사탄이 어떤 계략을 꾸며도 그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성도는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감당할 수 없었던 고난도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위험한 상황을 급하게 막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넘어지려는 아들을 급히 잡아 올린 아버지의 행동은 아들이 다칠까 봐 염려하는 사랑이지만 손목을 갑자기 잡힌 아들은 아버지가 손목을 아프게 했다는 생각만 합니다. 강하게 붙잡힌 손목이 우리에게는 고난일 수 있지만 자녀를 다치지 않게 하고 실패하지 않도록 막는 하나님의 사랑일 수 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의로운 성도를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것은 세상 마지막 날까지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들을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미리 정하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이며 의롭게 한 그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 역시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믿음을 지키다 보면 자신이 의롭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영적으로 겸손해지기 때문에 어떤 고난을 만난다고 해도 육신을 벗는 날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기적을 보기 위해서는 늘 준비하는 성도의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 규칙은 선수들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선수들은 다만 지금까지 훈련했던 실력을 발휘할 뿐입니다. 누구나 경기에 나갈 수는 있지만 우승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많은 훈련으로 실력을 연마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부르신 의로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지만 의롭고 영화로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고 말한 것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미리 결정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조건 없는 은혜이지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우리의 평상시 행동과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분명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마지막을 보면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예정된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인내한다면 분명 예정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그리스도를 믿고 마지막 날 천국에 도착한 사람이 예정된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박해와 기근은 충만한 성도를 실족 시킬 수 없지만 교만하고 감사하지 않는 나,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다윗을 골리앗 앞에 세웠고 사울의 칼로 위협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밧세바를 선택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선택했을 때 그는 스스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끊을 수 없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면 그 관계는 쉽게 끊어집니다.

로마서 8장 31절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세밀하게 도와 주시기 때문에 사탄이 아무리 공격해도 성도들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성도를 찾아다니는 사탄과 그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성도를 대적할 수 없으므로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리스도 사랑으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성도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셨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지금도 돕고 계시므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킨다면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에서 ‘아끼다’라는 이 단어는 창세기 22장 12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할 때 사용된 ‘아끼다’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주저없이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미 은사로 주셨다는 것을 아는 성도들은 굳건한 반석위에 선 것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토록 자신 있게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경험했기 때문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특별한 성도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담대하게 사탄의 공격을 물리친 경험을 해야 하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4~16절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으므로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고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고 계십니다.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시험도 받았고 십자가에서 피도 흘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성도를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주기도 하고 직접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받고도 하나님보다 세상과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받을 소원의 응답 시기를 정하는 교만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한 때에 응답을 받지 못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불평하며 세상으로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것은 첫사랑을 잊었기 때문이며 은혜가 얼마나 귀한 지 감사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잊는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이 상대할 수도 없고 바라볼 수도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아들까지 사망에 던지면서 우리를 살리셨는데 내가 원하는 세상을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것이 정상인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물론 육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소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지혜와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지혜를 가질 때 성령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믿음 생활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옳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도 건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모두 알고 계시므로 세상의 필요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믿음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어둠에 있던 자신을 건져 주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다는 것을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처럼 하나님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2~25절

22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사람들은 자기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환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운이 없어서, 돕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경쟁에서 졌다고 핑계를 댑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면 하나님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그토록 갖기를 원하던 환경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다 버렸습니다. 자신은 히브리인이고 이스라엘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더 일하기 위해서 좋은 환경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조건을 가졌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사랑을 정직하게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인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서 그 권리까지 포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위해서 세상을 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8~30절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복음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당하면서도 바울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핍박을 감당하지 못하고 성도들이 분쟁하고 타락할까 봐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보면 신앙을 바르게 세워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실족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타 들어가는 것 같이 힘들어 그들을 올바로 세우지 못한 자신의 연약함을 탓하였습니다. 자기 역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신앙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연약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연약한 자신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뤄낸 기적이라는 고백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넉넉히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확신이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우리는 바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5~36절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확고하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 그리고 위험과 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라는 단어는 로마시대에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던 ‘트리볼룸’이라는 타작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도리깨라고 할 수 있는데 깔아 놓은 곡식을 도리깨로 힘껏 내리치면 잘 마른 알곡들이 밖으로 튀어 나옵니다. 환난은 마치 도리깨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에 고난의 채찍을 힘껏 내리쳐서 믿음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곤고는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도와줄 사람도 해결할 방법도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성도는 믿음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핍박은 노골적인 박해를 말하고 기근은 굶주림이며 적신은 헐벗은 것을 말하는데 그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황무지로 쫓겨갔으므로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환난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들이 만약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몰랐다면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배신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환난을 당하는 것은 영원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를 누릴 하나님 백성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의롭게 되었으므로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악한 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믿음의 성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있는 바울처럼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므로 안전하다는 것을 믿어도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에 몸 담고 살았던 자신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복음 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고 전하며 연약한 성도들을 위로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만 왕의 왕 이신 예수그리스도,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그 어떤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여러분을 향한 사랑인 것처럼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죽음이라 할지라도 넉넉히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세상의 편안함과 힘을 버렸습니다. 이런 결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죽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은 생애를 복음을 전하는데 바쳤습니다. 모진 매를 맞고 굶고 바다에 빠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울타리가 되어 주시므로 작은 고난을 불평하지 않기 바랍니다. 사랑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조건없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한다면 하나님은 더욱 단단하게 여러분을 품어 주실 것입니다. 사탄도 악한 자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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