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라
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고 남은 자들을 통해 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언제 인자함을 보이고 언제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답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인자한 얼굴로 품어 주기도 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준엄한 심판을 내리며 사랑했던 사람은 물론 주신 사랑까지도 아낌없이 버리신 것입니다.
농부가 나무를 심고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키운 나뭇가지를 가차없이 자르고 다른 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농부의 마음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정성으로 키웠지만 참 감람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본 농부는 실한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여 주며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농부는 처음에 참 감람나무 묘목을 옥토에 심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1년 2년 3년 동안 잘 보살펴 주면 분명히 열매를 맺는 큰 나무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보면서 농부는 아깝더라도 잘라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참 감람나무를 잘 키워서 그 기름으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뭇가지는 말라버렸고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농부가 그 동안 쏟아 부었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돌 감람나무는 이방인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실 때 이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열방을 향해 복음을 선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완악함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짓밟을 정도로 악했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사랑과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받은 사랑은 물론 하나님의 마음까지 쓰레기처럼 취급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주신 은혜와 풍요로운 삶과 구원까지 모두 잘라내 버리셨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재물과 권력과 자랑할 만한 삶을 주셨다고 해도 그것이 영적인 열매와 상관이 없다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사람을 함께 버리십니다. 썩은 가지에 붙은 열매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참 감람나무 가지를 아낌없이 잘라버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돌 감람나무였던 우리를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시고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신 그 사랑에 감사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낌없이 자르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농부가 톱을 들고 가지를 자를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면서 살펴보고 있다면 그 가지는 이미 농부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므로 가지에게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농부는 그 가지를 잘 키우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이미 했기 때문에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자른다고 하여도 후회가 없습니다.
로마서 11장 11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열매 맺기를 바라며 수많은 세월을 기다리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반복해서 기회를 주시며 자녀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그 관계를 이스라엘이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율법을 행위로 지키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 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 구세주를 핍박하는 것을 보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이스라엘의 행위를 실족해서 넘어졌다고 하였는데 유대인이 실족한 것은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지 못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믿음이 없는 행위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행위는 가식입니다. 그리고 순종이 없는 행위는 거짓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를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열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의 열심이 아니라 믿음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나는 율법을 지키는 노력을 했기에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와 지금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사랑입니다. 인자한 모습으로 어리석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도 준엄한 얼굴로 원하는 대로 살지 말라고 고난의 채찍을 드시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력을 하신 것이라면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까지 노력할 필요가 없는 전능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며 준엄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의를 버리지 못하고 희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과 우리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에서 잘라 버리기로 결정하실 수도 있습니다. 몇 년을 키워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자르고 실한 돌 감람 나뭇가지를 접붙여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6절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에게 향하노라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바울이 전하려는 복음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할 부요와 특권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늘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자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 먼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옳다고 믿지만 그 결정이 유대인처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잘못된 판단과 결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여러분의 뜻이 다르다면 아무리 여러분의 판단이 옳은 것 같아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유대인이 복음을 쉽게 버린 이런 행동이 이방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은혜를 받았을 때 겸손한 믿음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복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거듭나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 완악함을 사용하여 이방인을 먼저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사용해서 이방인이 복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바울과 제자들은 이방인보다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받아주지 않자 구원의 방향이 이방인에게 향했습니다. 이방인을 먼저 구원하셨다는 소식은 유대인에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대로 복음은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졌지만 그들은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강퍅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하늘의 복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인간 취급 받지 못했던 이방인의 구원을 보고 시기심을 갖기를 바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구원에서 멀어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과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2절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유대인들이 행위로 믿음을 지키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들의 실패는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늘의 축복을 거절한 유대인의 완악함은 도리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먼저 받았다면 그들의 전도로 구원의 계획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 자연스럽게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겸손함을 보였다면 세상 마지막 날까지 그들은 영적인 풍요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족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교만에 빠진 동족을 보면서 바울의 마음은 아팠지만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었기에 유대인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25절에 ‘유대인의 완악함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던 바울은 그래서 이방인들이 더욱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완악함은 고쳐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실족했기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방인들은 유대인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고 교회에서 자신들의 수가 많게 되자 하나님을 잊고 교만해졌습니다. 이런 행동을 본 사도 바울은 비록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한 것은 맞지만 너희들이 구원을 먼저 받게 된 것은 너희를 통해 유대인들의 시기심을 유발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감사를 잊은 사람들과 첫 사랑을 잊은 사람들의 행동은 똑같습니다. 고난에서 건짐을 받을 때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과 앞선 사람들에게 감사하지만 시간이 흘러 은혜가 당연시 되면 모두 잊어버리고 유대인을 핍박하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것처럼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은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선민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인 것처럼 이방인들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도 바울의 희생으로 복음을 영접했다면 이방인들은 이제 그 사랑을 갚기 위해서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구원을 당연시하며 교만한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성도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5절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절에 나오는 ‘버리다’라는 말은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다는 뜻인 반면에 15절에 ‘버리다’는 잠시 제쳐 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버린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보류한 것입니다. 언젠가 이방인의 수가 차면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실 것이므로 이방인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로마서 11장 16절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 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일 먼저 익은 곡식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곡식은 거룩한 곡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떡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선 이스라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대신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지 않으셨고 뽑지 않은 뿌리처럼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뿌리를 깊이 내려 많은 열매 맺기를 원하셨고 그들의 전도로 모든 민족이 변화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자 돌 감람나무를 접붙임 하여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8~19절
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뿌리를 보존하셨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불신한 죄를 지었지만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뿌리 채 뽑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가지를 잘라버리고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을 살려 주셨는데도 이번엔 이방인들이 감사를 잊고 교만해졌습니다. 접붙임이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일부를 잘라서 연결하여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인위적인 재배 기술입니다. 이 때 건강한 가지를 붙이지 않으면 나무가 썩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잘라내는 것도 붙이는 것도 농부가 얼마나 고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이 누려야 할 축복이지만 그들이 은혜안에 거하지 않고 인간의 의를 의지하므로 잘려 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도 얼마든지 자기 의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과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우둔한지 모릅니다.
자기는 참 감람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할 때 농부가 접붙일 실한 가지를 가지고 와서 열매 맺지 못하고 양분만 소비하는 교만한 가지를 잘라낸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농부는 조금 약해 보여도 열매가 달려 있는 가지는 잘라내지 않습니다. 언젠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가지를 자를 수 있느냐고 말하겠지만 이 열매를 위해서 아들을 버리셨기 때문에 가지를 자르는 것을 망설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20-21절에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 즉 너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인 돌 감람나무가 교만한 마음을 품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원가지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돌 감람나무 가지를 잘라 내실 때 망설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하나님의 택하심에 관해, 복음에 관해 아무 공로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잠시 제쳐 둔 이스라엘을 보면서 교만해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 덕분에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잊고 교만하면 하나님께서는 원가지를 자른 것처럼 그들과의 관계도 끊어 버릴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 은혜를 잊은 사람, 감사를 잊은 사람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만족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게 똑 같은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런 말과 행동은 하나님을 배반한 사탄이 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이방인이 아무런 조건없이 구원을 받기까지 이스라엘의 고난과 하나님의 끝없는 인내와 예수님의 전적인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있었기에 이방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수많은 은혜를 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준엄한 얼굴을 만났을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에 넘어진 유대인들을 이방인을 위해서 제쳐 놓았습니다. 이방인이 헌신했기 때문에 선택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가지인 이스라엘도 아낌없이 잘라버린 하나님께서 교만한 이방인들이 참 감람나무의 양분을 허비하도록 그대로 두실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믿으며 교만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의 의를 세우는 사람들은 참 감람나무에 붙어 있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연약하지만 믿음으로 노력하는 성도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신 분이고 은혜를 잊고 불신앙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준엄하신 분입니다. 이방인들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교만하다면 원가지가 찍힌 것처럼 잘라버릴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사망에 던져진 죄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왜 교만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명의 주인이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 천사와 사탄의 주인이고 세상과 영원한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자신의 의를 버리지 못해서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감추고 준엄하심을 보인다면 벌레만도 못한 죄인의 생명을 거두실 것이고 영원한 어둠에 가두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간절히 부탁하는데 절대로 지혜 없는 어리석음과 감사가 없는 교만을 드러내지 않기 바랍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도 하나님의 참된 지식보다 많겠으며 재물이 많다고 해도 천지만물의 주인 이신 하나님보다 많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손을 드시면 돌이킬 방법도 기회도 없습니다. 죽을 일이 쌓여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께서 인자한 얼굴로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하셨다고 믿거든 교만과 죄 된 행동을 멈추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준엄하심은 조금도 타협이 없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준엄한 얼굴로 바꾸시게 한 것은 우리들의 잘못이며 준엄하신 얼굴을 인자하신 얼굴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겸손한 믿음 뿐입니다.
지금 많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이방인의 구원을 보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방인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기회를 주실 때 유대인들이 복음으로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돌 감람나무의 본성을 버리고 참 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기 위해 겸손하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한 백성으로 채우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