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율법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이 있어야만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런 지침을 주고 죄를 분별할 수 있는 가르침을 준다고 해도 자기 안에 많은 죄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자였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율법의 역할을 깨닫게 되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통해 살아난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대속을 아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부각시키며 인간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존재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로마서 7장 13절
그런 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외적인 부분은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바로 고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는 자기만 알고 얼마든지 숨기면서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죄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죄는 다른 사람이 절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결과가 좋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자기의 죄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거나 선한 양심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분명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과 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선과 악이 갈등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죄를 벗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자 계명으로 인해 자신의 죄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뱀은 그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금기사항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심을 갖도록 유혹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사탄이 성도들을 유혹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사망에 내어 주시며 죄를 용서하셨지만 사탄은 그 은혜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연약한 지체를 공격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담을 통해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한 길로 가기 위해서 노력은 하지만 악한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늘 죄의 유혹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도사린 죄와 싸우기 위해서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우리의 지체는 죄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늘 굴복하고 맙니다. 성도들은 선을 행하기도 하지만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버리지 못해서 세상과 타협도 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난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연약한 사람이라고 탄식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우리의 영적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날마다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는 것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잘못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선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악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011년에 소천하신 데이빗 윌커슨 목사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는 펜실베니아 서부지역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잡지에 실려 있는 기사를 읽었는데 갱단에 가입한 십대 아이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뉴욕 하이브리지공원에서 마이클 파머라는 열다섯 살 소아마비 소년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데이빗목사는 시간이 지나도 그 아이들이 계속해서 생각 났습니다. 마음속에서 네가 뉴욕으로 가서 그 아이들을 도와주라는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문득 내가 이렇게 T.V를 보는 이 시간 만큼 기도를 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T.V를 팔아버리고 하루에 2시간씩 기도를 하였습니다.
데이빗목사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강한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고 기도를 통해 삶이 변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T.V 보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상상할 수 없는 멋진 미래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는 기도로 결단을 했고 성도들의 도움으로 뉴욕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데이빗목사가 당한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계획대로 그를 사용하셨고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는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십대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술과 마약에 취해 있는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고 먹이고 재우는 진정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조롱과 구타를 당하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뉴욕 갱단들을 전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경험하면서 데이빗 목사는 뉴욕 타임스퀘어 교회를 세워 타락하고 방황하는 많은 아이들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아이들은 신학을 하기도 했고 자기들처럼 마약에 취해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전도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빗목사가 하나님께 인도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좀비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치아가 썩고 위와 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면역이 떨어지기도 했으며 마약으로 기관지염과 폐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마약은 계속 할수록 신경이 예민해지고 극도로 초조해지면서 상상과 환상과 환청으로 인해 정신은 피폐해지고 그 결과 정신이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증세를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이런 문제들이 닥칠 것을 알지만 그들은 멈출 수 없습니다. 반면에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결국 육의 강한 욕구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데이빗목사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갱단을 위해 일하는 목사를 이해하지 못해서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사역을 중단하는 아픔도 겪었고 굶기도 했으며 심한 조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로 인해 데이빗목사의 가족들은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모인 그웬 윌커슨여사는 충만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편의 사역을 응원했지만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료를 찾으면서 보니까 데이빗목사의 신앙을 모두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데이빗목사는 많은 예언을 했고 자신이 본 환상을 그대로 전했는데 학자들은 그가 한 예언들이 상당부분 틀렸다고 판단하면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를 비판하는 글을 보면서 데이빗목사가 오직 성경만 전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충만했고 예수님만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그를 향한 비판이 더 안타까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데이빗목사를 예화로 전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 조건없이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데이빗 목사의 죽음에 관해 전하려고 합니다.
데이빗목사는 2011년 4월 27일 아내를 태운 채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었는데 맞은 편 방향에서 달려오던 트렉터 트레일러와 충돌하여 현장에서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이빗목사가 왜 중앙선을 넘어갔는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월 27일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포스트를 읽어보면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글을 남겼습니다.
2011년 4월 27일 수요일,
제목 : 우리의 모든 방법이 실패할 때
우리의 모든 방법이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가장 기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우리의 모든 방법들이 실패할 때도 기도응답의 어떤 증거가 없어도 하늘에서 오는 소망을 가지고 믿는 사람은 복된 자들이다. 어떤 사람은 희망이 없고 어떤 사람은 희망의 끝에 다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기도하며 간절히 원했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야 말로 사탄의 군대가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엄청난 질문들로 여러분의 생각을 가득 채우면서 공격해 오는 때이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가지고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도했고 금식했고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불경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의 기도는 실패했어 믿음도 실패했어’ 이런 속삭임을 들은 여러분은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정말 계신 지 의문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방법은 수세기 동안 사탄의 주요한 전략이었다. 성도들은 지금도 사탄의 이런 공격을 받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분들에게 말씀드린다. 애통은 어둡고 괴로운 여러 밤들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어두움속에서 여러분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속삭임을 듣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단다. 너는 이것이 나의 계획의 모든 부분이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다. 이것이 너에게 실패가 아니란다. 굳게 붙들라. 너의 고통의 시간에 내가 너를 보듬어 안아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일에도 실패하지 않는 분이다. 그 분은 다만 선하심과 사랑이다. 우리의 모든 방법이 실패하였을 때 그 때는 주의 사랑이 승리하는 때이다. 죽기까지 굳게 붙들기 바란다.
여러분은 데이빗목사가 자기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남긴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혹시 속으로 아니 어떻게 목사가 교통사고로 죽을 수가 있지?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호해 주신다고 자기가 전해 놓고 이런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그가 혹시 죄를 지었다는 증거 아닐까? 세상에서 복을 받지 못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로마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답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2~24절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지 못한다면 사탄은 죄가 우리를 이길 수 있도록 더 강하게 유혹할 것이며 평생 헌신했던 목사님이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말씀을 알며 늘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매 순간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안다고 믿고 있겠지만 존경하던 목사가 교통사고로 죽는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믿음이 사라지면서 어둠이 엄습하는 것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자녀가 성공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이 착하게 산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 떳떳하고 잘못하는 것 같으면 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선과 악을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바로 악하다는 증거입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흔들림이 있다고 해서 믿음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선과 악이 믿음보다 먼저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본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악은 물론 선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역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었기 때문에 선과 악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할수록 함께 있는 악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겪을 때마다 자기 안에서 선과 악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스도를 믿고 도덕적으로 살고 있으니 선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착하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선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지금 선하게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죄를 짓고 있을 때 지금 불러 주시면 혹시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생각을 만약 여러분이 하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내겠다는 신앙을 갖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긍휼하심과 의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9~20절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처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의 고백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는 자기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겠느냐고 절규했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백성과 자신이 매 순간 악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고도 결국 죄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더럽고 부패했는지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데이빗목사처럼 사명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깊은 외로움을 감당한 사람 그리고 물질의 어려움이 있지만 믿음으로 살아내는 사람, 갱단과 마약중독자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늘 죽음에 직면해 있지만 끝까지 충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은 어떤 복을 받아야 한다는 복에 대한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은 저렇게 착한 사람을 왜 도와 주시지 않고 험한 일을 당하게 하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데이빗목사는 평생 외롭고 힘들고 처절하게 살았고 조금도 자신을 위해서 편안한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는데 그 인생을 마감하는 모습이 교통사고라면 여러분이 처음 드는 생각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심하게 하실까 하는 원망인지 아니면 그는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부르셨다는 생각인지 여러분의 대답을 듣기 원합니다.
데이빗목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보고 어리석은 생각을 할 것을 알기나 한 듯 사탄이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으로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이며 우연이 아니며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놀라운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보면서 시험에 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듯 그는 사고를 당하는 그 날 블로그에 위로의 글을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데이빗목사의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데이빗목사가 사정과 형편에 휘둘리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께 달려가는 신앙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죽음을 보면서 도리어 마음의 평안함을 느꼈는데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크게 웃으며 나그네의 삶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선지자들이 믿음을 지키다가 처절하게 순교하는 것은 아름답고 데이빗목사처럼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무슨 심판을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면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생을 마감하신 것처럼 마지막에 성도를 부르시는 순간이 어떤 때에 어떤 모습이든 그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안식을 주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데이빗목사는 수요예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더구나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면 사람들은 왜? 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며 하나님은 없다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처럼 하나님을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음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염려하듯 하나님은 어떤 일에도 실패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시험 들지 말라고 죽기까지 하나님만 붙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므로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에 굴복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망의 몸에 갇혀 하나님을 판단하는 곤고한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인생을 예수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살아내야만 선과 악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 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은 사망의 몸에 갇혀 곤고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죄에 굴복하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사망에 던지신 그리스도만이 절대자이며 구원자입니다. 그리스도 외에 그 누가 사탄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선 역시 자기 중심적이며 악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바울만큼 깊이 감사하지 못할지라도 이제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새로운 몸을 입었으므로 끝까지 싸워 이겨 내야 합니다. 믿음의 확신이 곧 성령의 역사이므로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쁜 뜻을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 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