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바울은 A.D 53년경에 수리아 안디옥에서 3차 선교여행을 떠난 후 약 5년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목회하였고, 그 후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서 대략 3개월 정도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기록 시기는 3차 선교 여행 말기인 A.D 57년 말 ~ 58년 초순경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땅끝으로 불렸던 서바나[스페인]에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로마를 전초 기지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방문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그는 로마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바른 교리와 구원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했는데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메시아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주신 구원자입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 때문에 고민하자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이며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을 알려주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아들을 버리시는 고통을 감내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훼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십자가의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계획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과 초림 예수에 대한 예언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랜 역사와 수많은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가 진정한 메시아라고 예언하신 것을 보면 구원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성자 하나님께서 보좌를 유보하시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은데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나귀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예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동물을 사고파는 시장에 노예들이 전시된 것을 보면 노예가 어느 정도의 취급을 받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며 그 뜻을 좇아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없는 것이 바로 노예의 처지입니다. 노예는 주인을 위해서 존재하므로 도망칠 곳이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이 죽음일지라도 순종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이런 성숙한 신앙을 보시고 아마도 그에게 더 큰 확신을 주기 위해서 셋째 하늘로 부르셨습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올바로 알고 일할 때 주인이 가진 권위와 권능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을 직접 보고 경험한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욥을 실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탄의 계략을 무너뜨리고 욥을 보호하신 것처럼 많은 유대인의 공격을 받는 사도 바울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영적 체험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경험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서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처럼 셋째 하늘과 은사를 경험하는 영적 체험도 있지만 성도들은 말씀대로 살면서 인내하고 용서하고 구제하고 헌신하는 경험도 필요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러 계시도 받았고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천국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죄를 사해 주지 못하는 율법을 위해 살던 신앙을 회개하였습니다. 자신의 주인이 위대한 만 왕의 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삶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율법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 사도로 부르심을 받자 모든 것을 믿음으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매진했으며 자신의 삶을 도구로 사용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문제들과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이 보일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유의지로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의로 헌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가 감당할 사명까지 생각하고 부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르셨을 것이므로 사도바울처럼 사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믿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명을 맡기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 역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충성과 회개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게으름과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성령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큰 능력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복음을 핍박하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유한한 세상에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도들과 성도들은 믿음으로 자신을 부인했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신앙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택정함을 입은 성도라고 당당하게 밝힌 것처럼 성도들도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은 성도라고 밝혀야 합니다. 택정함을 받은 성도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과 선지자와 사도들 그리고 믿음의 성도들이 본을 보여준 것처럼 여러분도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로마서 1장 3~4절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좋은 소식과 기쁜 소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사도바울이나 사도들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얻은 열매입니다. 복음을 통해 받는 구원은 하나님의 오랜 기다림과 예수님의 희생과 끊임없이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쉽게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계획하셨고 열심히 일하셨다는 증거는 하나님 앞에 펼쳐져 있는 생명책입니다. 택정함을 입은 성도들의 이름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대한 기록을 보면 모세가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할 때 생명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 달라고 했을 때 모세의 이름이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3절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은 생명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한 듯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것과 십자가를 지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믿고 말씀대로 삶을 산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것을 믿는 것이 곧 복음이며 구원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의 아들을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결의 영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바로 이 사실을 믿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 많은 일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가장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면서 신적인 존재입니다. 바울은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는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핍박과 죽임을 당하면서 완성하신 복음은 이스라엘보다 이방인에게 먼저 전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율법과 복음을 잘 이해하는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메시아가 인간적인 성품과 신적인 성품을 모두 가지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10절을 보면서 담긴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을 그대로 삶에 적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보좌를 유보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바울이 세상을 배설물로 버린 것은 예수님께서 온전히 순종하신 본을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죄인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죽는 순간까지 순종하시며 낮아지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나님의 이름 야훼와 세상 이름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야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을 것을 이미 기록하시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다니엘의 환상을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고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바울의 서신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므로 로마교회 성도들이 올바른 복음을 알고 믿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사망을 이긴 승리와 사탄의 완전한 패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화목제물이 되어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서신을 보낼 때 반드시 성경에 근거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하는 말씀은 성경에 근거하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도 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미리 주신 말씀과 지금 자신이 전하는 말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은 사도 바울처럼 반드시 말씀의 연속성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만약 자신이 깨달은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했다면 로마교회 성도들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므로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수의 탄생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성취되었으므로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가 예언했던 것처럼 초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전하는 바울은 그 어떤 핍박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이기 때문에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이방인의 사도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며 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므로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살아봐야 합니다.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좌우로 치우치는 신앙을 갖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고속도로로 가면 빠르고 안전합니다. 하지만 차들이 속도를 내기 때문에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염려했기 때문에 도로에 가드레일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이것은 운전자가 실수하면 큰 사고가 나기 때문에 보호하는 차원에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을 완벽하게 설치해도 운전이 미숙하거나 음주운전과 졸음운전으로 종종 사고를 내는 것을 봅니다. 잘 닦여진 고속도로로 똑바로 가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데 사람들은 예상 밖의 행동으로 생명을 잃습니다.
가드레일을 율법으로, 고속도로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겠습니다.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이곳을 벗어나면 죽는다는 경고입니다. 그럼에도 고속도로처럼 안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 가드레일인 율법을 행위로 지키기 위해서 사망에 이르는 사고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잘 닦여진 말씀의 도로로 운행합니다. 하지만,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됩니다. 가드레일이 운전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율법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와 안전하게 가도록 만드신 법입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어떤 행위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율법의 역할입니다. 자신은 죄를 용서할 힘이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께 가서 죄를 용서받으라고 끊임없이 알려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물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깨끗한 물로 씻지 않고 물감에 물을 더 많이 부어서 씻어보지만 더 더러워질 뿐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가서 죄를 씻으라고 알려주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율법을 행위로 지키며 죄를 용서받으려고 합니다. 결국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죄를 쉽게 설명하자면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도로에서는 아무 데서나 길을 건너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한 곳에 횡단보도를 그리면 그때부터는 횡단보도가 아닌 곳을 건너는 사람들은 모두 법을 어기는 것이므로 죄가 됩니다. 율법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자 그 법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숨을 다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죄인들은 율법을 전부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죄가 없는 의인이 대속해야 하므로 구원자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4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성막에서 속죄제를 위해 동물을 드리지만 그 방법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죄 사함 받기 위해서 동물을 드린다고 해도 계속 죄를 짓고 제물을 드려야 하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율법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깊은 진리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간절한 마음으로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서신서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방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사도들이 직접 가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로마교회 성도들이 우상숭배가 만연한 로마에서 강한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들에게 너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이만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소중한 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의 핵심은 어떤 유혹을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순종이며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 역시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신 진리의 길로 흔들림 없이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