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가르치는 것을 두고 유대인들이 비판하자 바울은 그들을 혹독하게 책망했습니다. 유대인이 율법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참 된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은 율법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면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맡기셨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께 직접 언약을 받은 백성입니다. 이 세상 어느 나라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신명기 4장 8절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사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 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출애굽기 19장 5~6절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렇게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잊고 세상을 탐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받았지만 거듭나지 못해서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았다면 바울이 죄를 지적했을 때 회개하고 돌이켜야 했지만 도리어 반감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철저한 율법주의자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어떤 논리를 가지고 반박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질문을 써 놓고 자신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 편지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예로 든다면 이런 것입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성품을 가졌고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선한 일에 힘썼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므로 아들을 충분히 잘 키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성장하면 틀림없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은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것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명성을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했고 재물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타락의 길로 빠졌습니다. 점점 세상으로 가는 아들을 크게 책망했지만 그는 돌이킬 생각이 없었고 잘못 된 친구들과 어울릴 뿐이었습니다. 아들이 타락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아버지는 선한 사람인데 네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충고했지만 아들은 그런 말 조차 듣기 싫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의 친구가 말하길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니 아버지의 말씀대로 선하게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비뚤어진 마음으로 ‘내가 죄를 지을수록 우리 아버지가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더 많은 죄를 짓겠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죄를 더 많이 지을수록 아버지의 선함이 드러나니까 좋은 일이 아니냐는 뜻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향한 마음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아들을 위한 돈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이 혜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민족에게 주시려던 은혜가 이방인에게 부어진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잘 성장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기를 바랬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 날부터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을 닫았다고는 하지만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3장 7~8절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책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잘못이 있다는 것과 같다는 식의 논리를 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 직접 율법을 받은 민족인데 율법에 순종하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부르신 것도 맞고 약속을 주신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 언약은 유대인들이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 법을 어긴 그들에게는 약속을 이행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대로 올바로 살 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돈을 줄수록 더 타락하는 아들에게 돈을 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이처럼 율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그들이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의롭고 선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자신들의 불순종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더 드러낼 수 있으니까 잘 된 일이 아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도둑이 말하길 내가 도둑질을 했기 때문에 경찰이 도둑을 잡는 사람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다면 내가 도둑질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정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나를 낳아 놓고 올바로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말을 하느냐고 대드는 아들이 아버지의 책망을 크게 받는 것이 마땅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신 것은 큰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이 되어 모든 민족이 죄사함 받도록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고 싶은 사랑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절하였고 신실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도저히 복음을 맡길 수 없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택하셔서 진리를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렸지만 아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증거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변함없고 일관된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음 계획대로 유대인 바울을 세워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고 이방인들의 회개를 통해 제사장의 역할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이며 율법을 받은 민족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면 그 약속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9~20절
19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불성실하거나 불신앙의 삶을 산다면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취소하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받았던 인간적인 축복과 영적인 축복이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신 분도 취하신 분도 모두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메시아의 예언까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메시아의 예언은 사람들과 함께 정하신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계획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죄로 인해 무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십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 즉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죄로 인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바울이 전하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아버지의 선한 일을 중단시킬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지 못합니다.
아들은 태어났을 때 우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는 아기를 달래며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아기에게 어떤 좋은 것을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자녀가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을 만난 세월 만큼 성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변화를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근심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생명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그 성도를 보시고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며 그에게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죄는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그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 죄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짓게 하신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것은 율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그들에게 주신 것은 인간은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으므로 그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9~10절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은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말씀을 거역한 아담은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곁에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아담에게 옷을 입히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자 자신의 육을 보게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영보다 육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들어 타락시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들은 사탄의 꾀임에 빠져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먹은 그들에게 선도 들어왔지만 악도 들어왔으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고 하와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며 평안과 안식을 누리도록 동산을 온갖 열매로 채워 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아담이 감사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생명과 에덴동산을 주셨다는 것도 잊고 사탄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건강과 물질과 가족까지 하나님께서 모두 주셨습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질 것이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위에 두고 교만해질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에게는 선과 악이 있는데 지금 여러분이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선이 더 크게 역사할 수도 있고 악이 더 크게 역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풍선 가운데를 쥐고 양쪽을 선과 악으로 나눈다면 선한 쪽이 커진다고 해서 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술과 마약과 도박과 혈기를 방심하면 악한 쪽이 커져버립니다. 선한 마음이 작아지고 악한 마음이 커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선한 양심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실족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1-12절에 보면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며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인내하면 함께 왕 노릇 할 것이고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제일 먼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욕심과 정욕과 본성이 죽지 않으니까 세상을 탐하게 되고 죄를 짓지 못하도록 돕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4절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유대인에게 온 세상이 하나로 결집되어 큰 능력을 갖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대항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인간의 의를 세우고 세상의 능력과 권세를 갖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킨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하찮은 존재인지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노하신 하나님께 왜 나에게 고난을 주시느냐고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늘 돌이키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핑계로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로마서 3장 5절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유대인들의 생각은 만일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의 선함과 상관이 없다면 우리가 굳이 신실 하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있다면 더 좋은 일인데 왜 책망을 받아야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도구이므로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낸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율법을 주셨으며, 아브람 후손을 축복하신다고 약속 해 놓고 이제 와서 죄를 지었다고 진노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돈을 함부로 사용하는 아들을 아버지가 책망하자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너를 위해서 아버지는 얼마든지 희생해도 좋다고 해 놓고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르기 때문에 받은 사랑의 무게만큼 교만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그 은혜만큼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성도로 성장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시편 116편 5~7절
5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신명기 7장 9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브람의 자손이기 때문에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하셨지만 죄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정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심판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잊고 모든 것을 자신들 중심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회개보다는 계속해서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영광이 되었다면 어떻게 죄인처럼 심판할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내하신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 그들과 유사한 죄를 짓는 사람들을 똑같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자신들은 선민이며 율법을 받은 자라는 교만을 벗지 못해서 죄에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8절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은 율법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유대인에게 율법은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바울이 폐지하려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율법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이 율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만 율법을 안다는 이기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므로 절대로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그리스도,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이미 선민사상에 빠져 있고 율법만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생각에 붙들린 유대인들은 바울이 어떤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으면 심판 받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것을 유대인들이 거부하자 9절을 보면 바울이 말하길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지금은 이방인의 사도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늘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과 믿음을 자세하게 전하면서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계속되는 변명에 바울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핑계를 대도 소용이 없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변명하며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냥 지나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해서 복음을 전했지만 회 칠한 무덤처럼 더럽혀진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기에 연약한 육신을 가졌지만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용기와 함께 사는 은혜를 입는다면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은혜롭고 의로우신 하나님 곁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귀한 성도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