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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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9장 20~33절

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30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8장에서 우리를 누가 정죄할 수 있으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느냐고 확신 있게 전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자녀이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대적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핍박을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지만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는 자신의 동족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근심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 해도 그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동족이 구원을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유대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신앙을 방해했던 형제와 친척을 떠나왔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동족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나테마’라고 하는데 이 말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그 성에 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 물건 하나까지도 남기지 말고 불태워 없애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바울은 마지막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심판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동족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토로한 것입니다.

로마서 9장 4~5절

4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권세를 가진 사람이 지목해서 세운 사람은 큰 힘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 주는 힘도 이렇게 큰 것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기득권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나주신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통해 오신다는 언약과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있는 예배의 특권과 죄사함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다지파 혈통으로 그리스도가 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득권을 주신 것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들의 혈통으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나아가 열방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도록 사명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고 죽이고 말았습니다. 지금 성도들도 하나님의 축복은 원하지만 사명을 감당하는 노력은 거절하므로 참 이스라엘로 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선택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를 보내기 위한 계획의 일환인데 어리석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계획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그들은 교회를 핍박했고 그리스도인의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바울은 자신의 형제와 골육의 친척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도 바울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헌신하지는 못해도 가족과 친지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1~13절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에서와 야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는데도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행위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악하게 산 것도 야곱이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행위와 상관없이 자궁 안에 있는 에서는 버림을 받았고 야곱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은 분명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을 가질 때 의롭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분명 믿음을 드러내는 선한 행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구원의 문제를 논할 때 믿음으로 산 성도는 구원을 받고 가룟 유다처럼 믿음으로 살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 있는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에서와 야곱을 조금 더 큰 틀에서 바라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의 자궁에 있는 에서와 야곱은 지금 동일한 조건에서 자라고 있으며 이삭을 아버지로 리브가를 어머니로 모시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이고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지만 에서는 살면서 야곱을 섬긴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말씀에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더구나 에서는 장자로서 야곱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하신 것을 보면 이것은 영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람의 본성대로 행하면 강퍅했던 바로처럼 행동할 것이며 사울 왕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선한 다윗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간음했던 다윗이 회개를 하고 살인했던 모세가 회개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악한 본성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죄를 회개하고 가던 길을 돌이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악한 본성을 돌이키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는 표현이 바로 미워한다고 한 것이며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도록 하며 악한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았기 때문인 것을 알고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은혜를 주지 않느냐고 창조주께 불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대로 일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불만을 갖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며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주권에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에서는 야곱을 끝까지 괴롭혔는데 그 괴롭힘이 야곱을 성장하게 했고 열 두 족장을 세우는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에서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악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악한 에서를 이용해서 야곱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에서는 부모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은혜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왜 에서에게 은혜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큰 자궁안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도 긍휼을 받은 자와 긍휼을 받지 못한 자들로 나뉘었는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나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긍휼하심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여러분은 알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배신은 열방을 구원하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 역시 자궁에서 나뉜 에서와 야곱처럼 복음을 듣고도 본성대로 사는 사람과 믿음으로 사는 성도로 나뉘었습니다. 자궁안에 있던 에서와 야곱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에돔과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과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로 나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7절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바로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여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바로를 특정한 때에 부르셔서 지위를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400년이 넘게 산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바로의 강퍅한 마음을 사용하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끝까지 돌이키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받지 못한 심령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수백 년 동안 역사하셨고 바로가 수없이 변덕을 부렸지만 인내하셨습니다. 그렇게 자녀를 위해 인내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불의 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완악한 마음과 불순종은 은혜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날마다 은혜를 받고 있는 여러분은 그 사랑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날마다 죄를 짓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끊임없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이 완악해지면서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로마서 9장 21~23절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여러분을 토기장이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손에 든 흙을 가지고 밖에서 눈비를 맞는 항아리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집안에 두는 그릇을 만들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만약 항아리가 나는 밖에 있는 것이 싫으니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그릇으로 만들어 달라고 불평한다고 도자기로 만들지 않습니다. 가족들의 일년 먹을 양식을 담을 항아리를 만들려고 작정했다면 깨지지 않는 좋은 항아리를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가족들을 위하는 토기장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항아리는 밖에 있는 것이 싫어서 끊임없이 불평을 했습니다. 하지만 토기장이는 일년 양식인 간장과 고추장과 된장을 담을 항아리를 만들면서 집안에서 사용하는 그릇 이상으로 아꼈습니다. 토기장이가 필요에 의해서 항아리를 만들었다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본분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창조주가 어떤 그릇으로 만드셨든 그 용도에 맞는 책임을 잘 감당한다면 그 성도는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흠 없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크기에 상관없이 은혜를 담고 있다면 사랑을 받는 귀한 그릇으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말씀처럼 사랑을 받고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하기 바랍니다.

로마서 9장 24~25절

24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하나님의 선택은 늘 주권적입니다.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세우셨고 그의 믿음과 혈통을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수 있도록 그의 인생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특권을 가진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인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이 거저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온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이며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26절에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다고 한 것은 이방인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한 이방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그 자리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5-26절에 호세아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방인을 택하신 사실을 호세아의 삶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전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하여 맏아들 ‘이스르엘’을 낳았습니다. 두 자녀를 더 낳았는데 그들의 이름은 ‘로루하마’와 ‘로암미’입니다. 그 이름은 ‘용서 받지 못하는 자’와 ‘내 백성이 아닌 자’란 뜻입니다. 호세아는 아내 고멜이 방탕한 여자이기 때문에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빗대어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을 백성들이 쉽게 깨닫도록 안타까운 일이지만 호세아의 인생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사랑하지 않은 자들을 사랑한 자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시며 이방인들이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로마서 9장 27~28절

27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궁안에 있던 에서와 야곱이 나뉜 것처럼 그들 중에 하나님의 곁에 남은 자만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야곱처럼 복음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안에서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선민이라는 이유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구원의 울타리를 벗어났으므로 심판을 통해 그들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남은 자들은 긍휼하심과 절대적인 보호 아래 더 큰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구원, 심판, 천국, 지옥이라는 단어가 현실감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수천년의 인간의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한 자궁에 있던 에서와 야곱이 나뉜 것처럼 떠난 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남은 자가 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남은 자들을 도와 주셨고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셨습니다.

로마서 9장 29절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들이 돌이키기를 기다리셨지만 쾌락에 물든 그들은 은혜를 버렸고 모두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의 완악함이 심판 받기에 충분하다는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씨를 남겨두신 것은 마지막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때문입니다.

현재 이방인들이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언젠가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는 날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세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종말이 가깝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났지만 에서와 야곱이 갈라진 것처럼 지금 여러분이 한 집에서,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믿음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 자궁안에 같이 있었다고 해도 구원은 남은 자만 받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금 남은 자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신실하게 믿음을 지켰던 성도들은 나팔소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지 말고 굳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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