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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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서 1장 23~32절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악한 행동을 하며 하나님을 거부한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진노 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만물에 분명하게 알게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주께서는 눈이 정결 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타락한 세상을 그대로 두고 보시는 것은 구원해야 할 영혼들이 있기 때문에 인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을 버리셨다는 증거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데도 징계하지 않고 그대로 두신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품을 대상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앞으로 나올 사람들을 위해서 참고 계십니다. 이렇게 기회를 주실 때 복음을 영접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나 죄로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은 빛을 거부하기 때문에 더욱 악한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행실은 더욱 부패해질 수밖에 없고 가증하므로 선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는 너무나 명백하고 분명하지만,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빛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예 빛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대치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 새롭도록 계속해서 신선한 물방울을 우리 마음에 떨어뜨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도록 끊임없이 역사하시므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 12장 46~48절

46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에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더 많이 준비해야 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책망조차 듣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더 낫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은 보호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주인의 뜻을 안다면 게으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운동선수와 일반인은 다릅니다. 메달을 따야 하는 선수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운동의 목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세상사람들과 다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목적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고 있기 때문에 삶이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의 삶은 세상과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바울은,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잘 살게 된 나라들이 육체의 쾌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감사를 잊고 서서히 우상을 섬기는 것은 사랑의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죄의식이 사라지고 육체의 정욕만 남게 되므로 악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결과인데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절대로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전하는 것은 이 개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향락 문화로 인해 성을 상품화 해서 팔고 사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인격이 말살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세상에서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졌던 고린도와 로마 그리고 각 지역에서는 남자가 첩을 두는 것을 당연한 일로 간주했으며 도리어 순결을 지키면 조롱했습니다. 지금도, 결혼하기 전에 동거하는 것을 지혜롭다고 하고 쉽게 이혼하는 것을 빠른 판단이라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결혼 전에 육체 관계를 맺는 것을 보편적인 일로 생각하므로 세상은 성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 세상은 이미 사탄이 승리했다고 봐도 됩니다. 요즘, 아기들이 친 부모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것을 보면 그 부모조차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육의 욕망의 열매로 태어난 아기는 보호 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기를 살해했다고 감옥에 넣지만 그것은 이미 때 늦은 조치입니다. 가정과 사회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올바른 성교육을 시키고 책임감을 길러주며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려준다면 사람들은 악한 길에서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진리를 가르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이기게 하고 사랑으로 가정과 생명을 지켜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은 서로의 인격을 짓밟고 육체와 정신의 파멸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하나님을 거부하던 노아 시대와 현대 사회가 다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의 정신 세계가 무너질까 두려운 것이 지금 부모들의 심정입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다면 인터넷의 중요성과 편리성에 대해 가르치며 선한 대화를 계속 한다면 자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어디든 접근하기 쉽고 아이들의 순수성을 잃기 쉽기 때문에 더욱 복음 전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므로 항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한 것을 보면 지금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몇명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이교도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고 권면 했습니다. 교회가 선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것처럼 이교도들은 자연스럽게 악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선과 악이 무엇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이들은 이방 신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음란과 간음과 탐색과 같은 악을 행하며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신전에는 수백 명 넘는 여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매춘부였으며 그들의 수입은 신전 유지비로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인에 의하면 아덴에 공창제도를 제일 처음 도입하고 창녀 굴을 지은 사람은 솔론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사제들이 매춘 행위로 얻어진 수입으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위한 신전을 지었습니다. 이런 수입으로 신전을 짓는 것이 전혀 잘못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의 악하고 더러운 행위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순결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입양한 아기를 폭력으로 죽인 부모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는 뉴스와 목사가 성도를 성폭행했다는 뉴스를 듣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로마 황제 가운데 초기 15대 황제 중에 14명이 동성연애자였다고 합니다. 황제는 솔로몬처럼 처첩을 천명을 둘 수 있는 권력을 가졌지만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즐겼고 심지어 짐승과 교합하는 죄까지 저질렀습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데모스테네스가 말하길, 창기는 향락을 위하여 필요하고 정부는 육체의 욕구를 위해서 필요하며 아내는 자녀를 얻기 위해 충실한 사람을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타락하자 이들은 남녀 사이에서만 성적 문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을 찾아 쾌락을 즐겼습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성생활을 영위하며 자녀를 낳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여인들조차 여인들과 더불어 성적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이런 동성애는 오직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 존재하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장 26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로마에서는 동성애가 귀족은 물론 노예들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졌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노는 로마서 1장 28절에 보면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므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그대로 내버려 두셔서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도와 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징계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 성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 경쟁이나 하듯 각 나라마다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증명서와 정상적인 부부들이 누리는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동성애자가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총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알지 못하면, 세상의 흐름을 방관하게 되고 교회마저 동성애자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끼리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므로 성도들조차 그것이 세상의 흐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방관이며 죄입니다. 어쩌면 빠른 시일내에 이런 설교를 하는 것 조차 어려울 것이며 법에 저촉되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왜 세상은 정상인들이 훨씬 많은데도 악을 이기지 못할까요? 그들은 사후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고 현재의 쾌락만 추구하는 세상에 동조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이 그대로 두셨기 때문에 회복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 인구수가 60억이 넘었는데 그들은 방주에 타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8명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큰 방주를 노아와 세 아들이 만들었을까요? 분명 돕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타지 않았을까요? 노아는 방주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만 하나님을 떠난 그들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으로 보아 도리어 노아를 조롱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멸망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노아가 그들을 방주에 태우지 못한 것은 그들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암흑과 같은 세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성적으로 문란한 것은 사람들이 쾌락을 즐기고 우상을 숭배해도 하나님께서 즉시 징계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고 왔다고 하신 말씀의 뜻은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은 곳이지만 그 세상에 구원의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영접한 사람들은 구원의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즉각 심판 하셔서 돌이키게 하기 보다는 진흙탕과 같은 세상에서 뒹굴고 있는 그들에게 회개의 영을 주지 않으므로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고난과 채찍으로 돌이키게 하시지만 악한 자들은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죄에 죄가 쌓여 사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방주에 타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결정대로 그냥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40일동안 비가 올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세상은 이미 홍수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당장 비가 오지 않는다고 심판 받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재림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에 타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바울이, 사람들이 경건치 않음과 불의의 증거로 동성애를 제시한 것은 그만큼 동성애가 삶의 전 영역에 무질서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집을 피우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 진노를 그 사람에게 쌓아 놓으신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지금 죄의 자리에 있는데도 징계를 받지 않는다고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임신한 여인은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기가 커가는 것도 알고 있고 때가 되면 태어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짓는 자들도 죄의 자리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죄는 언젠가 자신을 멸망의 골짜기로 밀어 넣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 이러다가 하나님한테 혼나는거 아냐’이런 말을 합니다.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누군가에게 혼난다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의 양심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들은 죄의 욕구를 받을 때마다 강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고 성도들에게 성령의 임재를 허락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성도들이 성령께 의지하면 얼마든지 사탄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물과 힘이 있으면 세상의 삶이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임신한 여자의 해산이 불시에 찾아오는 것처럼 멸망은 갑자기 이르므로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도는 복음을 온전히 영접하면 새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사탄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성도로 하여금 계속 의심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성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사탄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임재 하신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안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9~32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죄의 자리를 떠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악한 행동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받는 형벌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이렇게 수많은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지만 결국 그것들은 모두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되기 때문에 자기에게 죄를 쌓아 놓는 것이므로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악한 행동을 합니다. 말을 험하게 하는 사람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폭력을 동반하는 죄를 짓습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는 사람과 복수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아야 끝이 나므로 처음부터 말씀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악한 죄에는 수많은 행위가 함께 동반되므로 성도들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욕도 잘하고 폭력도 가끔 쓰지만 그래도 사랑이 많아서 베푸는 것을 잘한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말과 행동과 삶이 동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착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산다고 해도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결국 사탄의 종이므로 그리스도의 빛을 거절한 그의 영은 어둠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방주에 타지 않은 사람 중에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알아야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32절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을 떠나면 정의가 없는 상태로 사악하고 비열한 심성을 갖게 되므로 사망의 길로 가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궁극적으로 사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자기 혼자 죄를 범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동참시킵니다. 다른 사람을 죄의 소굴로 끌어들여서 함께 악을 행하며 순진했던 사람들이 타락하고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정말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결단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세상으로 판단하지 말고 진리로 거듭나서 신실한 성도가 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이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며 고소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거듭난 여러분을 품어 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우리는 아직도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사탄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충만할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고 험한 길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며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도와주고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보면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 수 있으므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보며 멋진 성도의 삶을 살아 내기 바랍니다.

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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