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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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9~18절

9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욕되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고 히브리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큰 은혜 가운데 살게 한다는 것을 경험하고도 세상과 쾌락을 버릴 수 없어서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신 분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죄인을 위해서 아들을 기꺼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의 능력만 이용하려는 사람과 좋지 않은 습관이나 쾌락을 좇는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좇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목숨을 다해 충성하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돌보실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이런 사람들은 아주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생과 사 그리고 화와 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보다 지금 누리는 쾌락이 훨씬 즐겁기 때문에 눈과 귀가 가려진 상태입니다. 이렇게 눈과 귀가 가려진 애굽 군사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이스라엘백성을 보면서 자신들도 건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뛰어 들었다가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도 아벨을 찾는 하나님을 향해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고 말대답을 하는 교만을 보이다가 영원한 생명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호적이 있어서 장자와 차자가 바뀔 수 없지만 하나님안에서는 얼마든지 영적인 장자와 차자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자리를 쉽게 버린 후 장자의 복을 달라고 눈물을 흘렸지만 하나님께 버린 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사람의 기준대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한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형벌을 주시는 하나님을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씀대로 살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키는 믿음은 인내를 키울 수 있으며 세상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겨내는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14편 1~3절

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다윗이 말하길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에 근거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들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 가운데 사울 왕이 있는데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을 질투하다가 사탄의 계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기준이 되어야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어리석은 그는 심령이 부패하여 인간적인 생각대로 행동하므로 결국 사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통치할 수 있도록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사무엘에게 사울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왕으로서 권위를 갖도록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부강 해질수록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울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 실망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살피다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며 거룩한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사울 왕이 있음에도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자 광기를 부렸습니다. 순수하던 그의 마음은 독기로 가득했고 하나님이 없다고 속삭이는 사탄의 유혹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타락하자 백성들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마음에서 버렸습니다. 사울과 그의 사람들은 다윗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고 또 하나님만 의지하는 다윗을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들어갈 만한 투명한 큰 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공 밖에는 이음새가 없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공안에는 손잡이가 있어 언제든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 투명한 공안에서 기도와 찬양하며 하나님을 의지했고 사람의 생명을 아끼는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공은 투명하기 때문에 안과 밖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사탄은 다윗을 유혹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지만 결코 공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다윗을 해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나가기 전까지 사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성도들도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안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재물과 쾌락과 성공과 명예가 보여서 나가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스스로 문을 열고 공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전합니다.

그리스도 밖으로 나간 사울 왕은 아들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사울의 일방적인 공격에도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믿음을 가졌던 다윗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훈련을 받은 후 절대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충만했던 다윗에게 왜 고난을 주셨을까요? 처음부터 사울이 아니라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면 믿음이 충만한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백성을 잘 다스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단의 훈련을 받은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에 밧세바를 취한 것을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죄로 인해서 자녀들이 거짓말을 하고 여동생을 겁탈하고 형제가 서로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의 나라를 빼앗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고통스러운 훈련을 받으면서 그의 외적인 부분은 깎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본질적인 죄는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사람들의 죄를 선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죄가 얼마나 인간을 끝까지 처참하게 끌어내리는지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라고 선포하고 있으며 인간의 심령은 너무 더러워서 하나님 곁에 둘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그래도 선민이고 율법을 가진 사람이라고 반박하자 바울은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그 죄아래에 있다’,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이나 믿는 우리들이나 모두 똑같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모두 죄 아래 있기 때문에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에서 죄를 단수로 사용할 때와 복수로 사용할 때의 의미가 다릅니다. 복수로 사용할 때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악한 행위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서 이런 죄도 있고 저런 죄도 있다는 것입니다. [롬1;29-31] 죄를 단수로 사용할 때는 보이지 않는 세력 즉 죄의 실체를 말하는데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꾀일 때 등장했던 사탄과 같은 영적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악한 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귀 즉 처음부터 살인한 자 진리가 없는 자가 바로 우리들의 아비이며 단수로 표현된 그 죄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아비가 된 이유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죄인이 되자 그에게서 태어난 세상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죄인들은 공중권세를 잡은 자 아래에서 태어났으므로 그를 닮아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덧입지 못했으므로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살면서도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산 것입니다.

천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공중으로 쫓겨난 마귀는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낼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열린 무덤과 같은 더러운 마음을 유지하도록 끝없이 죄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죄는 죽이고 영적인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죄로 가득한 육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은 더 이상 유혹할 육이 없기에 사탄은 그들을 죄로 이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탄은 날마다 성도들을 유혹하기 위해 노력하므로 성령께서는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성령께서 혼자 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목숨을 다해 노력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도록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날마다 죽는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 사탄은 그의 연약한 육을 통해 믿음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복음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데 정작 진리를 전한 자신은 죄를 이기지 못하고 구원에서 떨어질까 봐 두렵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힘으로 사탄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고백입니다.

사탄은 영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갑옷의 가슴 쪽에 호신용으로 붙이던 구리조각]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것 뿐이므로 지금 여러분이 시험에 들었다고 생각이 들거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3장 10~12절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탄은 사람들이 스스로 죄의 굴레를 벗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공격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을 우상처럼 섬기게 하여 권모 술수를 쓰게 하고 남의 생명을 빼앗더라도 원하는 것을 갖는 죄를 짓게 합니다. 쾌락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믿음을 한 순간 무너지게 만들어서 자신은 물론 자녀와 주위에 있는 사람까지 불행하도록 만듭니다.

에베소서 5장 16~18절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시대를 사는 사람도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니 세월을 아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하므로 세월을 아끼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술 취하지 말라고 강하게 선포하는 것은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온전한 정신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방언을 했을 때 술 취했다고 사람들이 말한 것을 보면 술에 취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해야 하는 사람을 맡겨 주셨는데 술에 취하면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성도로서 본이 되지 못한 행동을 하게 하므로 그 죄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마약은 끊기 위해서 몇 년을 하지 않더라도 단 한번만 하면 바로 중독이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술과 담배와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분쟁과 시기와 분내는 것과 이단과 투기와 방탕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하와가 뱀에게 미혹을 받은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사탄은 영악하고 사람들은 연약하여 쉽게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해도 죄는 그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께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죄는 존경받던 사람을 추하게 만들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횟수가 반복될수록 화인 맞은 심령처럼 무 감각해집니다. 죄에 붙들리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열린 무덤처럼 악한 냄새를 풍겨도 부끄럽지 않고 자신의 혀로 사람을 죽여도 죄의식이 없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는 말의 뜻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장례문화는 시신을 관에 넣고 땅을 파서 관을 묻기 때문에 시신을 볼 수도 없고 썩는 냄새를 맡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서 온 식구들을 그곳에 안치한 것처럼 석회암을 파서 작은 동굴을 만들어 무덤을 만듭니다. 가족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동굴을 막았던 돌을 치우고 시신을 안치하기 때문에 고약한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고 한 것은 시신이 썩은 냄새를 풍기는 것처럼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죄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서 새 생명을 얻어야만 선한 향기가 나는데 사탄의 종 노릇 하는 사람은 마귀의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고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죄는 입을 여는 순간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들은 독사가 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늘 마음을 청결히 하면서 선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므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악한 사람은 자기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께 의지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16~18절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평강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불안의 연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해야만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죄는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는 길을 막습니다. 죄를 짓는 인생은 죄의 무게 때문에 한 걸음을 떼는 것도 힘겹습니다. 하나님안에 있으면 환한 대낮에 사는 것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죄는 선한 양심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어두운 곳을 찾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이 고속도로라고 한다면 사탄이 인도하는 길은 막다른 골목과 같습니다. 막다른 길에 서면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공격할 때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사람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있지 말고 환한 그리스도의 품으로 나오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이곳에 오면 당신이 지고 있는 큰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물론, 어둠속에만 있던 사람들은 빛이 얼마나 큰 자유를 주는지 알 수 없기에 자기의 생각과 고집과 자존심을 쉽게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미래가 두려우면서도 쉽게 하나님께 굴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한 말씀을 전해야 하며 그 말씀이 힘을 얻도록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오래 참으신 것처럼 인내해야 하고 끝까지 사랑을 베푸신 것처럼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것인지 몰라서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 돌이킬 때까지 하나님께 간구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혀로 지은 죄를 회개하게 하실 것이며 그 입술에 있던 독사의 독을 버리게 하실 것이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던 그의 삶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고 우리는 믿음을 통해 받았지만 육을 가진 우리의 구원은 아직 진행중이므로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바울은 살인했던 자신, 성도를 핍박했던 자신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독사가 독을 품은 것처럼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죽인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전에 자신이 하나님을 미워했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기에게 독을 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거듭나기 전 사도 바울과 전혀 다르지 않은 죄인입니다.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 세상의 쾌락을 끊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탄의 자녀였던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께 지금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 영혼들을 인도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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