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로마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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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2장 1~15절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를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일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심판 받은 세상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은 죄의 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운 계획이 악한데도 하나님께서 막지 않는다면 지금 하나님과 원수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악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선악과를 따먹는 죄이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하게 사는데도 고난을 만나거든 계획을 바꾸지 말고 후회하지 말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선한 사람의 생각과 계획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시간과 경험을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당면한 문제와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동시에 보면서 믿음으로 견딘다면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신중하게 문제를 결정해야만 아름다운 결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문제 안에서 결과가 보여야만 옳은 선택과 인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불의한 사람은 자기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대로 살면서 자기의 의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적은 능력과 인격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믿는다면 큰 문제를 만듭니다. 그런 사람은 거듭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인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절대로 자신을 믿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장에서 편지 형식을 바꾸고 있는데, 1장에 말한 것을 그 누군가 반박했던 것처럼 2장에서 답을 쓰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바울은 누군가 자신도 같은 죄를 짓고 있으면서 상대를 조롱하는 것을 보고 반박하는 것처럼 바울은 그들을 부르며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하지만, 결국 완전하지 못한 자신도 그런 죄를 지을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한 그 정죄가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도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잊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고 계시는 은혜를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동성애와 이교도에 빠진 사람들을 정죄했는데 결국 자신들도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동일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만약 너희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아도 핑계 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인들의 회개는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려고 노력해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으며 근본적인 죄는 사함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추수할 천사들에게 흰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지옥불에 던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천사들도 명령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구원받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미리 사람들에게 언젠가 그 날이 있을 것이니 미리 준비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하게 들었지만 현재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지금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세상의 종말과 개인의 종말을 대비하며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초청 했지만 거절 하자 다른 종들을 보내며 내가 오찬을 준비하고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모든 것을 준비했으니 지금 오라고 다시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갔고 한 사람은 사업하러 갔으며 다른 사람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여버렸습니다. 이런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임금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화가 나서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임금이 생각하기를 그들에게 이미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에 잔치를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무시할 정도로 자기 삶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기에 마태복음에 있는 이 사건 기록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를 가야 하기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초청을 거부한 정도가 아니라 임금이 보낸 종들을 죽였습니다. 임금의 잔치에 초대받은 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요? 그때는 초청하는 날짜만 알려주고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왕이 초대했다면 그 자리를 위해서 하루 종일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통해 초림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유대인에게 먼저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지자들을 거부했으며 예수님은 물론 세례 요한과 제자들까지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처럼 큰 용사를 원하고 있었으므로 보기에도 초라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하자 고려할 가치도 없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던 예수님은 멸시를 받았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초청을 거부한 것은 오로지 세상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임금의 백성이므로 임금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화가 난 임금은 그들을 모두 진멸하고 나서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즉 어떤 사람이든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길로 나가서 지나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는 손님들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초청을 거절하자 이제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구원의 자리로 불러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의 권리를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누가 복음 14장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레위기 21장 17절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희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흠이 있는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법을 지금 예수님께서 폐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갈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주실 수 있는 아주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은 선민이라는 교만한 생각에 빠져서 구원의 자리를 거절 했으므로 이제 하나님께 나올 자격이 없는 이방인들을 초대하게 된 것입니다. 자칭 의인이라는 사람들을 버리고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1~13절

11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임금앞에 나아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길에서 종들을 만났기 때문에 평상복을 입었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나라의 궁정 행사를 보면 왕을 알현할 때 궁에서 지급되는 예복을 모두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궁으로 불려온 사람에게 임금이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을 보면 분명 예복이 지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임금에 대한 합당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을 불러서 예복까지 주었는데 왜 입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갑자기 임금을 알현하기도 했지만 평상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세상의 좋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예복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며 임금에게는 갖추어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나라에서 정한 법이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예복을 주시며 천국 잔치에 올 때는 이 옷을 입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미리 성도들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재림 하시는 그 날 예수님을 길에서 만나든 집에서 만나든 믿음의 예복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왕은 종들에게 가난한 자도 괜찮고 몸이 불편한 자도 괜찮으니까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동일한 예복을 입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재물과 권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왕이 세운 법이라 할지라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왕은 그들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내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 던져질 것입니다. 왕을 만났다면 법대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궁중의 법도를 잘 모를 때는 앞선 사람들을 따르는 것도 지혜입니다. 하물며 왕을 만나는 자리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왕은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임금은 맛난 음식과 예복까지 준비했지만 사람들은 그 은혜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궁에 갈 생각에 신이 나서 따라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천국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에 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갈 수 있다는 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임금의 명령이 곧 생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명령을 어긴 그들은 끝까지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억울해 하며 이를 갈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교만과 위선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를 갈면서 억울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교회 다니고 성경을 읽고 봉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운 법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믿고 있는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형식적인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해 주면 억울한 마음에 이를 갈 것입니다.

바울이 이교도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자 유대인은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바울의 말에 동조했을 것이고 교회를 다니는 이방인들은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너희가 지금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너희도 똑같은 죄를 짓고 있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교회 다니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만큼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당연한 일을 하면서 자랑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교회를 다니니까 그들과 다르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네가 그들을 판단할 자격이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음욕을 품으면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죽이라고 소리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로마서 2장 4절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인자하신 하나님은 성도들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부도덕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며 회개하고 돌이키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루고 계신 것은 어쩌면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도리어 악용하고 있습니다. 당장 심판하지 않으니까 징벌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탐하며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과 상관없이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능력으로 사는 줄로 착각하지만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를 반복해도 징계가 없자 사람들은 더욱 타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 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형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바로 인간이 정한 선의 무가치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실제로 드러내서 죄를 짓는 자와 선을 가장한 가식적인 자가 동일하다고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과 재물과 건강을 모두 맡겨드리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시며 오른 편에 있는 양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양과 염소를 가르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양은 양의 모습을 하고 있고, 염소는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양과 염소를 구분하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염소가 양인 것처럼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선 그 사람의 인생을 자세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상급과 심판을 공정하게 내리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완전범죄를 꿈꾸며 사람은 속였는데 하나님앞에서 그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먼저 성도들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정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지금 뿐입니다. 다음에 회개하겠다고 미루다가 오늘 육체를 벗게 되면 더 이상 회개 할 기회가 사라지므로 지금 하기 바랍니다.

에스겔 33장 30~33절

30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네가 예언할 때 백성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극히 위선 되고 가증한 행동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회개와 구원의 소망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에스겔이 전하는 예언 중에 혹시 자신들이 취할 것이 있는지 들어보자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에스겔에게 왔습니다. 에스겔이 노래로 말씀을 전하자 그들은 에스겔이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 할 뿐 그 노래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결단 없이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들은 심판의 말씀이 성취 된 것을 보고 나서야 그 말씀이 실제로 자신들에게 닥칠 심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판을 당하고 나서 깨닫는 것은 이미 기회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서 미리 알려주셨을 때 돌이켰다면 심판은 없었을 것이며 백성들은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평안하게 사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 은혜라는 것을 잊으면 언젠가 두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나서 그제야 하나님이 미리 말씀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습니다. 말씀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 돌이키기 바랍니다. 이렇게 세상의 두려운 일들을 보게 하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다면 돌이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7~8절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참고 선을 행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당을 짓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심판하시겠다고 확실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더 이상 성도들에게 무슨 정확한 기준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깨끗하게 보이겠지만 인간이 주장하는 선함이 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고 인정받는다고 한 것은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깨닫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는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최선은 인간의 뜻이므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진리와 상관없는 인간의 노력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지 말고 항상 말씀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훈련을 하기 바랍니다.

선한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이 초대하신 천국 잔치의 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정결하게 사는 사람은 초청받은 그 날 환하게 웃는 왕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예복을 늘 입고 부활한 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율법의 요구와 십자가의 완성 ·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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